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18년간 선교사역에만 매진한 국내 선교사가 억울한 누명으로 구속 수감됐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국민들이 타국에서 억울하게 피해를 봐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만 쫓아 고향을 떠나 먼 나라에서 힘들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을 선교사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먹먹하
20년 전만 해도 한국교회의 주류들이 주체가 된 대규모 집회들이 곳곳에서 많이 열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매머드집회의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대규모 운동경기나, 인위적인 축제의 의미 이외는 두지를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매머드 집회를 주관하는 몇사람의 축제이상의 의미가 없다. 우리민족의 현실과 별 상관이 없는 집회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우리의 우방인 미국도 아니며, 유럽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분단된 채, 서로 대결구도에 있는 한반도이다. 그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오염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작 할 때, 한국인들은 그리스도교와 서양의 문명을 혼돈했다. 한마디로 서구문명이 곧 그리스도교로 생각했다.
누구나 살아가는데 인연이 있다.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웃이 있고, 너와 내가 있다. 우리가 있다. 그리고 살 맛 나는 세상을 꿈꾸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1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어느 승무원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객실의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한 차례의 서비스를 마친 후, 승무원 일부가 벙커(여객기 안에 있는 승무
주52시간 이상의 노동을 금하고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은 수입은 같으면서도 일자리는 나누겠다는 정책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취지는 정당한 보수를 보장하고 사용자의 착취를 방지함이다. 이런 목적이기에 주 52시간 이상 노동 금지와, 최저임금 증액을 탓할 수는 없다. 동시에 이로 인해 어렵다는 사용자의 현실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그래도 사랑의 불울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뇌출혈로 쓰러져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힘을 내어 웃으며
중국 후난TV의 방여되고 있는 ‘어메이징 댄스’는 아마추어 댄서들이 출연하여 경연하는 인기 쇼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 프로그램에 중증장애를 가진 12살 소녀와 이 소녀의 엄마가 함께 출연해 10억 중국인과 전 세계인에게 진한 감동을 주어 화제다. 이를 시청한 필자 역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지켜봤다. 양다리가 없는 소녀 ‘지앙 좡 지이’는 발레복을 입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우리민족과 나라가 갈 길의 거울이 되고, 야곱의 생애를 보면 내 인생의 거울이 되는 등, 모든 역사와 선각자들의 삶이 우리의 거울이요, 본보기가 된다.우리가 추수감사절 때마다 ‘청교도’들의 신앙을 즐겨 소개한다. 왜인가. 그들이 거울이 되고, 그들을 거울삼기 위함이다. 어느 때,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며, 어느 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법이 몇 사람의 기득권자와 권력자를 위해서 악용된다면, 그것은 법의 보편적 가치를 잃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법이 일부 권력자와 기득권자를 위한 법이 되어, 사람을 강제하는데 악용되고 있다. 독재국가들의 법은 소수를
태국 치앙라이 동굴에 갇혀 있던 13명의 기적적인 생환 소식이 전세계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현지 유소년 축구팀 소년과 코치는 지난 달 23일 탐 루앙 동굴에 들어갔다 폭우로 출구가 막히면서 고립된 후 열흘만에 극적으로 구조대에 의해 발견되었다.이들은 한 소년이 갖고 있던 과자를 나눠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12명의 소년들이 동굴 깊은 곳에 고립된 뒤
지난 한 달간 러시아 월드컵으로 잠 못드는 밤을 보냈다. 우승은 프랑스가 감동은 크로아티아가 가져가며 마쳤다.전 세계에서 축구 좀 한다는 나라들이 예선을 치루고 지난 6월부터 러시아 월드컵의 우승 트로피를 향해 32개국이 발진(發進)했다.다들 대망의 결승 진출국은 과연 어디일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맞붙을 것인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빅매치는 성
지난주에 저의 목양칼럼 ‘광대 목회, 광대 설교’의 글이 네이버와 다음에 실렸는데 반향이 제법 컸다고 합니다. 많은분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지만 개중에는 비판하는 분도 있었다고 하지요. 비판의 골자는 설교자와 복음의 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약장수 같은 설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저는 백번 옳은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면 광대 설교론을
오래 전, 기억에 노무현 정부 시절에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전담하던 북한 참사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물었다. “왜 남측은 불필요한 팀 스피리트 훈련을 해 가지고 서로를 불편하게 합니까? 미국 애들하고 그거 왜 합니까?” 당황스럽고 예민한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생각했습니다. 이럴 경우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말라는 사전교육을 받았지만, 바른 대답은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문제가 우리 사회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민들 간에도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 사상의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탈출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에 온 예멘 국적의 사람들이 난민인지 아니면 불법 이주 노동자인지 분명치 않다고 보는 견해로 인해 여론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국민들 사이에서는
전 세계의 이목이 태국 치앙라이주 탐루엉 동굴 구조 현장으로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훈련을 마치고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내린 비로 고립된 치앙라이 무빠 축구 아카데미 소속 선수 12명과 코치 1명의 생존을 건 사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이 동굴 소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색에 나선 전 세계 구조대원들의 노력덕분에
7월은 법의 달이다. 요즘 힘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아우성 소리가 오늘 이 땅에 아우성 친다. 성서의 법정신은 법을 지킬 수 없는 바라오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던 히브리인과 떠돌이 등 미련하고, 가련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님나라운동으로 시작된다. 성서의 법정신은 이들의 인권을 위해서 법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도 이들의 인권을 위해서 안식일법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내가 함께 가야 한다. 남한민족만 가는 곳도 아니다. 남북한민족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리고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은 법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와 평등, 평화와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러한 성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독선과 아집에 묻혀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목
바알의 물신숭배가 노예화하고, 몰록 신들이 도처에서 인간의 생명, 특히 어린 생명들을 제물로 요구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질서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성서로 돌아가야 하며, 보잘 것 없는 이웃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고통당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리스도는 만인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만인의 종이다”고 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자유롭다는 것이며, 누구에 대해서도 섬김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되었던 구원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처럼 인성교육의 중요하게 제기되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게 사람들의 가치관이 파괴되고, 사람됨이 흔들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오늘날 인간은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이웃이 없다. 가족도 없다. 일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를 못해 부모형제를 살해하고, 이웃을 살해한다. 그만큼 인간의 감정이 메말라 버렸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