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크든 작든 12월이면 새해 예산을 세워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이유를 실천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교회는 교회 운영을 중점으로 예산을 세우다보니 정작 성경에 계시된 대로 편성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껏 예산은 교회 운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겨우겨우 경상운영이 적자가 아니면 교회는 그런대로 운영되었다고 자위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성장해 경상운영을
교회를 보는 세상의 이목은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법과 정치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개 교회 정치로부터 크게는 교단 정치, 더 나아가 교단들의 연합체 정치를 위해 나름대로 법과 규칙을 제정하는 정치 그룹을 필요로 한다. 과거 유일한 교회 체제를 자랑하던 로만 카토릭 시대에는 교회의 법이 세상나라 법위에 군림하여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던 시기
한국교회 목회자 그룹과 연예인 그룹을 빗대어 말하는 일은 성질이 다른 그룹의 비교라는 점에서 그리 탐탁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그룹은 모두 대중들 앞에 선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물론 대중들의 성격이 한 쪽은 종교적인 신앙관계요, 다른 쪽은 오락과 끼를 내세워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점이 판이하게 다르다. 연예인들과 관객간의 관계도 종교처럼 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되게 일어났다. 조선일보 인터넷 사회면에 동대문구 장안동 주택 1층에 세 들어 사는 60대가 방에서 목을 매 숨졌다는 기사다. 죽은 최씨는 지난 3월에 어머니가 별세 하시자 혼자 생활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도움의 손길이 구석구석에 미
교회의 구성 요소는 믿음의 대상인 신과 신을 믿는 신도들과 신도들을 신께 인도하는 제사장 즉 성직자와 모이는 장소다. 초기 교회가 시작할 때에 믿음의 대상과 신도와 성직자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지만 모이는 장소는 그 곳이 어디이든지 상관 치 않았다. 강변, 해변, 나무 그늘 아래 심지어 카타콤이라는 무덤 속이라도 안전하게 모일 수만 있다면 그 장소는 그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주일 강단에 설교 시 거의 성의라는 가운을 교회력에 맞추어 토시의 색을 바꾸어가며 입고 선다. 보통 양복 차림이나 평상복으로 강단에 올라서는 것보다 정결하고 신성해보이기 때문에 가운을 입는 것은 거의 불문율에 속한다. 목회자로 안수할 때에 성의 착의식이 어느 때부터 인지 몰라도 개신교 모든 교단에서 거의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교회와 돈 어떻게 보면 아주 밀접한 관계요, 또 어떻게 보면 교회는 세속을 떠난 신령한 곳이요 돈하면 세속적인 모습의 대표적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거룩한 교회도 돈 맛을 알게 되자 이제는 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가 중요한 일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교회가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성도들이 신앙에 의해 자발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법으로 믿고 육과 영혼의 법으로 삼아 영육 생존에 필요한 법과 규칙과 행동 강령, 양심의 법으로 믿어 그대로 실천한다. 세상이 법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과 모세5경에 계시된 613개(?)의 계율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법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규칙이며, 사람과 사회와의 관
지난 7월29일 천주교, 불교(조계종), 기독교, 원불교, 4대종단 지도자들이 통진당 비례대표 이석기 국회의원에 대한 국가내란음모죄에 대한 처벌 선처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국회 전 현직 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는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재향군인회와 보수 단체들도 일제히 반성과 회개가 없는 정치범에게 무조건 탄원한 종교인들의 무
교회는 세상에서 따로 불러낸 거룩한 무리들이다. 세상의 속된 마음과 생각 그리고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 바로 교회를 이룬 구원 받은 무리들이다. 안타깝게도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점은 겉으로는 성경 손에 들고 주일이면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모습이 다르겠으나, 속으로는 세상 사람이나 신자나 살아가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신자들도 세상 속에 살면서 생
6,70년대의 한국교회 강단에 선 목회자들은 나라와 백성들의 생활이 가난해 먹을 것이 부족할 시절에 초근목피로 허기짐에 시달리면서도, 말씀을 외칠 때에는 선지자, 예언자의 정체성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강단의 말씀 선포가 살아있었고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비록 사람인 목회자의 입에서 외쳐지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믿어 일상생활 속에서 순종하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성경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교회와 돈은 아주 밀접하게 얽혀있다. 교회는 선교와 전도와 교회봉사와 운영에 교회의 규모에 따라 예산을 책정해 사용한다. 그런데 교회의 규모
세월호의 실제 사주이자 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구원파의 지도자라 하는 유병언의 최후의 모습을 본 국민들은 입이 있으나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독교와 연관된 교회 지도자의 종말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종교인 그것도 한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는 자의 마지막 죽은 모습을 본 후 종교의 허구와 부질없는 죽음에 아연실색이다. 인간 생명의 주인이신
한국교회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 형식은 성경에 없는 이상한 형식이 오랜 기간 존속하다보니 이제 잘못된 형식이 바른 예배 모습으로 잘못 자리한 것을 과감히 도려내고 바른 예배가 산제사가 되도록 개선해야한다. 의자에 앉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는 하나 실제는 예배드리는 자의 편의를 교회운영자들은 편하게 제공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예배당에 와서 편
얼마 전 대형교회 재정 장로의 죽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의혹도 크게 제기되어 있는 가운데 교회 재정 관리의 총 책임자가 목사냐 장로냐 교인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교회의 최고의 결제권은 담임목사에게 있고 담임목사는 교회를 대표하기에 결정권자다 아니다 성도들의 대표인 장로에게 있다. 아니다 헌금하는 성도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거기에다 교회 운영
양복은 우리사회에 성인들이 갖추어야 할 정장으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기업인이 비즈니스나 공개적인장소에 나갈 때에는 의례히 의관을 정제 한다는 말과 같이 양복에 넥타이는 매는 것이 세계적인 복장의 정도다. 사회나 종교계에도 정장 차림이라하면 양복을 차려 입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교역자들도 양복을 차려 입는 것은 목회 활동 중교인들을 면담하거나, 강단에
한국교회는 한 달이면 교단하나 한해에 교단 연합회 하나가 탄생한다는 속설이 있다. 지난 주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주축이 되고 참여의향을 비춘 육백여명의 교역자 중 약 사백여명이 넘는 교역자가 참여하여 또 하나의 교단을 창립했다는 소식을 교계 신문들이 비중 있게 다루었다. 신문을 보는 층은 교회 성도들 보다는 대개 교역자들이며 독자 가운데 지지 측 보
암은 병이 속에서 치료불능의 상태에 도달 할 때까지 자각증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른하고 피곤하고 소화가 잘 안되어 병원을 찾은 환자는 진찰 결과 목숨이 한 달 내지 잘 하면 6개월 정도 남았다는 의사의 말을 받아 드리지 못해 병이 더 악화 되 그 보다 더 빨리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병원에 의사에게 초기 진찰시기와 치료시기를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죄로 영원히 멸망 받은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거듭나게 함이다.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교회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해야 할 영적 사명을 가졌다. 하나님은 세상의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만이 구원 받도록 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믿음과 불신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 시키신다.
국민의 25%가 한국교회를 이룬 인적 자원이다. 교회는 고유한 믿음을 신앙하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근간으로 살아가도록 함과 동시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데 필요한 법, 질서, 교육, 윤리, 도덕, 등을 가르쳐 신앙인의 인성과 심성이 올바르게 성숙되도록 한다. 지난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3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청해진 해운사도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