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초기 순전한 믿음으로 선택된 목회자들은 세상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과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었다. 이들이 입에서 나오는 복음을 듣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들의 신앙은 성도들에게 입에서 외치는 말씀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실제 목회자의 인품을 존경하고 따르는데 아무
작금의 사태를 직면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지탱한 교회 조직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앞으로 교회가 세상에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에 교회가 빛이요 소금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지 현 교회를 운영하는 제도라는 틀 속에서 보았을 때에 희망이 좁쌀만큼도 없다. 어느 누가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고 교회에 들어와 헌금하고 기도하고 인간의 약한 부분을
교회는 기독교 신앙으로 거듭난 무리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교회를 이룬 무리들을 가리켜 영혼이 거듭난 자들이라 한다. 거듭난 자라고 하는 무리 가운데 신앙의 성품이 올곧은 자들에게 교회는 목사, 장로, 집사, 권사라는 직분을 세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한다. 그런데 요사이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라사의 광인과
한국교회는 과거 선교 초창기 자국의 성경 번역본이 부실 한 때에 겨우 당시 사용언어를 기준으로 번역한 번역본을 사용하다보니 성경을 읽는 목회자나 성도들의 종교적인 사용 언어가 양반이 종들에게 하는 식의 언어 사용이 보편화했었다. 그러다가 성경번역이 현대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자 차츰 강단의 언어 사용이 예의를 갖추기 시작함과 동시 성도들의 언어도 순화되기 시
기독교는 세상에 종교군의 하나로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기독교는 기독교인 입장에서 보면 세상의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범한 죄를 용서 받고 죽기 전 까지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지혜와 돌보심을 받는 것이 기독교의 필요성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시고 그 가운데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이 기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그 기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교역자나 성도 모두 자신들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시련과 시험과 고난, 어려움, 애매함, 억울함을 만나면, 예수님이 게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마친 후에 찾아 온 제자의 배반과 당시 기성 종교인들의 반란에 의연히 대처 하시는 모습에서 그
부활 후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친히 이 땅에 나타내신 후 하늘로 오리우신 예수님은 본 그대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승천 후 10일지나자 다락방에 사도들이 문빗장을 지르고 모여 있을 때에 머리위에 성령이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임재 하셨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다. 불의 혀 같은 모양으로 사도들의 머리 위에 임하신 성령은 형체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새봄과 함께 찾아오는 부활의 기쁜 소식은 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희망이요 삶의 환희다. 부활을 또 다른 의미로 이해하면 거듭 태어났다고 함이다. 거듭 태어났다고 하는 일반적 의미는 인간이면서 짐승 같은 사람이 어떤 계기를 만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즉 개과천선(改過遷善)을 말하며, 악한 일을 꾸미던 사람이 악한 꾀를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만
3월은 기미독립 선언과 만세 운동이 일어난 달이다. 기독교는 일제치하에 나라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오는 시련을 감당했다. 일제치욕과 육이오 치명의 여파로 대한민국에는 또 다른 사상 전쟁이 지금까지 나라와 사회를 괴롭히는 종양이다. 교회는 세상의 사상과 이념 대립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포용하는 신령한 단체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놓
먼저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이 국란을 당할 때와 안보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자국의 젊은이들을 보내 피를 흘려 도와 준 혈맹국인 미국 대사의 테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림과 동시 대사의 쾌유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지금 이 사회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 못하는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는 무리들이 판을 쳐도 사회는 그들에게 잘못
2015년도 부활 절기를 앞두고 한국교회 분열 고질병이 또 도졌다. 교단연합이 주관하는 연합예배는 오후에 NCCK는 새벽에 각자 분열의 길을 걷겠다는 교계 소식이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사하고 더럽고 매스껍다. 뻑 하면 갈라서는 분열의 고질병이 아마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 하셔야 끝날 것 같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분열을 일삼
지난 7일 sbs에서 보도한 “그것이 알고 싶다” 홍혜선 편의 게시판 내용은 한국전쟁 메시지, 전쟁 기간이 5개월이며, 종로와 청와대가 첫 번째 타겟이다. 저에게 전면전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는데 주님께서.... 북한이 어떻게 인육으로 먹일 수 있습니까 라는 내용이다. 북한과의 전면전으로 인해 작년11월에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성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교회를 원어로 에클레시아 직역하면 “밖으로 불러낸 무리” 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세상으로부터 따로 불러낸 무리 즉 세상과 구별된 무리를 교회라고 하며, 그들을 성도 즉 거룩한 무리이라고 한다. 이천년 전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룬 성도들은 말씀 그 자체로 소명을 감당했으며 복음전파를 생존을 위한 우선순위 맨 윗자리에 두었다. 성도들의 소유는 곧 하나님의
한국교회의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신학교를 들 수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를 지금 시점에 검토하면 수적으로 너무 난립해 신학교가 올바른 교육을 시켜 지도자의 자질을 제대로 훈련하여 갖춰지게 할지 의문이다. 신학교는 정식 학교 법인으로 인가를 받은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이 뒤엉켜 실제 신학교 시설은 많은데 적합한 학생들 지원
매년 똑 같은 마음으로 금년은 좀 더 나은 해가 될 것이다. 라고 작심 반 기대 반하였지만 연말 결산해 보면 연초의 다짐은 그저 구호와 작심에 불과하고 며칠 만 지나면 살아온 타성에 젖어 매년 반복된 생활을 하고 만다. 한국교회의 고민도 이와 비슷하다. 연말연시에 좀 달라지겠거니 하면서 교회마다 갖가지 행사를 개최한다.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 신년예배 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기독교 창립 2천년이 경과한 지금 교회는 너무나 성경과 멀어진 모습이 염려스럽다. 마치 말라기 선지자로부터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4백여 년간의 암흑시대의 종교와 종교인들의 모습이 오늘 기독교와 겹쳐진 모습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사도들과 초기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했다. 이유는 당시
기독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믿는다. 한국교회는 교회마다 은행에 깊숙이 예치한 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기를 촉구한다. 한국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내 교회성도들이 내는 헌금 내 교회 돈이므로 내 교회 마음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에 갇혀 있다. 네 교회든 내 교회든 교회에 내는 연보는 하나님의 것임을 다시 신앙고백 해야 하지 않을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이 처음 탄생 하실 때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 양들의 우리 속에서 그것도 양의 여물통에 태어나셨다고 한다. 빌립보 기자는 예수님의 오심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분으로 묘사한다. 그것도 이 세상에 제일 낮은 자리에 오셨으며 죄인들의 죽음의 자리에 오셨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을 처음 본 자들은 목동들이요 다음은 동방에서 온 박사
교회는 크든 작든 12월이면 새해 예산을 세워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이유를 실천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교회는 교회 운영을 중점으로 예산을 세우다보니 정작 성경에 계시된 대로 편성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껏 예산은 교회 운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겨우겨우 경상운영이 적자가 아니면 교회는 그런대로 운영되었다고 자위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성장해 경상운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