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교회 안에서 종교개혁 계속돼야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제 한국기독교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신을 교회당 안에 가두어 놓고, 신을 자신의 입맛대로 마음껏 이용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학이니, 교회니 하는 인간학적인 것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교적이라고 말하는 재고품들을 쌓아 놓아 신이 움직일 없도록 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교 권력성에 도전오늘 프로테스탄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빼고 말 할 수 없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95개조의 고백적 고발문을 내걸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루터는 무명 승에 지나지 않았다. 마그네부르그의 감독에 임명된 알프레히트가 마인츠의 감독직까지 겸하기 위해 교황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치고, 그의
고난당하는 사람과 하나님나라 운동을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함께 사회주의는 붕괴되고, 동서 냉전체제는 막을 내렸다. 대신 미국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자본주의적 세계질서가 등장했다. 최근에 와서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만만치 않다. 또한 동서 냉전은 남북의 열전으로 대치됐다.부유한 국가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나라는 더 가난해져서 이
이웃의 아우성 소리를 들어라“가난한 사람을 위한 책임을 부정하는 교인이 있다면, 그들은 신앙의 이런저런 항목을 부정하는 것과 똑같이 이단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는 구조적 인종주의와 같이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는 것 역시 이단이다. 따라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문제이다”이 말은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 스웨덴 움살라 대회에서 비
9월 장로교 총회가 일제히 개회됐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300여개의 교단은 저마다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으며,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거듭남을 위해 전심을 다하는 모습이다. 특히 갈라지고 쪼개진 한국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화합과 일치에 주력하고, 동성애, 종교인 과세, 차별금지법 제정, 이슬람 등 굵직한 사안을 처리하는 데에도 골몰하고 있다. 여기에
무조건적으로 이단 규정(?)이번 주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앙총회를 시작으로 300여개의 장로교 총회가 개회된다. 올 가을 총회도 정부총회장 선거만큼이나, 이단사이비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리며,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가 사이비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신앙과 신학노선이 다르다고 해서 무차별적으로 이단
교주를 신비화하는 일에 앞장한국교회의 기복적이며, 열광주의적 신앙, 성서와 다르게 변용된 신학적인 요소들은 극복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형태는 무속신앙의 샤머니즘적인 요소들과 복합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샤머니즘적이며, 기복적인 신앙은 매우 주관적이며,
분단의 문제, 남북한 당사자가 풀어라한국교회는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남북분단의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봉사해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는 전쟁을 위한 폭탄발언을 연일 쏟아내며, 우리 민족과는 상관없이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정부와 국민들은 한반도에서
기독교복음 내용과 교회 질서의 파탄에 대항해서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교회개혁의 횃불을 들고 투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한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중세교회를 닮아가는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할 수 있는가(?)루터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 ‘교황의 수장권’ 문제, 교황
1945년 8월 15일 광복절, 민족의 해방은 앞서 지적한대로 민족사적, 세계사적, 구원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민족의 해방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 또한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미래에로의 전위운동이었다. 이 같은 민족사적, 세계사적, 구원사적인 의미를 한국교회가 몰각하지 않았다면, 한국교회는 세계평화와 한
무기경쟁, 한민족 파멸의 길로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교회도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십자가도 교회의 지붕이 아니라, 가장 적대적이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교 130년 군사문화 영향 아래한국교회가 청산해야 할 문화 중 하나가 군사문화이다. 기독교 130년 역사 중 30년은 군사정권 아래 있었다. 한국사회의 군사 문화적 전통을 따져보면 일본제국주의 36년도 준군사적 기반아래 있었으며, 해방 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군사문화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군사문화는 사회적, 교회적, 문화적
사회적 약자 보호에 초점구약성서의 법정신은 철저하게 약자를 보호하고,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데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법정신과 현대국가의 법도 마찬가지이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법이 가진 자와 법주의자들에 의해서 악용되고 있다. 구약성서가 소개하고 있는 계약법전(출애굽기), 신명기법전(신명기), 성법전(레위기) 등 3대 법전은, 사
예수님은 기득권층인 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법’과 ‘정결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다 법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선언은 한마디로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키지 못하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떠돌이 등 천박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선언
이단논쟁 다시 수면위로한국교회 안에서 이단문제가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다. 기성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이단사이비로 비판을 받고 있는 단체와 목사, 그리고 교단의 주변을 맴돌며,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신의 자리에 맘몬을 앉히면서, 이단 및 사이비의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다시 떠올랐다는 시각이다. 이는 오는 9월에 개회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한국교회의 선교지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선교의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 한민족이어야 한다. 그것은 남함만의 선교도 아니며, 북한만의 선교도 아니다. 남북한 민족 모두의 선교여야 한다. 아니 200여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선교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남북분단)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
법의 통제에서 벗어난 한국교회 7월은 법의 달이다. 한국교회가 법과 질서를 가장 많이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교회의 재산이 많아지고, 기득권세력의 횡포가 끝을 보이지 않으면서, 교회분쟁이 갈수록 증대되고, 세상 법정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목회자와 교인,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기득권세력과 비기득권 세력 간의 다툼,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말하자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67년, 분단 72년이 되었다. 이제 남과 북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통일에 대한 목소리가 한국교회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북한 아니 200여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요구이며, 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양보할 수 없다. 민족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이 계신 자리에 맘몬얼마 전 미국에서 온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황의춘 목사는 “오늘 한국교회가 엉망진창이 된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목회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오늘 세계와 대한민국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승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찬양과 경배, 그리고 영광을 받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