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한다4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또한 부활의 계절이기도 하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되지 않고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국가가 소멸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생명학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저출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데 안타깝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소멸되는 농촌지역이 속출하기
절제된 생활·생명 일깨워주는 사순절사순절 마지막 주간이다. 새 봄과 함께 부활의 계절이 시작됐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절제된 생활과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새로운 세상, 하나님 나라, 새로운 삶을 맛보아야 한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의 계절, 이어지는 부활의 계절이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묻혀버렸다. 죽음 없이 부활은 없다. 부활은 죽임당한 자의 부활이다. 때문에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전쟁과 기아로 힘겹게 살아가는 자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 없다정치와 종교는 분리해서도, 분리할 수도 없다. 4월 10일 제22대 총선에서 기독교정치세력화가 한국정치 70년의 역사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난 20년 동안 5번에 걸쳐 기독교정당들이 출현,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하지만 분열과 정교분리의 벽에 부딪혀 매번 좌절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사정이 달라진 오늘 제22대 총선에서 유일하게 기독정당의 가치를 내건 자유통일당이 원내입성에 대한 희망을 걸고, 조직 강화와 세력규합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구약시대에도 예언
3.1운동, 미래로 나가는 예수운동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와 수탈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세우라고 명 하셨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 전체를 압도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파라오의 압제와 착취에서 해방시켜주셨다는 신앙고백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사상이다. 이스라엘민족의 이 같은 신앙고백의 전통은 오늘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나님은 일제치하에서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신음
신의 자리를 독차지한 자본(금융)자본의 논리와 시장의 논리가 인간의 가치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것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지는 인간의 가치 황폐화는,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자본의 논리, 시장의 논리에 갇히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결국 관념이 되어버려 곳곳에서 적대적 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상황서 성경의 경제정의인 ‘나눔’과 ‘섬김’은 오늘날 인간사회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가장 민감한 코드가 되고 있다. 나눔과 섬김은커녕, 목회자들 중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교회의 권위인
교회 자본 축적, 하늘의 보화 상실오늘날 우리는 세계화,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 모두가 자본의 노예가 됐다. 교회 역시 예수님의 세계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지키기 보다는 세계화의 악인 맘몬을 사랑하며, 자본(금융)을 축적하기에 바쁘다. 하나님의 자리를 돈(시장)으로 대치시켰다. 인류 모두는 신자유주의의 가치인 자본, 금융의 노예가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모
탄소중립 혹은 ‘넷-제로(Net-Zero)’운동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키고, 숲을 가꾸기 위한 행동이 기독교계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등의 단체와 교단은 지구를 살리기 위한 탄소중립 실천운동을 벌여, 나름대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오늘 지구촌, 아니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인간의 탐욕과 소유욕, 지배욕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전으로 인해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이는 이상기온을 유발,
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자구랍 25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2024년 갑진년 새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우리 모두는 미래로 나가기 위해 범죄 하는 발과 손을 끊고, 모든 유혹의 근원인 눈을 빼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신년새해를 맞으면서, 교회에 나가 여러 모양으로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꿈을 꾸었다. 모두 1월 1일 새벽, 그 꿈과 소원이 이루어지를 하나님께 간청을 드렸다. 꿈을 가진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꿈은 안일과 쾌락, 탐욕과 욕망에 기초한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
예수의 탄생, 인류 역사의 고통 결부우리는 앞서 에서 살펴 본대로 힘없는 자,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의 위협에 노출돼 살해당하는 이웃, 아프리카 등 남반구의 굶어죽는 이웃,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노동자, 교회출석을 꺼려하는 노숙자, 빈민들을 그대로 두고서 2023년 성탄절,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를 맞을 수 없다. 예수님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고통과 고난의 인류역사와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헤롯이 예수님 탄생 당시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아래 유아 학살 사건이 말해주고 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다”12월 성탄의 계절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트리가 곳곳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성탄특수를 노리는 상인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금년도 성탄의 계절은 탐욕과 지배, 소유하려는 욕심 많은 인간들 때문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성탄의 계절, 한편에서 성탄절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충성하며, 술과 환락으로 즐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하늘을 향해 호소하는 피의 소리가 사무치고 있다.2023년 성탄절, 낮은 자로 오시는 예수님은 어디에 오실까(?) 호화로운 백화점과
가던 길 멈추고 결단하자달력 마지막장을 남겨 놓고 있다. 교회력에 의하면 교회는 11월 달로 1년을 마감하고, 12월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이제 그리스도인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리고 탐욕과 소유욕에 메여 범죄 하는 손과 발을 끊고, 눈을 빼는 결단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 산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종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새 인간이 되
잃어버린 자 찾아 나서는 교회되자예수님의 어리석은 사랑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진리, 하나님의 참사랑이 담겨 있다. 또 여기에는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 기쁜소식(복음)이 담겨 있다. 보잘 것 없는 이웃을 위한 사랑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교회가 할 일이다. 인간은 잃어버린 자, 힘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자를 그대로 두고서 새 인간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에 참여할 수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열리지 않는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상처받고 버림받은 자, 죽임당하는 힘
행동 없는 삶에 빠진 그리스도인앞서 에서 지적한대로 오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 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충성한다. 그래서 맡겨진 것을 지키는 것이 제일 좋다고 여긴다. 모두가 자신의 기복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는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미래로 나가기를 거부하고, 보수주의에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했다. 내가 받은 진리와 신앙을 지키고만 있으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 달란트를 땅에 감춰놓은 것과 전혀 다르지
오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민족, 평화적인 민족통일, 소외된 이웃, 세계평화와 선교 등의 제목을 놓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 문제는 모두가 기도한 만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기도내용과 상관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일컬어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말한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 이웃을 섬기라고 하면서 섬기지 않는다. 예수님의 샬롬(평화)를 말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한다. 기도한 만큼, 행동하라그렇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
사이비화 되어가는 교회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 장로교 가을총회를 앞두고, 이단 및 사이비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기를 오늘 한국교회는 이단의 문제보다도 사이비 교주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실 오늘 한국교회 교인 대부분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목회자 한사람을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는 얘기다. 교회의 목회자가 교주화 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교회 내규도 목회자 한사람을 위해서 마음대로 뜯어고친다. 이제 교회는 교주
한국교회, 언제까지 침묵만 할 것인가광복 78년이 지났지만 역사왜곡, 독도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한반도를 향한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이웃나라 국민과 자국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를 버리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은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 방류를 묵인해 주는 회담은 아니었는지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정부는 핵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이에 대한 홍보영상물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의 엄중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
예수님의 평화는 그 어디에도 없다2023년은 대한민국 광복 78년, 분단 78년, 6,25 한국전쟁 73년이 되는 해이다. 그럼에도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평화적인 민족통일, 남북한 민족의 화해, 한반도의 평화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수님의 평화(샬롬)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남북한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오히려 거북하게 느껴진다. 모두의 입에서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만을 외친다. 그것은 예수님의 샬롬을 외쳐야 하는 목회자와 교인들도 다르지 않다. 목회자는 화해자·중재자의 역
“법은 사람을 위해 있다”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그것은 성서에 나타난 법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을 보고,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오히려 바리새인에게 “안식일이 누구를 위해서 있느냐”고 반문했다. 바리새인의 대답은 분명했다.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대답했다. 오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주일성수를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가 없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적대자로 바리새파를 내세웠다. 바리새파는 구약을 동원해서 국민운동을 일으켰다.
법과 질서가 필요 없는 세계7월은 법의 달이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헌데 오늘의 세계는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보니 하나님의 질서,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인간에게 율법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마저도 지키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사회는 혼란과 고통이 가중되어 왔고, 가중되고 있다. 신구약성서에 나타난 법정신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떠돌이, 과부,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평화(샬롬)는 어디로6월은 호국의 달이다. 6일은 현충일이고,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3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은 광복 78년, 분단 78년을 맞았다.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남한의 보수적인 일부 인사들은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남한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있다. 한마디로 오늘 대한민국은 평화를 잃어버렸다.그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평화(샬롬)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