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편향 움직임이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 아베 수상은 집권 이래 위안부 문제에 관한 망언을 비롯해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한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자극하는 정치적 행보를 계속해 왔다.또한 자의적으로 침략의 정의를 해석하고, 전쟁 죄책 고백의 기념비적 사건인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재검토하고 수정하려는 의도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승리를 보장받았고 죽음을 이길 것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우리의 삶은 싸움들의 연속입니다. 일년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지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
누구에게나 힐링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바로 지금이 내적인 상처의 치유를 받아야할 때이다. 내적 치유를 받아야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 자신들이다. 모든 이들에게는 내적인 상처가 깊이 들어있다. 죄악의 충동질이 심한 시대이기에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년층과 장년들까지도 살기 힘든 일들이 많다. 멀쩡히 다니던 직업에서 밀려난 명퇴자들, 중간 퇴직자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이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은 좋으신 하나님
장로교 신자라면 대체로 소요리문답 1번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일생동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하다.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장로 수난시대가 열렸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더욱 그렇다. 거물(?) 장로들 덕에 실로 이름도, 빛도 없이 교회를 섬기는 신실한 장로들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고명하신 선배 목사님께서 장로의 고마움을 표하기를‘나는 장로들을 존경 한다네 왜냐하면 나는 돈 받아가며 예수 믿고 장로들은, 교인들도 그렇지만 돈 내고 예수 믿지 않는가?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그 기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교역자나 성도 모두 자신들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시련과 시험과 고난, 어려움, 애매함, 억울함을 만나면, 예수님이 게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마친 후에 찾아 온 제자의 배반과 당시 기성 종교인들의 반란에 의연히 대처 하시는 모습에서 그
방위사업 비리 혐의로 체포된 모 교회의 장로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탈세 경로로 활용해 비판이 거세다. 이모 장로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받은 수수료를 미국 계좌에 보관하고 있다가 이 교회에 기부금 형식으로 보냈으며 교회는 다시 채무변제 형식으로 이모 회장에게 송금했다고 한다. 10여년 동안 1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부
사도바울이 주님을 만나서 변화된 후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아 3차에 걸쳐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음모와 결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인즉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틀렸고 또 믿음으로 구원받는 교리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정에 서서 심문을 받다가 마지막 베스도 총독의 판단으로 무죄를 선고 받고 바울의 요청에
15편 : 시온의 선민개요 여호와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자의 자격. 다윗의 시. 그는 정직과 공의와 진실을 지니며 이웃에게 행학함이 없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16편 : 은총 간구개요 다윗의 금언 시로서 다윗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노랴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 분깃, 상담자로 묘사한 금언시. 하나님께 대한 굳건한 신앙 고백은 마침내 부활 신앙으로 발전
2015년도 부활절은 이른 봄에 왔다. 샛노란 개나리가 수줍은 자태를 뽐내는 중에 부활절은 우리 삶의 현장을 스쳐 지나갔다. 모든 연합기관들이 함께하는 부활절 새벽예배 없이 제 각각 좋은 대로 모여서 행사를 치르고 말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같은 자리에 모여서 동상이몽 같은 예배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믿
부활 후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친히 이 땅에 나타내신 후 하늘로 오리우신 예수님은 본 그대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승천 후 10일지나자 다락방에 사도들이 문빗장을 지르고 모여 있을 때에 머리위에 성령이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임재 하셨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다. 불의 혀 같은 모양으로 사도들의 머리 위에 임하신 성령은 형체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성령이 역사하는 신앙공동체 회복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중심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몸으로 실천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다. 선교초기 한국교회가 가부장적인 지배이데올로기와 봉건주의 사상으로 인해 억압당하는 여성들을 향해 성령운동을 벌였을 때,
하루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라.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때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 버리고 주님을 좇았다고 말합니다. 만일 오늘날 나에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어쩌면 그 제안을 무시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잘 안다할지라도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물을 버려두고,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특히 왜곡된 성경관을 갖고 있는 현대 신학자들의 회의론을 경계해야 한다. 18세기 유럽에 계몽주의 철학이 퍼지면서 인간의 자율성을 강하게 신뢰하면서, 기독론의 오류와 곡해가 심각하게 초래되었다. 그 후로 현대 신학자들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버리는 엄청난 왜곡을 거듭
부활절 예배를 드리며 눈물이 앞을 가리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한태동‘ 교수의 강의 내용 중 일부나마 함께 나누어 봅니다.“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그런데, 이거 잘 못 번역하였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건 믿는 자가 주체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됐느냐? 우리 말 번역할 때 사용한 것이
‘육적인 몸’으로 사는 모습과 ‘영적인 몸’으로 사는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강일상 목사가 [부활되어야 할 부활]에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개도 분명 육을 가진 육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몸’이라고 일컬어지는 생존양태를 가지고 있다. 먹고, 싸고, 자고, 짖고, 으르렁거리다가 물어뜯기도 하는, 그것이 개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사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는
본래 서양에서 문화라는 말은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이 어떤 작용을 가함으로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 낸 것’으로 정의되기도 하나 이 용어를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국어사전은“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정신적·물질적인 성과《학문·예술·종교·도
8편 : 성호 찬양개요 찬양의 시로 분류되는 시이다. 19편과 더불어 자연계의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영광을 찬양인 다윗의 시이다. 모든 만물을 통해 위대하심이 하늘, 어린아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다. 나타낸 인간은 가장 작은 존재지만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셨음9편 :공의 찬양개요 열방 중에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 감사와 호소의 시. 시인은 지난날
똑! 똑! 똑!누가 찾아 왔을까문 두드리는 소리에다시 뛰는 심장 박동을 듣는다깨어 일어나라!푸른 잎은 부드러운 음성을 붙들고마른 가지에서 기지개로 깨어난다.똑! 똑! 똑!죽음의 어둔 밤을 이기고 승리의 예수님이 새벽빛으로 찾아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죽음의 긴 겨울에서 일어나새 생명으로 다시 피어나는 십자가 사랑 푸른 교항곡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