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랑공동체에 주목하라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난한 마음, 슬퍼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자비를 베푸는 마음, 깨끗한 마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마음, 옳은 일을 위하여 박해를 받을 용의가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아
오늘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것은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정통보수주의 신학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문화의 권위주의를 낳았고, 경쟁적인 호화로운 교회건축의 경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고, 교회의 경쟁력을 약화
전 세계 탈핵 움직임 속에 유독 대한민국은 시대와 역행교회가 나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나라 보존해야만물이 생동하는 4월이다. 푸름이 대지를 물들이고, 향긋함이 온 천하를 뒤덮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빛을 내고 있다. 그러나 싱그러움도 잠시, 인간의 이기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화석 연료는 심각한 대기오염을 일으키고
반기독적인 동성애법, 이슬람, 차별금지법 등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윤석 의원 입당, 원내진입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에 한걸음 전진 “기독자유당은 비례대표 후보에 반기독적인 동성애법, 이슬람, 차별금지법의 전문가들을 전진 배치했다. 또한 이윤석 의원의 입당으로 일단 원내진출에 성공했다”기독자유당 정치세력화 파란불기독교정치세력화를 위한 기독자유당 1천만명 서명운동에
△‘죽임 당한’ 자의 부활부활절을 맞았지만 죽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가 사방에 메아리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셨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억울한 ‘죽임’을 당하셨다. 그의 피 값으로 우리 모두는 그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
고난주간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으로, 수난주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주간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으로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하는 시기다. 목회자들은 금식 등 자기절제와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성도들도 나태해진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기도로써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입성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회에서 고난주간의 의
지난 3일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위한 기독자유당(대표=손영구 목사)이 창당됐다. 이제부터는 기독자유당이 4.13총선에서 선전하여 여의도 국회 입성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사정은 과거 17대, 18대, 19대 총선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기독자유당의 주장이다. 교계 역시 기독자유당이 내세운 기독교정치세력화를 통해 반기독교적 악법을 저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올해 사순절은 2월 10일부터 3월 27일까지 7번의 주일을 뺀 40일 동안이다. 사순절, 특히 고난주간에는 경건과 절제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기독교의 사순절은 성탄절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의 사역을 하는 과정을 성도가 스스로 겸허히 그 고난
만세운동의 현장에 33인은 없었다.피식민지 민족주의에 입각해 민족사•세계사적인 의의를 새롭게 조명해야영미선교사 대부분 한국민족의 아픔 몰각, 피압박민족의 자발적 독립운동3.1만세운동의 의의 몰각, 친일파 득세3.1만세운동은 교회사적, 민족사적 큰 의미가 있다. 3.1만세운동은, 선교사들의 선교가 민족의 현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고, 일제의 탄압에도
양적으로 비대해진 교회, 예수가 있는 곳에서 참된 복음 증언해야민족의 아픔인 남북한 민족 하나 됨과 한반도 비핵화 위한 노력도기존의 제도적인 교회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최근 30년 동안 가톨릭교회는 교인 수가 100만에서 600만으로 늘어났다. 개신교 역시 1천만명의 교세를 자랑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도시나 마을마다 교회의 십자가로 넘쳐나고 있다. 이
본지가 지난 호(130호)에서 지적했듯이 한국교회는 민족 앞에서 할 말이 없다. 민족 앞에, 하나님 앞에 속죄를 해야 한다. 정교분리정책을 내세워 민족의 의식화와 민족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대신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선교사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장사를 하며, 일본 식민지세력에게 직간접적으로 동조했다. 이것은
기층민중이 주체가 되었던 3.1만세운동 97주년을 맞았다. 100주년을 3년 앞두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도 100주년을 앞둔 3.1만세운동을 재평가하고,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3.1만세운동은 일본제국주의와 영미선교사들의 반대 속에서 일어난 민족운동이며, 독립운동이다. 본지는 3.1만세운동 97주년을 맞아 당시의 기독교지도자들의 형태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되는 세상70-80년대 한국교회는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이제 교회의 십자가가 서지 않은 곳이 없다. 교회당은 커피숍만큼이나 흔해졌다. 70-80년대 교회는 다방하나가 오픈하면, 교회도 하나 세워졌다고 말 할 정도였다. 그리고 거대하고 화려한 교회당도 동네마다 세워졌다. 문제는 작은 교회들이 2000년도를 정점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이 핵실험(수소탄실험)을 강행한데 이어 지난 7일에는 ‘광명성 4호’까지 발사함으로써 한반도 전역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남한 정부가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를 이유로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남북한 관계는 사실상 중단된 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한국교회는 그간 통일운동에 매진해 왔고,
그리스도의 믿음과 생활(?)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당이 세워져 있다. 교회가 슈퍼마켓만큼이나 흔해졌다. 이것은 한편에서 생각하면,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소망과 희망을 넘쳐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교회다운 교회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이 물음은 교회다운 교
기독자유당 국회입성 낙관적2016년 총선을 앞두고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움직임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기독자유당이 창당되어 기독교인들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때를 같이하여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이 기독교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독자유당의 정당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서, 20대 총선에서의 기독교정당 국회진
여러 종교의 공존, 다원화된 사회와 개인의 자율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부 보수주의자 ‘사찰 내 땅 밟기’ 등의 행동, 독선적인 기독교 모습 반영다종교 사회, 다종교 공존한국사회는 다종교 사회이다. 여러 종교들이 대등한 세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공존하며,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종교간 이렇다 할 갈등을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불교, 개신교,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이 멈췄다.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혀 마이너스 성장만 안해도 본전이다.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목회자들의 각종 추태는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기대마저도 꺾어 버렸다. 그렇다고 다음세대를 향한 희망도 쉽게 갖기가 힘들다. 당장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신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양질의 자원들이 대
상업자본주의 길들여진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신학서 탈피 절실전쟁과 기아, 내전으로 고난당하는 민족에게 희망의 길 제시해야고난당하는 이웃의 목소리 외면 말라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이다. 성서의 전체 흐름을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고 병든 자, 떠돌이들과 함께하며, 이들 속에서 역사하셨다. 하나님은 이들의 ‘한의 소리’를 들으시고
한민족 선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한 몸으로 여기자는 생각에서다.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고착화된 민족분단의 아픔을 ‘한민족’이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극복해보자는 주장이다. 이는 곧 분단 70년 한국교회, 통일운동을 어떻게 선도해야 하느냐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한민족 선교에 나약한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