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인 9월 한국장로교 제100회 총회가 각 교단별로 일제히 개회된다. 세월의 수많은 흐름 속에서 십자가지고 숨질 때 되도록 찬송 부르면서, 교회와 노회와 총회를 지켜낸 분들이 있었기에 100회기라는 거대한 원년을 맞는다. 그러나 제100회 총회의 과제는 그 어느 회기보다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교단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작금의 여러가지
이제 9월이면 본격적으로 각 교단 총회가 개최된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열리는 총회지만 매번 지적을 받는 것은 역시 생산적인 총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과거의 잔재인 금품 향응으로 얼룩진 타락 선거가 아직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고 기득권을 서로 차지하려는 교권 다툼도 달라진 게 없다.시대는 변하고 사회는 교회 개혁을 원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는 이를 외면
예장 통합총회가 ‘목회자 윤리지침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이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재정비리, 추문, 명예훼손 등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받아 왔다. 특히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어느덧 일제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한지 70년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에서 벗어난 감격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1910년 8월 28일 주권을 빼앗기고 피나는 투쟁으로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기미년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때 기독교인의 뛰어난 신앙과 애국심을 그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1939년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산과 들과 바다로 지친 몸과 영혼을 편안히 쉬게 하고 재충전을 힘을 얻는 시간이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재충전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현대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바쁜 일상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쫓기는 삶을 강요하고 이로 인해 심각한 병에 걸리기도 한다.
전국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각 교회가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비롯해 중고등부 수련회 준비로 한창이다. 수련회 프로그램 준비도 중요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안전 관리 대책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로 안전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각종 안전사고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무엇보다 생명을 좌우하는 안전문제에
신록의 계절이 바야흐로 다가왔다.7월이 시작되고 보니 어느덧 2015년도 절반을 보낸 셈이다. 7월에는 맥추감사절이 있고 국가기념일인 제헌절이 있다. 그리고 여름방학과 함께 여름성경학교, 교회 각 기관 수련회, 목회자수양회 등 모든 분야에서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한 달이 된다. 7월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다시한번 생각하고 넘어 가야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한국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지녀야 할 공동체성과 사회적 연대성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것은 종교적 특정 개인주의, 교회이기주의, 목회자 이기주의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개인주의적 기복신앙과 사회적 책임성 회피, 그리고 연대성 상실로 인하여 만들어진 성숙하지 못한 교인들로 인해 나갈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은 이기심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나라와 민족, 애국심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명을 다했다.선교 초기 병원과 학교를 지어 병들고 무지한 민중들을 일깨우고 희망과 소망을 심어 줬으며, 일제의 압제 속에서는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렸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당하신 군경장병을 비롯한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가정도 국가도 사회도 나라를 지킨 고귀한 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흑인영가에 ‘내 집 같은 곳 없도다 내 집 같은 곳 없도다’ 라는 노래가 있다. 어찌 그들뿐인가?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면 가정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혼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비행도 위험수위가 넘어섰다. 부모에 대한 효심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우리의 가정윤리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사회범죄도 엽기적이다 못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5월은 가정의 달임에도 패륜적인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경남 사천에서 아내와 남매가
더 이상 교회는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성범죄자들이 은밀하게 숨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회자가 지하철역에서 여성들을 몰래 촬영하다 덜미를 잡혔는가 하면, 여신도 상습 성추행 논란으로 입에 오르내렸던 모 목사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직자인 목사가 여성 교인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오월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지나 온 세상이 본격적인 여름맞이를 준비한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 만개해 자태를 자랑하며 산과 들은 하나둘 푸르른 녹음으로 물든다. 그래서인지 오월은 축복과 새출발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성년의날 등이 오월에 몰려 있고, 결혼식 등 각종 축제와 행사로 곳곳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목적이 분명하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라고 우리를 세우셨다. 즉 생명 구원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미국의 유명한 문필가 헨리소로우는 국가에 대한 봉사 중 육체, 두뇌, 양심 세 가지 봉사가 있다고 말했다. 어디 국가뿐이겠는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우리
토인비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갈대아의 문명사회가 경직되면서, 자유와 정의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자유가 없는 거대한 나라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출애굽 사건도 이집트 왕국에서 신음하는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억압과 수탈, 부역 때문에 고통당하던 노예들이 파라오 밑에서 탈출해, 가나안땅에
부활절 행사가 갈수록 축제적인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부활절연합예배도 끼리끼리 제각각 치러졌다. 이런 부활절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더 중요한 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절기인 부활절에 대해 일반인들은 물론 성도들조차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가 결국 기독교문화의 부재라는 것을
어김없이 부활절의 아침이 밝아온다. 그러나 세상은 부활의 기쁨보다 십자가의 고통을 먼저 느끼게 하고 있다. 거짓과 불의가 판치고 돈과 권력을 가진 강자들이 약자를 짓누르며 온갖 불법을 행해도 세상은 그저 침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 기독교의 신앙은 어떠했을까. 그냥 십자가의 고통만 남았을지도 모른다.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에서 부활하지 못했
사무엘 루덜포드는 말하기를 “배는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가고 새는 날개가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아갈 수가 있고 성도의 십자가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천국에 간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지신 그 십자가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한국교회에 우리 모두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그 예수의 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무거워도 내
우리나라는 갈수록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노령인구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문제는 노인인구가 증가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수십 년에서 100년 이상 소요된 것에 비해 그 절반 정도의 시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해 버런 것이다. 이렇다 보니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급격
한국교회는 해마다 3월 1일을 전후해 3.1절 기념예배를 드려오고 있다. 이는 3.1운동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고 3.1운동이 기독교정신의 발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교회와 교인들은 3.1운동의 중심에서 애국애족의 기독교정신으로 무장한 채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 퍼런 총칼의 위협에도 한 치도 물러남이 없었다.물론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