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무조건 잘 달린다고 좋은 차가 아니다. 속도조절, 정지, 방향 전환 등을 잘 해야한다. 어디 차 뿐이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뺑소니 차에 숨진 강모씨의 부인과 사망자의 아버지 강태호씨는 이 시대에 남다른 잔잔한 감동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용서 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강팍한 이 세상에서 도무지 보기 힘
현재 ‘저출산’이라는 재앙이 한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출산율 1.08명!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6명은 물론 국가가 아닌 홍콩(0.95명)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재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50년 한국 인구는 지금의 절반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농촌 지역에선
우리 사회가 급속히 노령화로 접어들며 교회에도 청년이 줄고 노년층 성도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70-80년대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의 주역은 바로 청년들이었다. 기독청년회의 활동은 선교 뿐 아니라 봉사활동, 민주화 운동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이들 청년들이 이후 교회 장년층을 이루었으나 점차 청년들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어느새 교회에서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계획을 세우고 내일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더 나은 새해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로워지려면 마음부터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어린이들의 노래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다.꽃가지에 내리는 가는 빗소리가만히 기울이고 들어 보세요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아라너희들도 이 꽃처럼 맘이 고아라첫째, 사랑의 사람이 되기
굴곡진 2014년 묵은해를 보내고, 희망을 꿈꾸는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수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저마다 가슴에 크고 밝은 포부를 하나씩 담는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똑같은 반복의 역사가 재현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든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부풀은 소망이 금방 사라질까봐 긴장감마저 든다. 이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마다 개혁과 갱신을 앵무
지난 2014년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사회적 신인도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가 충분한 내부 자정력을 가지고 스스로 조정하고 적절한 수위를 지켜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사회적인 논란으로 비화된 일련의 사건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아냥거림을 자초하는 빌미를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돌이켜 다시 생각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찾아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계가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지고 있다. 문화 행사, 사랑의 쌀 나누기, 양로원과 고아원 방문, 성탄트리 점등, 불우 이웃 돕기 등을 통해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대형교회나 단체들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중소교회, 농어촌 지역 교회들은 소외되고 있는 게 현실
성탄절이 다가 오면서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생각나는 것은 크리스마스 추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성탄절 카드 보내기 등 성탄절의 풍경을 알 수 없겠으나 중년층들은 그래도 어릴 적 기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탄일종이 땡, 땡, 땡…’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노래가사다. ‘크리스마스’, 이맘 때가 오면 어른이 됐어도 그 캐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지 않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해 말라버리게 한 사건은, 열매가 없는 허례허식에 가득한 종교,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지배기구의 본산인 성전에 대한 저주이며, 경고이다. 무엇보다도 이 경고는 내실은 없고,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한국교회를 향해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한국개신교는 ‘성장주의’와 ‘복음’ 그리고 ‘하
새해가 되면 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이렇게 연말이 다가오면 이루어진 일보다 못다 이룬 일이 너무 많아서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금년 연말에도 예외는 아니다. 꼭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할 일, 많이 쌓여있는데 이렇게 일년이 다 지나가고 있다. 이제 2014년 연말이 남아있다.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연말을 이웃과
길거리가 온통 ‘빼빼로’과자로 물들었다. 저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바야흐로 ‘빼빼로데이’가 돌아온 것이다. 모 기업체는 이날을 매출량 최대일로 정하고, 모든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애를 쓴다니 특별한 날이긴 하나보다. ‘빼빼로데이’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기념일로, 밸런타인데이처럼 특정한 날에 초콜릿 과자인 ‘빼빼로’를 주고받는 날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라 하겠다. 물건을 살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칭찬이나 배려를 받았을 때에도 쉽게 쓰이는 말이다. 고마운 마음에 대한 표현이기에 듣기에도 정겹다. 하지만 오늘날 ‘감사’라는 말이 점점 물질적인 부분에만
이제 금년도 두 장의 달력만 남아있다.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때때로 추위를 느끼면서 참 세월이 빠른 광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금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도 빨리 가는 순간들인가를 세삼 느낀다. 요즘 한국 사회는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환풍기에 소중한 생명을 잃은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도 안전을 강조
한국사회 안에서 양극화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또한 가난한 교회와 부자 교회 사이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 양극화의 문제는 인류의 출연과 함께 생긴 인간의 사회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극화의 문제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
일전에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극한에도 살아남은 ‘독한 벌레’ 이야기이다. “지난 2011년 5월 16일 마지막 우주 비행에 나선 미국의 우주왕복선 ‘인데버(Endeavour)호’에는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우주를 여행한 특별한 생물들인데 ‘짧은꼬리 오징어(bobtail squid)’와 이 오징어의 몸속에서 공생하는 ‘발광 박테리아(Vibri
9월 장로교 총회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각 교단별로 새로운 회기를 이끌어갈 임원을 선출하고, 산재된 현안을 처리하는데 골몰을 앓았을 것이다. 총회의 원활한 진행과 함께 총대들의 다양한 의사가 잘 반영된 총회도 있을 터이고, 안타깝지만 안건을 두고 갑론을박을 다툰 총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총회의 발전과 한국교회를 위한 행동이었음은 분명하다. 이제
탈무드에 나온 말이다. 어떤 사람이 쓰레기더미를 하나 샀는데 그 속에서 값진 보화를 발견하게 되어서 그 보화를 판 사람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러자 판 사람은 쓰레기 전부를 판 것이니 그것도 당신 것입니다 하며 거절했다. 그래서 그는 랍비를 찾아갔다. 랍비는 그 말을 듣고 당신네 아들과 상대 딸을 결혼시켜서 그 보화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였는지 한국교회의 가장 큰 과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개혁은 요원한 이야기다. 그저 공허한 말만 넘칠 뿐이다. 이러한 문제가 대두된 이후, 아직까지 진정성 있게 회개한 목회자를 찾기가 힘들다. 이제 교회개혁을 외치기조차 지친다.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 도배질하고 있는 교회 소식은 그야말로 부끄러운 모습들뿐이다. 유명
매년 9월이면 한국교회 장로교의 총회가 일제히 열린다. 그러나 총회가 연례적인 형식적 행사로 끝난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어 성도들에게 적지 않게 실망을 안겨 주고 있다.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총회는 각 교단 총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뒤돌아보고 향후 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 또한 앞으로
요즘 사람들의 이기주의는 철저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웃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학교에서도 개인주의화된 교육 분위기에서 배우며, 심지어 신앙생활도 개인주의를 넘어 집단이기주의 또는 개인이기주의적인 모습이 노골화 되어져 있다.주변에 예배당이 많다 보니 교인들도 수틀리면 “이 교회밖에 없냐?”하며 교회를 옮겨버린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깨달음의 신앙생활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