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을 맞아 한국교회의 고심이 깊어간다. 주일학교가 쇠퇴기를 맞음에 따라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소망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교회나 교단은 주일학교 학생들의 숫자가 무려 50%까지 감소한 사례도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이 같은 위기에 대해 한국교회는 저출산 풍조와 성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먼저 교계 신문의 범람 속에서 지령 100호를 맞은 기독교한국신문 발행인과 임직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척박한 교계의 언론 현실 속에서 불철주야 문서선교를 통한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잡고 올곧게 한 길을 걸어온 데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그러나 신문이란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 의무뿐만 아니라 현실을 계도해 가야 할 의무가 있는 사명까지
1년 전 오늘, 물살을 가르며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 수학여행의 부푼 꿈을 안고 깔깔 거리던 어린생명들을 가득 채운 배는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하지만 어린생명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고통과 괴로움만 남았다. 시커먼 바다는 무려 6825톤의 배를 집어삼켰고, 탑승자 476명 중 295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꽃을 채 피워보
오래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이다. 미국에 어떤 청년이 다른 주에 가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기말 고사를 앞두고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격려해 주려고 전보를 쳤다. “내 아들아 너를 사랑한다. 용기를 잃지 마라! 너의 엄마와 아빠가.” 이렇게 전보를 보냈는데, 전보를 접수해서 전달하는 사람이 실수를 해서 “너의 엄마와 아빠가"(your mother and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이 땅에 소외되고 고통 받는 모든 이웃과 북녘 땅에도 부활의 소식이 울려 퍼지길 소망한다. 무엇보다 새 생명을 약속하신 놀라운 사건인 부활절을 기해 한국교회가 깨어져 새롭게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작
사순절 절기다. 부활절을 기다리며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기이자,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순간이다. 말 그대로 사순절은 초대 교회가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준비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금식을 행한 것이 유래
역사상 가장 특이한 구인광고가 20세기 초에 런던 신문에 실렸다. 그 내용을 보면『위험한 행로에서 일할 남자구함』‘월급은 박봉이며, 심한 추위 속에서 일을 해야 하고, 장기간 완전 흑암에 갇혀 살 때도 있으며, 환경은 위험천만하고, 일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을 할지는 의문’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유명한 남극 탐험가 어네스트 샤클톤 경이 낸 구인광고이다.
총칼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독립을 외쳤던 그날. 아우내 장터가 떠나갈 듯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슴 속에 담았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한꺼번에 쏟아 냈다. 손에 든 태극기는 물결을 일으키며 한반도 끝자락까지 일렁였다. 우리는 이날을 잊을 수가 없다. 95년전에 일어난 3.1만세운동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96년이 되었다. 일제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이 되던 해에 우리 선조들은 민족 독립을 전 세계에 선포하고 만세 운동을 펼쳤다. 탑골 공원을 효시로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온 만세의 함성. 그때의 위대한 부르짖음은 민족 생명의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 하였고, 오늘날에도 다시 3.1 운동의 불길이 재점화 되어야
어머니. 부르고 또 불러도 지겹지 않은 어머니. 온갖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시는 어머니. 우리 민족과 역사 속에 슬픔과 아픔으로 기억되는 어머니. 비록 약하지만, 이 나라의 해방과 이 민족의 희망을 보여주신 어머니. 사랑과 희생, 헌신으로 대변되는 어머니를 목청껏 불러본다. 우리네 어머니의 자화상은 참으로 다양하고, 참으로 위대하다. 일본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호감도가 불교와 천주교에 이어 세 번째에 그쳤다. 수많은 종교 중 3등을 했다고 일단은 한숨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은 숨길 수 없다. 퍼센트로 따져도 개신교가 10%를 차지해 불교 25%, 천주교 18%에 한참 못 미쳐 심히 걱정이다. 더구나 해마다 호감도가 하락하는 추세를 볼
한국교회는 일반 사회 언론의 좋은 먹잇감(뉴스소재)인 듯하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부끄러운 자화상에 차마 고개를 들기가 힘들다. 최근에도 유명 복지재단에 소속된 목사가 음주난동을 부려 한국교회 전체에 큰 오점을 남겼다. 가뜩이나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불거진 목회자의 부적절한 행동은 남아있던 정마저도 잃게 만들고 있다. 사
돌아보면 주변이 온통 사랑 타령이다. 노래도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그리고 일상의 대화에도 ‘사랑’은 빠지지 않는 핵심 주제이다.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가 불행하다. 다투다가 화해하고, 성냈다가 기뻐한다. 도대체 이 사랑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토록 열광하게 하는가? 사랑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오는 것일까? 새해 벽두 동네 어귀 골목골목
시편 126: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70년 만에 돌아오면서 감사하고 기뻐서 하나님께 부르는 찬양이다. 2015년은 우리 민족이 36년간 잔악한 일제의 속박으로 인해 빛을 잃고 살다가 광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지나고, 2015년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해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군부대 총기난사, 신입생 OT 체육관 붕괴사고 등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해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대한항공 땅콩회황 사건 등 소위 갑의 횡포도 만만치 않은 해였다. 이 땅에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그만큼 벅찬 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 대한 동경심과 거리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캐롤송의 멜로디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특히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까운 친구나 먼 친척에게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쯤 보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카드 한 장 보내기 위해 쏟은 정성을 아마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도
야훼 하나님은 자기 이름도 알리시지 않았고 예수는 자기의 그리스도라는 이름(명칭)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지 말라고 하셨다.그런데 한국의 개신교 특히 장로교회는 250여 개의 이름을 가지고 교파 또는 교단을 만들고 서로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길을 달리면서 자파가 구원의 확신의 최선의 보장자인 양, 자파의 이름들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친선이나 협력을 꺼려하는 것은 자
주후 70년, 예루살렘에 대한 로마 장군 디도의 총공격이 개시되었다. 그야말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지 않은 처절한 살육과 파괴로 끝이 났다.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매일 3천명을 회개시키며 성장하는 예루살렘교회도 풍비박산이 났으며,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 지역에 산재해 있던 디아스포라들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모 일간지에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최근 한 신문배달원이 죽음의 문턱에 이른 독거노인을 살려 화제가 됐다는 기사가 났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지만, 이러한 선행은 우리나라도 벤치마킹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작금의 한국사회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독거노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
11월은 추수감사절이 있는 계절이다.들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결실되고, 산에는 각종 실과들이 열매 맺은 풍요로운 절기다.하나님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기에 이 가을에 감사의 잔이 흘러 넘치도록 해야겠다.그러나 인간들 가운데는 은혜를 받고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은혜를 다반사로 배반하는 사람도 있다. 요한 웨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