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예수님이 떠난 후에 제자들에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가지고 있던 겉옷을 팔아서라도 말씀을 사라고 하시는 비유적인 말씀이다. 35절에서는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전도 여행을 보냈을 때 둘씩 짝을 지어서 70인을 보낼 때 전대도 가지지 말고 주머니(배낭)도 가지지 말고 신발도 두 켤레도 가져가지 말고 가라고 하셨다. 전도여행을 마치고 온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족하였냐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36절에서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신다. 전대와 배낭이 있는 자는 가지고 겉옷을 팔아서라
이스라엘 역사 속의 하나님, 성경속의 하나님은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셨다. 예수님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 이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예수님은 이들 가운데 계시면서, 이들이 대망하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이들이라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는 것에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헌데 한국개신교는 성경속의 하나님 역사하심, 성경속 예수님의 역사하심, 십자가의 정신을 몰각하고, 부자들만을 위한 종교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근대 철학의 문호를 연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그의 사상을 압축한다. 그의 뛰어난 수사와 영향력은 아류를 낳았다. 예컨대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Spinoza),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Pascal), “나는 저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Camus),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Derrida) 등등. 두 문장으로 이뤄진 짧지만 강력한 논리의 원류는 시편이다.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시 116:10). 성구는 원문의 순서를 살린 의 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살후 2:1-2) 초대교회 성도들의 예배와 모임은 종말신앙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심각한 배교의 상황에 직면하였다. ”불법의 사람“(살후 3:3)이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나타나서,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높이고, 숭배하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성경주석자들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주후 40년에 자신의 얼굴을 황금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도 마음속에서 갈등이 늘 있습니다. 성령이 원하시는 욕구가 있고 육체가 원하는 욕구가 있어서 그것이 서로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경에는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이러한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예민하며 깨어있는 사람일수록 그 갈등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무디고 잠자고 있는 사람일수록 갈등이 적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우리는 모습은 육체의 욕구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조물주는 인간에게 신에 가까운 온갖 재능을 다 부여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걸작이라고 찬양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조물주의 모든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지구의 전시장에서 인간에게 최고의 금딱지를 붙여놓고 찬양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완제품이라고 이것을 완제품이라고 믿어서는 큰 사고를 저지를 것이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온갖 재능을 부여할 때 그는 자신을 반역할 악마의 소질까지 집어넣어 버렸다. 작가 이 범선(李範宣) 씨는 「오발탄(誤發彈)」이라는 작품을 썼었다. 너무도 불행하게 태어난 주인공을 가리켜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명명
‘부활절’ 마다 감격한다. 그러나 ‘부활절’이 지나면 ‘언제였지’? 할 정도로 잊고 사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성도라면 매일매일 부활절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과연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이 믿어지십니까?"라는 질문에 간혹 당황하는 신자들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순교자들을 생각하면서 부활 신앙을 다짐하기도 한다. 실례로 ‘사도 베드로’는 사형장에 끌려가는 부인을 보면서 그가 천국에 불리어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위로와 격려를 보냈는데 "오! 여보! 주님을 꼭 기억하시오"라
지난 3월15일자 국민일보(인터넷) 기사 중에 “전 세계 목회자 70%가 성경 한 번도 읽지 않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기사 내용을 접하는 신도들과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에 호의적 반응을 보인 분들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주며, 기독교 선교와 가르침이 약화 되는 현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설교나 교육할 때마다 성경 즉 말씀을 읽는 것은 육신의 양식을 먹는 것처럼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영혼이 건강하고 신실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진다고 목성 높여 강조했다. 성경도 안 보는데 다른
예수님은 인류와 우리의 죄로 인해 사망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사셨다. 그리고 이 땅에 재림 예수로 다시 오신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과 잠자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순서가 정확하게 나열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인생의 죽음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여 영원한 세계가 시작됨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을 기억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절대 실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담 이후로부터 사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는 죽으면 영원히 살 수 없는 지옥이라는 음부로 가게 되어 있다. 우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식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왕의 입성(슥9:9~10)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구약에서 이미 나귀 새끼를 타는 왕의 입성에 대해 예언했다. 구약에 있는 인류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정된 말씀이 신약에 와서 그대로 성취됨을 보면 놀라울 뿐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에 위치한 벳바게와 베다니 마을 가까이에 오시게 된다.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쉬시고 다음 날 아침 제자들 중 두 명을 시켜서 맞은편에 있는 건너편 벳바게라는 동네에 가서 아무도 타보지 않은 매여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이 울진 산불 피해 주민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사업을 완공해 감사예배를 드린 가운데, 시공사인 아이엠건설의 정승범 대표를 만나 공사 시작부터 완공까지의 소회를 들어봤다. ◆울진 산불피해 주민을 위한 54가구의 사랑의 집이 완공됐다. 소감은 어떤가. =처음 울진에 방문했을 때, 산불이 남긴 흔적들을 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도 크게 남아 있다. 지옥이 이런 곳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도 처참했고 무섭기까지 했다. 울진 산불로 살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 집을 제공해주는 ‘사랑의 집짓기’는 평생을
요한복음 13장~17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앉혀놓고 그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의 내용이다. 이 말씀이 예수님의 고별사이다. 고별사는 주님이 떠났을 때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이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며 어떠한 사명으로 영혼들과 세상을 향해서 가야 하는지와 내세관을 주신다는 당부와 약속 말씀이다. 예수님의 고별사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위로의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은 14장 1~4절에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심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 제자들은 떠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근
나를 태워 불 밝히는 새벽 탄생은 죽음을 만들지만우리는 사랑을 창조하는 첫 부활의 후예거친 바람에 흔들려도 자기 몸을 태워 어둠을 비치는촛불 심지가 되리라 마지막 숨이 저절로 푹 하고 꺼져어둠 속 밑바닥에 이르는 날에태울 수 없는 사랑은어둠을 부끄럽게 하려끝까지 불을 밝힌다안식을 위한 암흑이여마지막 숨을 몰아쉬며나를 태우는 촛불이여작은 빛 혼불을 드는 사람은 날마다 부활의 새벽을 깨운다
목마른 대지에 부슬비가 내린다.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창밖에 비가 내리면 우리의 얄팍한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그리하여 산천초목들이 모두 촉촉이 빗물에 적셔지면 그것은 우리 가슴 속에도 젖어 들어온다.이렇게 비가 내릴 때 우리 가슴에 젖어 들어오는 것은 그 차가운 빗물만은 아니다. 빗물이 젖어 들고 그리움이 젖어 들고 또 잊어버려야 했던 슬픔과 괴로움이 젖어 든다.비가 내리면 우리는 어째서 청승맞은 상상에 말려들어야 하는 것일까? 따져봐야 여기엔 아무런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빗물이 꼭 눈물 같기만 하므로 사람들은 그로부터
새하얀 피부, 장대한 체구, 예리한 푸른 눈, 붉은 색이 감도는 금발, 언제나 게걸스러운 식욕, 독한 술을 즐기고 늦게야 이성에 눈뜨는 젊은이, 밤낮을 두고 계속 술 마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색슨과 앵글 인은 성질이 포악했는데 이런 점은 후에도 여전했다. 그들 성격의 특징인 이 포악성을 억제할 목적으로 규정된 엄격한 예의범절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코 켈트인이나 라틴인보다 온화해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침략을 하면 사람의 생명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전쟁을 마치 놀이처럼 여겼다. 그들의 역사는 솔개와 까마귀의 역사와
기독교 2천 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된 그리스도교가 1517년 마틴 루터를 비롯해 개혁가들에 의해 종교개혁이 단행되어 하나의 교회로 되는 듯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크고 작은 종교단체로 갈라져 각기 정통을 주장하고 자신들이 가장 성서와 십자가에 가깝다고 역설하여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 여러 개의 교단과 연합회로 갈라진 한국교회의 상황은 아직도 부활절 연합예배가 하나로 기획되지 못하고 각기 이견과 이해충돌로 인해 2023년도 부활절 연합예배도 각기 다른 곳으로 갈라져 드릴 예정
오늘 말씀의 핵심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다.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에서 매달려 있을 때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유대주의자였다. 그리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했던 무리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려고 가던 중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에서 강력한 빛이 사울의 눈에 비추임으로 인해 소경이 되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어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던 사울을 찾아가 안수하
부활절 예배, 경건하고 은혜롭게 드릴 예정…‘한기총 부활’ 알릴 것“안티 기독교에 대항하기 위해선 한국교회가 흠 없이 잘하면 돼”한국교회 최고의 연합기관이지만 선장을 잃어버려 표류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키를 쥔 제28대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는 한기총이 새롭게 되고, 한국기독교와 사회, 정부로부터 명실공히 한국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기관으로 다시 일어서는데 밑거름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회원들의 모든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느 한 곳도 소외됨 없이 소속 교단과 단체의 다양성이 훼파되지 않도록 연합사업을 펼쳐 나가
예수님은 유월절 안식일 전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크고 중요하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신을 나무 위에 매달아 둔 채로 유월절을 지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앞당겨 달라고 청했고 빌라도가 허락을 하자 예수님의 양 옆에 있는 죄수들의 다리를 꺾음으로 죄수들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기에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36절) 대신 군병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고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들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믿음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면서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사람보다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