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대담에, “네 대답이 옳다.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행하라!’는 토론을 배제하고, 지식의 영역에서 실천에로 옮겨 놓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잘 알고 있어도, 아는 것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사람은 앎과 행함 사이에 높은
2016년은 역사 속에 묻히고, 2017년 새해가 시작됐다. 한해가 지나갈 때 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묻기 때문이다.모든 종교는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인간은 두 발로 서서 걸을 때부터 영원한 생명을 논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별과 달, 그리
2천년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누가복음은 천사들이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 속에 예수님탄생의 의미와 예수님의
"사람은 누구나 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거스르는 것이며, 따라서 거스르는 그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통치자가 두려울 것이 없고 악을 행하는
실천신학대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는 “교인 3명 중 1명이 출석하는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조사결과를 내 놓아 충격이다. 이 두 단체는 ‘평신도 교회 선택과 교회생활 만족 조사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은 결과를 내 놓았다. 이들 중 22%(전체교인의 7%)는 “아예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대답이다.한국교회는 민
욕망이 과적된 한국교회가 침몰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마디로 씁쓸하다 못해 참담하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는 ‘성전의 하나님’으로 만들면서, 아니 무게의 중심이 하늘 높이 치솟으면서,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바벨탑보다도 높은 십자가 첨탑을 처다보는 순간 아찔하다.여기에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진 나머지
오늘 대한민국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도 5% 이하로 떨어졌다. 이번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분명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진 나머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한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측근들의 비리들로 인해 대통령 임기 말에 곤혹을 치루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여성대통령만은 그렇지 않을 것으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해 나라가 엉망진창인 것 같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연루된 인사들이 속속 구속되는가 하면, 조사를 받고 있다. 또 국민들의 공분은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대통령 하야와 2선으로 물러날 것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매주 수십만명이 모여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규탄과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야당 의원들도 여기에 가담했다. 한마디로 나
올해는 종교개혁 499주년을 맞는 해이다.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회와 단체마다 이벤트적인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과연 종교개혁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자.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각했다는 사실이다. 목사인 나
대한민국은 70-80년대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부자되면서 90년도를 정점으로 교회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은 13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줄었다. 일부에서는 500만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카톨릭은 1970년대 1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늘었다. 그것은 도시나, 마을마다 세워진 교회들이 교회의 역할
에는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밥’이라고 여러차레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껫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원한 밥’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영적인 말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생명의 양식인 밥을 나누어 먹었다. 특히 세리와
흔히 교회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한다. 옳은 말은 아닌 것 같다. 반대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 그리스도가 가는 그곳에 교회도 가야 한다. 올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면,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겨두어 내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역사현장에서 활동하셨다.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이들의 사람다운 삶과 인권을 위해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시인 김지하는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나누어 먹는 것이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것이 따로 없었다. 모든 것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것이었다. 한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누가복음 6장 20절)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책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성경구절이다. 구약성서는 바로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과 시련을 주제로 해서 생겨났고, 신약성서는 가난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의해 만들어 졌다.구약성서에 나타난 히브리인들은 일정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을 바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관이 둘로 크게 갈라져 있으니, 당연한 소리다. 이제라도 하나가 되는 것은 찬성, 또 찬성이다. 한국교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는 상황에서 한기총과 한교연이 대통합을 이룬다면 분명 한국교회의 긍정적인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그러나 하나되는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현실 앞에서, 이 말은 더욱 실감난다. 얼마 전 14살 된 중학생이 용돈을 안준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하면, 목사와 계모가 중학생인 막내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것도 모자라 시신을 방 안에 11개월 간 방치했다가 구속됐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왜 존속살인이 빈
“나는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늙은이들은 꿈을 꾸고/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그날, 나는/남녀 종들에게도 나는 영을 부어주리라/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해는 빛을 잃고/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야훼께서 거동하시는 날/그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이런 일이
최근 5년간 성범죄로 검거된 성직자만 464명이라고 한다. 전문직종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접하는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들의 성범죄 사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의 신뢰도는 물론, 목회자들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교인들 중에는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교인들도 갈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