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하나 되는 평화통일의 길은 멀고 험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는 한반도 전역을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맞서 우리정부와 미국이 사드미사일 배치를 비롯한 개성공단 철수 등 초강수를 놓아 응수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의 비핵화계획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한의 보수적인 정당과 보수적인 인사들은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
신약성경 누가복음 19장에 그 유명한 삭개오가 등장한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시게 되는 과정에서 그 짧은 시간에 삭개오는 살짝 편승하여 엄청난 득을 보게 되는 이야기인데, 주님은 이를 계산하시고 여리고를 지나가시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일어난,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터져 여리고 통과 과정에서 삭개오라는 인물이 갑자기 관심을 받는 인물로 부상하게 된 것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민족구원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가진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가장 박해를 받았던 3.1만세운동은 민족사적,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운동은 1911년 105인 사건에 이어서 일본 지배자세력에 의해서 가혹한 탄압을 받은 두 번째 교회사적, 민족사적인 사건이다.3.1만세운동은 선교사들과는 상관없이 깨어난 조선의 지
오늘날 한국교회는 총체적 위기에 휩싸여 있다.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조롱하고 손가락질하며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의 교인 수는 마이너스성장을 거듭하며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런대도 교회 내부는 온갖 갈등과 분열로 점철되어 있다. 이래서는 더 이상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 그렇다면 교회가
한국교회는 해마다 3월 1일을 전후해 3.1절 기념예배를 드려오고 있다. 이는 3.1운동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고 3.1운동이 기독교정신의 발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교회와 교인들은 3.1운동의 중심에서 애국애족의 기독교정신으로 무장한 채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 퍼런 총칼의 위협에도 한 치도 물러남이 없었다.물론 3.
개성공단이 처음 출발했을 때, 필자는 의심했었다. ‘개성?’...누가 뭐래도 그곳은 북한 영역이며,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누가 뭐래도 그 때까지 남북의 대결구도는 여전했고, 아무리 햇볕정책이 힘을 발휘하는 시기였고 하지만 평화에 관한한 검증되지 아니한 북을 상대로 그들의 지역에 대규모 투자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국적 기
벌써 졸업시즌이고 코앞에 입학시즌이 기다리고 있다.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은 이 졸업과 입학시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통렬하게 교훈하고 있다.어쩌면 그리도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지,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가끔 머리통을 꿰뚫고 지나간다.그럼 계산해 보자 내가 학교를 그것도 최종학교를 마친지가 언제지? 계산해보니 1977년도에 마쳤으니 벌써 40년을 넘기고 있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성도들에게 사순절은 주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이다.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한다. 노아 홍수 때 밤낮 40일간 비가 내렸고(창7: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거친 광야
스마트 폰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사용 설명서를 잘 읽고 사용법을 숙지하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스마트 폰의 사용법을 알아 숙련이 될지라도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바로 밧데리 충전이다.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주일 강단에서 설교를 듣는 것은 밧데리 충전을 하는 것과 같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충분하게 일주일을 동안 사용 할
한 때는 중국 부호 순위 148위에 오를 정도로 정재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 사형을 앞둔 시점에 눈물을 펑펑 쏟은 것이 주목받고 있다. 이 남성은 무려 7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가진 재벌로 지난 20년간 무려 8명을 살해하고, 추가 범죄도 11개에 달하는 등 죄가 중했다. 그런 그가 지난 9일 사형 집행을 앞두고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작은 가게를
창밖에 배추흰나비 날고앞산 나무들 한참눈물 나게 푸르고 싱그럽구나.방금 숲에서 튀어나와 이웃 숲에 날아가 박히는저 새는 이름이 뭘까?뭔가 앞에 많았던 것이 훌쩍 사라진 듯가슴 한가운데가 휑하다.창을 열고 바깥공기 흠씬 들이켜도채워지지 않는 휑한 느낌조막남한 새 하나 사라진 때문은 아니다.내 앞을 날아간 새가 어디 한둘인가.예전에 날아간 새들의 자취잊고 살았
우리의 아이들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어야 할 부모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있다. 아니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같은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녀 살해에 대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계모의 폭행에 의해 아이들이 살해를 당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어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땅에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교차로를 만난다. 교차로에는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반드시 어느 한 길을 속히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설 때가 있다. 인생은 선택이다. 선택에 따라서 인생과 그 종국이 결정 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길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는 좁은 길이요, 다른 하나는 넓은 길이다. 그 길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가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가복음 2장 16절, 마태복음 11장 19절, 누가복음 7장 34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죄인(세리, 병든자, 가난한자, 소외된자, 여인)들과 음식을 먹는 장면을 많이 보도하고 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는데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만약 이 시대 간디가 살아 있다면 그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을 향해 동일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오늘날 한국 땅에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듯 1,200만 성도는 아닐지라도 모래알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빈부의 격차가 그 어느 곳보다 심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은 바벨탑과 같은 초고층 빌딩들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반대쪽에서는 걷기에도 힘든 거친 언덕배기에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는
고려말기 역사 속에 비친 지도자의 모습들은 부패와 타락의 모습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에게 백성은 없다. 조선 말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의 왕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포은정몽주의 단심가를 들어보면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암울하다.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회복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최악으로 한심하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민족 대명절인 설날이나 추석 등에 고향을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교회 출석을 위해 참아야할지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아니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선택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본 교회에 출석하기를 은근히 압박한
과거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이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그 당시 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을 제일당으로 만들고, 기고만장하던 한나라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몰락을 가져오며 한국 정치판의 구도를 일거에 바꾸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그토록 반발했던 것은 노 대통령이 너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집권 일년 겨우 넘은 대통령을
얼굴 본 적 없는 미소년이여린 새순 같은 무릎을 낮추고허릴 굽혀 발을 씻긴다얼굴 가득 살얼음이고산의 슬픈 흔적처럼 거무스레 스며 있다소년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수줍음이 얼굴 가득 일렁인다찰방찰방 물과 물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와 잠시굳어버리곤 하는 공기를 희석 시킬 뿐이다천장 가득 흐릿한 조명이 지리한 듯 눈을 껌뻑인다불빛 아래 물속,꼼지락 거리는 손놀림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