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눈 밖에 난 지도자 사울과 그를 위해 탄식하고 기도하는 선지자 사무엘, 그리고 새롭게 일어나 민족과 그 시대에 희망이 되는 다윗이 있다.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건국초기의 정치 드라마가 오늘 이 복잡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이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오늘의 정치를 진단할 수 있는 지혜와 표준을 주시
오늘 우리 사회는 감정조절 또는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상황을 실감하면서 오늘 사회가 시민에게 적지 않게 두려움을 제공하고 있음을 본다. ‘묻지 마, 살인’이란 말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원한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다. 어떤 일로든지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음이, 그 어떤 감정인(人)의 눈에 자기보다 약한 존재로 보였음이, 죽임의 사유가
에스겔(Ezekiel)은 주전 6세기 전반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의 심판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쳤던 유대왕국 말기의 선지자다.에스겔이 가나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한 말씀은 하나님을 떠나 배교(背敎)한 죄 많은 히브리민족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유대나라의 죄로 예루
느헤미야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고 계획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한다. 성공은 결코 한 사람의 원맨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느헤미야는 동역자들의 협력 없이는 성을 재건할 수 없음을 알았다. 예루살렘 주변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난 90여 년 동안이나 성을 재건할 수 없다는 결론 속에 패배감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리스도인의 러더십의 첫 단계는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 동행 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뜻을 주시고, 꿈을 주신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 기도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결단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한 2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은 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다 빼앗겼고, 또 만약 성경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엄청난 재난을 당했다. 지금도 북한에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지고 있을 수 없고, 소지하다가 발각이 되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한다. 북한의 어떤 동네에서는 성경을 숨기고 있다가 수백 명이 처형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때에 제자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앞에 놓고, 좌절에 빠졌었던 사건이 성경에 있다. 예수님이 친히 그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는 불가능이 없음을 가르쳐 주셨다. 제자들이 “왜 우리는 불가능이 없는 삶을 못 삽니까?”라는 물음에 첫째는 믿음 없음과 믿음이 적기 때문이고, 둘째는 기도하지 않는 까닭이라고 말씀
어느 날 바로가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바로의 마음을 번민하게 할 만큼 고민이 되고, 이상을 주는 듯 한 느낌의 꿈이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어버리는 꿈
믿음으로 비젼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질 때만 이해할 수 없는 이 땅의 현상과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에 의미가 생긴다. 시련과 훈련이 하나님의 손길아래 있음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심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련을 통해서 다져지고, 훈련을
비전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질 때만 우리생애에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손길 속에 시련과 훈련이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심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련을 통해 다져지고, 훈련을 통해 정교해지고, 강인해진다. 유혹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이 허락하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 가정이다. 하지만 현대 가정은 마치 침몰 직전의 난파선을 보는듯한 위기감을 갖게 한다. 1970년에 출판된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 , 미, 작가 & 미래학자로 [제3의 물결]의 저자)의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보면 ‘파괴될 가정’이란 장(章, chapter)이 있다. 초산업화시대가 되면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신 인류최대의 선물인 가정이 현대에 와서 마치 침몰직전의 난파선 같은 위기에 빠졌다.1970년에 출판된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 미국. 작가, 미래학자)의 “미래의 충격”(※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은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너무도 많은 변화에 직면함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목적으로 사는 원칙이 있었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그를 공경하며, 경배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영광에 관한 말씀이 마태복음 5:16절이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세상은 교회가 삶이나 사회생활에 표준을 제시하는 향도(嚮導)적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한다. 만약 교회가 그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일 하나에도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대인관계(對人關係),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주께서 원하시는 방향과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과 예배와 대인 관계의 표준을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되셨는데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솔직히 맨 정신으로 믿기 어렵다. 안 믿는 편이 훨씬 쉽다. 그래서 동서양을 무론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곳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일어나 것이 사실이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온 천하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생소하고 삭막한 분위기에서 사도들
예수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실까? 교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 세상이 갖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예수님이 생각하시고 설계하신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신약성경은 교회를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했다. 에클레시아는 '에크'와 '칼레오'의 합성어로 노예상태로부터 우리를 불러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 회중”을 의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애국 운동은 단순히 개인의 영혼구원 뿐만 아니라 땅과 영토와 사회 전체가 구원의 대상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은 결코 정치적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애굽이라는 불의한 세력 하에서 박해를 당하고, 신음하는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생명구원역사요, 회복에 대한 능력의 역사다. 그것을 전달하고 그것을 고
3·1 운동과 한국교회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물론 3·1 운동은 역사적으로 국권회복과 일본 제국주의의 포악한 무단통치에 대항하여 폭발한 우리 민족의 거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준비과정이나 운동 진행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인인 것과 비서명
반면에 예수만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좁은 문에는 발길이 뜸해지고, 나중에는 길이 점점 좁아져서 홀로 걷기도 어려운 험로가 될 개연성이 높다.참 어려운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왔다. 이런 형편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좁은 문을 선택했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그 길을 버리고, 예수님만을 나의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