‘한국교회가 불량품 같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인들에게 그 같은 소리를 들을만한 일들이 그 동안 우리 교회 안에 있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어쩌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사유가 있겠지만 우리 교회가 신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심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긴다. 그 동안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가르쳐왔다. 예수 믿어 복 받는다는 가르침이 잘못된 교훈일 수 없다. 사실 예수 믿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과연 무엇이
21세기 초입의 지난 2001년 9월 11일 우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미국의 부와 번영의 상징이자 인류문명의 첨단을 상징하는 세계무역회관 쌍둥이 빌딩이 여객기와 충돌하여 순간 수천 명의 생명이 순간 사라져버린 끔찍한 사건을 생생하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 사건은 20세기 고층문명과 21세기 고속문명의 첨단인 제트 여객기의 충돌이었다. 인간이 자랑하는 이 두 문명의 충돌로 붕괴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보아야 했다.백악관을 향하던 한 비행기도 의인 비머와 그의 친구들을 사용하셔서 막아주시지 않았으면
민수기 14장에는 가나안에 보낸 히브리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불신앙적 정보만을 백성에게 전하자 금세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로 되돌리신다. 우리도 저들처럼 ‘주를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과 양식이 없어 원망하다가 불 뱀에게 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도 저들처럼 원망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하나님께서는 이런 사건들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역사를 통해 배우라.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고를 들으라.'는 것이다. 역사를 통
하나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특별히 자주 하신다. 마가복음 13:33절이 대표적인 말씀이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6절도 같은 의미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잘못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잠 들거나 혼몽한 상태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잘못되지 않도록, 깨어있게 하기 위해 2가지 경보시스템을 마련해 주셨다
로마 시내에서 압비오 거리를 지나 카타콤으로 길을 가다보면 쿠오바디스라는 성당이 서 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어 이 세상을 떠나신 뒤,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박해가 극심했을 때 사도 베드로는 이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도망하는 중에 압비오 거리를 지난 어는 지점에서 로마를 향해 가시는 주님이 만나 뵈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쿠오바디스’했다.압비오 거리는 로마시민권 자였던 사도 바울이 당시 로마의 영토였던 이스라엘에서 그리스도라는 가이사(황제)를 대적하는 교(종교)를 퍼뜨린다는 죄목으로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압송되어 가
구약성경에는 3번의 개혁 history가 있다. 요시야개혁, 히스기야개혁, 느헤미야개혁이다. 요시야 왕의 개혁과 히스기야 왕의 개혁, 그리고 느헤미야의 개혁이다. 요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의 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느헤미야는 성공적인 개혁을 이끌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두 번의 개혁은 왜 실패하고, 느헤미야의 개혁은 어떻게 성공하였는지를 살펴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들은 자기중심의 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정작 개혁에 성공한 정권은 찾지 못한다. 개혁이 정치가들의 말장난으로
성경에서 태초란 말로 시작되는 책은 세 권이다. 창세기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되고, 요한1서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본 바요…"로 시작된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된다.태초란 말이 헬라어로 "ARKE"이다. 헬라어에서 “ARKE”는 원래 철학용어로 쓰였다. 헬라철학에서 “ARKE”는 우주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을 일컫는 단어이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제 각기 “ARKE”를 물, 불, 존재 등으로 주장이 달랐다.이 “ARKE”가 성경에서는 의미가
1971년 7월 26일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이 달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였다. 우주선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자그마한 공 같은 별이 하나 보였는데 지구였다. 축구공만한 별이 눈앞에 아름답게 비치고 있었다. 그 별을 보는 순간 어윈의 마음속에 요한복음 3:16절이 생각나고, 그 말씀을 암송하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시여, 저 축구공만한 지구를 하나님께서는 무엇
하나님의 정직을 고집하다가 회사 문을 닫고 망한 것도 일종(?)의 순교라고 믿는다. 그 같은 순교의 피가 우리 한국교회와 사회에 필요하다. 그래야만 교회가 다시 살고, 우리나라가 다시 살 것이기 때문이다. ‘정직한 자의 형통’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는 ‘정직한 자의 고통’ ‘정직한 자의 억울함’ ‘정직한 자가 바보 됨’ ‘정직한 자의 실패’ ‘정직한 자의 눈물’ ‘정직한 자의 망함’이라는 피를 이 땅에 뿌려야 한다.아이러니(irony)하게도 일제 때 죽으면 교회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한국교회가 불량품 같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인들에게 그 같은 소리를 들을만한 일들이 그 동안 우리 교회 안에 있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어쩌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사유가 있지만 교회가 신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심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지 않았거나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한 탓일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설교를 많이 했다. 예수 믿어 복 받는다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지 않다. 사실 예수 믿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도 하
살아남기도 급급했을 그곳 아둘람에서 어떻게 위대한 역사를 이뤄내는 근거지로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이 다윗이 아둘람굴 시절에 쓴 시편 57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시절 다윗과 그의 동지들이 품었던 비전과 꿈을 7. 8절에서 만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상의 비전을 품고 살았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공동체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었
다윗이 들에서 양떼를 돌볼 때,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다. 블레셋 군에 골리앗이란 엄청난 장수가 있어 이스라엘 군은 수세에 몰렸다. 전장에 나간 형들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러 갔던 다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분을 견디지 못하여 적장 골리앗 앞에 섰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고부동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확고한 신앙과 신념이 다윗을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다윗은 자신의 분수를 지켰다. 항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별하여 스스로를 다스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허황된 목표를 정하고, 정력과 시간을 낭비한 사람들의 결국은 실패다.다윗은 자기 분수를 지킴에 있어서 지혜자다. 자신의 눈높이를 낮게 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에는 적합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그 일을 돌렸다. 이런 다윗의 태도와 그릇을 보고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여들었다.모여든 사람들을 대충 이끌지 않고, 팀을 만들어 조직을
모든 사람은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보다 실패로 끝나는 사람이 더 많다. 왜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원하면서도 실패자가 되는 것일까. 성경 사무엘서가 이 질문에 대답을 준다.사무엘서는 네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엘리 대제사장, 사무엘 선지자, 사울 왕, 그리고 다윗 왕이다. 사무엘서는 엘리와 사울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무엘과 다윗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일깨우고, 우리로 사무엘과 다윗의 신앙을 흠모하게 한다.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아쉬운 때이다. 지도력이 아쉽기로는 교회
네 번째는 말씀 묵상이다. '묵상'(meditation)이란 읊조린다는 의미를 지닌다.(시 63:5~7) 말씀공부 중에 부딪히는 말씀을 자신의 귀에 들릴 만큼 입으로 읊조리고 생각하는 것이 묵상이다.시편 1:1~3절 말씀이다. “복 있는 사람은 …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음같이 …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말씀에 순종하여 실천하는 삶으로 신앙성장단계의 결론에 이른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여호수아 1장에서도 말씀을 지켜 행하는
우리 사회는 기초가 약하다. 어떤 일이든 기초가 약하면 크게 일할 수가 없다. 기초가 중요하기로 공부하기, 기업하기, 건축하기, 신앙생활이 동일하다. 공부에 ‘기초’가 기본이듯이 기업경영에도 기초세우기가 가장 중요하다. 신앙도 말씀과 영적인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된다.성경 66권 중에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성경은 창세기와 요한복음 그리고 요한1서이다. 우리말로 같은 단어 ‘태초’이지만 창세기와 요한복음의 태초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창세기의 태초는 우주만물이 시작된 태초이고, 요한복음과 요
요즘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의 수난시대이다. 여러 교회들이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 소용돌이를 겪고 있고, 각 언론들과 일반 대중이 갖는 교회와 목사들에 대한 비난이나 생각이 곱지 않다 못해 대립적이고, 공격적이다. 교회내의 정화되지 못한 소용돌이가 교회 내에서 제대로 조정되어 극복되지 못하고, 교회 밖으로까지 알려지거나 도를 넘어 심지어 세상법정에 소송하는 사태로까지 번진 경우나 언론의 가십(gossip)거리가 되고, 교회와 교인들의 이기주의가 사회면을 채우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의 원인은 많은 문제와 원인들 중에서
긍정(肯定. affirmation)이란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그렇다고 인정하거나 찬성하는 것, 또는 그렇게 인정할 만하거나 찬성할 만한 것에 대한 사고 또는 사고의 태도와 그 반영을 말한다.긍정적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부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더욱 밝은 쪽으로 생각을 전환한다. 긍정적인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향을 긍정적인 것으로 정하고, 자신의 삶의 틀을 만들어 낸다.긍정주의를 더욱 선호하게 되는 천부적인 성격도 있지만, 긍정적이 된다는 것은 후천적
기독교내에서는 수도원 운동을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 수도원운동은 ① 가톨릭 전통이지 기독교전통이 아니란 생각에서 반대하기도 하고, ② 수도원 운동이 현실도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는 현실 도피의 소극적 종교 활동이라는 생각에서 반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③ 수도원 운동의 고행과 금욕적 삶은 복음적이라기보다 이교(異敎)적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수도원 운동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느 종교든 종교생활에서 수도(修道)와 수행(修行)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요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