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단숨에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인생은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사명은 삶에서의 순종입니다. 영적 쉼에 대한 조용한 준비는 힘을 더하는 또 하나의 사역입니다.어느새 찾아온 100세의 삶, 그것은 얼마나 쉼이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가끔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의 오만함이 쉼을 부끄럽게 합니다. 평생목회를 꿈꾸며 원로목사님들
모래와 돌로 깔린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세레자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처형을 당한 갈릴리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시어 그의 선교 제1성을 외치셨다.“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목전에 도달했다”‘회개하라’는 말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가
오늘 한민족에게 있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서양의 역사에서가 아니라, 현재적 분단된 이 민족의 상황에서 다시 고백되어야 한다. 이 땅의 여종들이 광복 72주년을 맞아 8천만민족을 위한 기도성회를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역사와 서양기독교, 문화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피압박민족의 역사와
놀란 강강물은 몸에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모래밭은 몸에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새들은 지문 위에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꾹꾹 찍고 돌아오는데그래서 강은 수 천리 화선지인데수만 리 비단인데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수십억 장 원고지인데그걸 어쩌겠다고?쇠붙
나와 우리의 선배 목사 시절에는 천주교회는 의식과 권위주의자이며 형식과 외식주의자로 여기며 일반 국민과 분리되는 이단자로 가르치는 선교를 했었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대중화되며 엄청난 부흥의 불길을 타올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변해도 많이 변하고 있다. 마치 남과 북이 연방 정부를 세우자는 통일론처럼 신, 구교회가 연합해서 가톨릭화 하자는 시대로 가는
지금까지의 글에서 탈피, 오늘의 상황에서의 이 민족의 여성들이 나가야 할 방향이 무엇이며, 하나님나라운동의 실현이 곧 세계평등, 남녀평등, 민족평등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상담학을 전공하고, 한부모가족들과 함께 자조모임을 이끌면서,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실현은 이 땅에서 평등한 질서가 뿌리를 내리게 하는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다.세계를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출애급기 16장3절) 실제로 노예생활은 배부른 생활이 아니다. 광야에서 굶어 죽게 된 상황에 비해 최소한 생존이 허용되었던 노예 생활을 미화시킨 성경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굶주린 이
보편적으로 교회와 예배 당, 그리고 성전(聖殿)에 대한 구분력이 우리 한국교회에 없지 않으련만 애써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과연 예배를 드리는 교회라는 이름의 건축물이 교회이고, 성전인가?건물이 성전인 시대는 시대적으로 구약시대이다. 솔로몬 성전이 그렇고, 스룹바벨 성전이 그러하며, 헤롯 성전이 그렇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사역을 통하여 더 이상 성전은 그
“이는 그가 너희를 (=성도를)”7-(4) 넷째 ( 너희, 성도 : 하기오스 : άγος ) 일반적인 상태나 사용법과는 ‘분리된, 봉헌된, 신성한’ 이라는 뜻을 가지며 사람들에 대하여 ‘초대교회 일원, 성도’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고대 헬라에서 이 말은 경외의 대상을 가리켰으며 구약에서는 거룩한 상태의 표
8월 15일은 일제에 빼앗겼던 국권을 회복한 의미 있는 날이다. 36년의 암흑 같은 일제 치하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된 광복절이다. 칠흑같이 어둡던 민족의 앞길을 밝게 비추셔 빛을 되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목숨을 바쳐 희생한 우리 선열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광복 72주년이다. 일제 치하의 고통 속에서 우리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또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과 민족의 구원을 위해 불처럼 활활 타올랐던 신앙의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린다. ‘정면교사’란 말이 있다. 본 받을 만한 대상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면교사’와는
요즘 ‘군함도’라는 영화가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하시마는 일본 나가사키현 노모반도 서쪽, 나가사키항에서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멀리서 보면 섬 모양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 또는 그곳에 강제 징용된 사람들의 삶이 지옥 같았다 하여 일명 ‘지옥섬’이라고 불린다.일제
“기독교인에게는 국경이 없어도 조국은 있다”는 말이 있다. 8.15 광복절은 내 조국이 일본의 36년간의 압제에서 나라를 빼앗겼을 때 우리의 힘으로 내 나라를 찾은 것이 아니라, 애국가의 가사 대로 하나님이 도우셔서 일본을 패망케 하시고, 대한민국 내 조국이 해방된 날이다. 우리 성도들은 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지만, 8.15를 맞는 주일은 한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남북 평화통일에 새로운 초석을 놓는 뜻 깊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민족의 소원은 통일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 교회는 그곳에 있어야 한다.6.15 선언과 10.4 선언은 금방 통일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통일에 대
갑질문화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연일 소위 있는 사람들의 갑질로 인한 뉴스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어우러져 살아가야 함에도 이러한 잘못된 행위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데 씁쓸한 마음뿐이다. 얼마 전 모 기업체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행한 갑질로 인해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물론 은연 중에 당연히 그럴 것으로는 예상했
36년 동안 일제의 갖은 억압과 핍박 속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했던 이 민족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광복을 맞이해, 7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았다. ‘빛을 되찾았다’는 광복(光復)의 의미처럼,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도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외형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느낌
사탄은 예수님을 높은 산 위로 데리고 올라갔다.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게 하면서, 예수님이 자기 앞에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두가 장담하기 어려운 유혹이다.사탄의 예수님을 향한 유혹은 성서의 말로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이웃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주검이 냉동고와 차디찬 물속,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신학대학 교수가 자신의 딸의 주검을 방안에 1년 동안 방치했다. 엄마가 동거남과 함께 3살된 아이를 폭행했다. 이웃의 언니가 아이를 살해 했다. 이러한 뉴스들이 매일매일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에 그대
한달전만해도 온 나라가 가뭄으로 난리였다. 말라가는 저수시에 갈라터진 논, 대책없이 발생하는 거대한 산불, 식수부족으로 인한 제한 급수 등등... 온통 물부족으로 인한 국가적 재난은 나름 자부심이 있던 치산치수(治山治水)에 대해서조차 회의감이 들게 만들었었다. 그러던 나라가 한달 뒤 지금은 온통 물 때문에 더 큰 난리다. 집중호우지역의 비피해가 워낙 심각하
'청보리밭에 오는 봄'진눈깨비 날리던 겨울엔 생솔가지 군불 지핀 아랫목 뜨신 맛에 살았다 이불 홑청을 벗기듯 청보리밭 살얼음 녹이는 돌개울 물소리 비늘 돋친 바람에 실리는 씀바귀의 봄 몸살 은쟁기 보습에 뭉툭뭉툭 겨울이 잘려 나간다 젖은 나목의 가지마다 불을 켜는 눈망울들 오요요 기지개 켜는 버들개지 夢精하는 들녘 내 이제 들로 나가 더운 피 흐르는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