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셋째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올해는 11월 15일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날을 준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준비한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잘 아는대로 영국 국교회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서 시작된다. 초기 102명의 필그림파더스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 신대륙에서 1621년 첫 수확을 감사하며 드렸고, 1789년 11월
“내 잘난 맛에 산다. 내가 잘해서 그렇지.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역시 난 최고야. 어디서 훈계야” 등 작금의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말 그대로 모든 일이 자신이 잘나서 잘 해결됐다는 자부심이 짙게 깔려 있다. 극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을 꺼내놓지 않는다. 감사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에
귀 신문이 발간한지 벌써 3주년이 되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귀 신문이 발전해 온 것을 애독하는 독자로써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귀 신문은 한국교회를 향해 기독교 언론지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함은 말할 여지가 없다. 오늘의 한국교회 위기는 한국교회 지도자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한국교회 지도자 위기를 두 가지 면으로 말하고 싶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장과 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만 하는 긴박한 공통과제를 앉고 있다. 예수님도 이에 적절한 말씀으로 겨자씨와 누룩에 대한 비유를 동시에 말씀하셨다(눅13:19-21). 겨자씨는 성장을 상징하고 누룩은 변화를 뜻한다. 첫째로 교회는 겨자씨처럼 성장해야한다. 겨자씨는 씨앗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크게 자라서 나무가 되어 그늘도
장로교 9월 총회가 대부분 끝이 났다. 각 교단은 저마다 새로운 임원을 선출하고, 산재된 각종 안건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쏟았다. 성총회로 끝난 교단도 있을 것이고, 불협화음이 있었던 교단도 있었을 터이다. 어찌됐든 모두가 교단이 잘되기 위한 논쟁이었기에 서로 이해하고 넘어갔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총회가 시끄러운
먼저 한국교회 모든 교단의 9월 총회가 성총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해마다 바래왔지만, 올해는 특히 100회를 맞았으니 두 배로 기원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새롭게 거듭나 이 땅에 희망을 주는 역할을 다하기를 소망한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작금의 한국교회는 100회 총회가 변화를 위한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우선 한국교회가 하나 될
대다수의 장로교단 총회가 일제히 열리는 9월이 다가왔다. 각 교단은 총회 준비 막바지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모두가 성총회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장인이 구슬을 한 땀, 한 땀 꿰듯이 몰입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대부분의 장로교단이 100회 총회로 준비하고 있다. ‘100’이라는 숫자는 주는 의미도 있지만, 추락한 한국교회를 다시 되살려 보겠다는
우리민족사에 가장 혹독한 고난의 밤이라 할 수 있는 일제식민통치기간(1910 ∼45년)은 불행한 역사이지만, 한편 이를 계기로 민족혼을 일깨우고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나라를 사랑하는 백성들은 스스로 의병이나 독립군이 되어 일제와 무력항쟁을 하는가 하면, 혹은 점진적인 문화개혁을 통해서 애국심을 일깨우기도 했고, 외
광복과 분단 70주년이다. 분단된 반쪽은 언제쯤 하나가 되고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광복과 함께 찾아온 분단의 역사는 긴 터널과 같은 70년의 세월이다. 분단은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관련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벤트적인 행사에만 치중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국가와 사회, 개인 모두가 ‘광복 70년’을 기리기 위한 행사 준비에 한창이다. 일제의 피압박에서 해방된 뜻 깊은 날이니 오죽이나 할까. 하지만 자칫 ‘광복 70년’이 상업화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현재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는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황교
한국교회가 메르스의 공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각 수련회는 취소되거나 연장되기 일쑤이고, 아예 기획조차 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몇몇 교회나 선교단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관과 각 교단까지 뻗쳤다. 말 그대로 메르스가 한국교회를 집어삼켰다. 지난달 서울 한복판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열
비운의 역도선수 김병찬씨가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비보가 날아왔다. 한 때는 역도스타로 아시아를 호령했던 그가 춘천시 후평동의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니,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 누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고 김병찬 선수는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남자역도 90kg급에서 합계 367.5㎏의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역도선수다. 이어 1991년과 1992
미국 전역이 흑인교회를 상대로 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물결로 가득하다. 담임 목사를 비롯해 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번 사건은 미국 내 인종차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더불어 총기사용의 부정적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한 명의 백인우월주의자로 인한 증오범죄가 가져온 충격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지난 2008년 4월에 북한군 이모 중위가 비무장 지대를 넘어 우리 측 초소 앞까지 다가와 백기를 들고 귀순의사를 밝혔으나 아군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군 경비초소로 직접 다가가 문을 두드려 귀순의사를 밝힌바 있다. 2012년 10월에도 역시 북한군 귀순 용사가 남한 측 동해선 경비대 생활관 문을 두드렸으나 응답이 없자, 30m 떨어진 1초소 생활관까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 교회는 6월 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맞은편 한강 고수부지에서 ‘한국교회 평화통일 특별연합예배’가 열렸습니다.이 연합예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가 공동으로 주최했고, 한국 기독교 115년 역사상 처음으로 보수와 진보 기독교연합기관이 공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과 분단 70주년으로 어느 때보다도 의미가 깊은 해이다. 1년 12달 어느 날이고 호국보훈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6월만큼은 이 땅을 일궈낸 숭고한 호국정신을 아로 새기는 뜻 깊은 달로 보내길 간절히 바란다. 사실 작금의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대치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언제든지 화약고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세상을 들썩이게 한 게 엊그제 일 같은데, 이번에는 부천의 세 자매가 동반자살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유서로만 따지면 생활고에 따른 안타까운 죽음이라 볼 수 있다. 그것도 꽃다운 나이 29살과 31살, 33살밖에 먹지 않은 자매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다. 누가 이들을 죽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향해 동방예의지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동쪽에 있는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향해 이르던 말이다. 그만큼 예의범절을 잘 지켰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면모를 살펴보면 윗사람을 공경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예의범절에 어긋난 행위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단 사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서점을 방문하였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소중한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자녀 양육에 관한 책을 한 권 골랐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읽고 싶은 책을 한권 가져 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자녀도 엄마가 선택한 것과 유사한 책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 부모가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자녀 양육법에 관한 책을 사려고 하
어린이주일을 맞아 한국교회의 고심이 깊어간다. 주일학교가 쇠퇴기를 맞음에 따라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소망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교회나 교단은 주일학교 학생들의 숫자가 무려 50%까지 감소한 사례도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이 같은 위기에 대해 한국교회는 저출산 풍조와 성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