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는 남왕국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당시 앗시리아는 중동일대를 지배했다. 남왕국은 백성들 간에 분열과 갈등이 만연되어 있었다. 분열과 갈등은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들었다. 백성들은 곤궁한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 서로 사랑하고, 신실하라고 외쳤다. 예수님 역시 기득권자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자들에 대해서 도덕성을 말하지 않았다. 사악하고, 기득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은 예수님를
모세의 중보기도는 짧지만 강력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그의 이스라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극적인 대목이다. 모세가 산에서 지체하자 백성들은 아론을 설득하여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예배하였다. 예기치 못한 배신에 하나님은 진노하고 모세는 좌절한다. 대가는 혹독했다. ① 증거판은 산산조각 났으며, ② 금송아지를 깨뜨려 물에 섞여 마셔야했고, ③ 삼천 명 가량이 희생되었다. 다음 날 모세는 야웨께 이스라엘의 범죄를 용서하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기록하신 책에서 나를 지우소
한국의 새벽기도는 이 때부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는 강력한 은혜의 수단이 되었다. 그냥 하는 기도의 습관이 아니었다. 생명이 충만한 현장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전도의 열심히 일어나는 부흥의 시발점이었다. 무관심과 냉랭함을 씻어버리는 치유와 회개의 역사를 일으켰다. 평양 장대현 교회의 새벽기도 부흥은 마침내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었다. 바로 다음 해 1910년, “백만명 구령운동”을 구호로 내세우고 대대적인 전도운동에 열정을 다 바쳤다. 일제하에서 나라를 빼앗기면서 소망이 없던 사람들
주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경계지역을 지나시다가 열 명의 한센 병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멀리 서서 소리를 질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눅17:11-19)고 하셨습니다. 열 명이 모두 다 나음을 받았지만 낫게 해준 주님께 와서 엎드려 경배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과 사회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낫게 해준 주님께 찾아와서 감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기대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동물이든 집단행동을 하려면 이타심이 필요하다. 하등동물의 이타심이라는 것은 동료들과 떨어지면 불안하고, 같이 있으면 안심되고 하는 정도의 단순한 감정반응일 것이다. 진화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서 그런 반응들은 동료의 아픔을 보고 그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심리적 반응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점점 더 정교하고 유연한 형태의 집단행동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만약 그런 심리적 메커니즘(mechanism)이 없다면 각 개체들은 그저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거나 또는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원시인류와 그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훈련병 '갑돌이'가 어느 날 밤, 어둠 속을 뚫고 PX를 향하여 뛰어가다가 다른 사람과 맞부딪쳐 그 사람을 쓰러뜨리고 말았다.어둠 속에서 쓰러진 사나이가 일어나 바지를 털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 사나이는 군복 칼라에 별을 두 개나 달고 있는 장군이었다. '갑돌이'는 새파랗게 질려 부동자세를 취하였다."너, 내가 누군지 아나?"장군은 얼굴을 붉히고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넷, 훈련 소장님이십니다.""너는 군법회의 감이야!"'갑돌이'는 당황했다."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훈련소장은 더욱 화가 나서 말했
“갚아준다”는 것은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내가 행하는 대로, 내가 심은 대로 말이다. “갚아주리라”의 헬라어는 “미스도스”로 원뜻은 품삯, 대가, 보상의 뜻이 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자를 위한 상급뿐만 아니라 불의한 자에 대한 형벌까지 포함한 두 가지 상으로 갚아준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심지 않고, 육체를 위해서 심은 것은 반드시 썩어버린다. 썩는다는 것은 사망을 의미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내 육신의 생각으로 일을 하면 썩어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을 하면 영생과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이 하늘의
사단법인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설립자이자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인 박조준 목사가 89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인 말씀선포로 후배 목회자들이 가야할 길의 이정표를 제시해주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박조준 목사는 12일 부산장신대 설교 실천 아카데미에서 주님이 주시는 비전의 탁월한 메시지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 청년들을 압도했다. 무려 3시간 동안 메시지를 전한 박조준 목사는 △목회자로서의 설교자 △파수꾼으로서의 설교자 △전달자로서의 설교자에 대해서 노하우를 공개했다.‘설교자의 기초’에 대해서 강의한 첫 번째 시간에는 “약속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생을 논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실존주의 사상가인 사르트르(Sartre, 1905~1980)는 "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Choice;선택)이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며 살아간다. 이 고뇌 속에는 보람도 있고, 슬픔도 있다. 아픔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지난날의 과오를 잊고 산다. 그리고 모두가 잘난 맛에 산다.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적당히 살아간다. 이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는 자들이 적지
예배를 위한 제단은 장소에 상관없이 토단이면 충분하였다(24절). 나중에 돌단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제단 규정은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5)와 신명기 27장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언급된다.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야웨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야웨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5-6).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을 때(수 8:31), 특히 솔로몬의 성전 건축 과정
4. 최초 새벽기도와 백만명 구령운동한국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데 힘쓰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교회마다 중요한 절기를 맞이하여 기도에 힘쓰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신앙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새벽기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흥회와 함께 거의 모든 한국교회가 중요하게 실천하는 생활의 경건한 모습은 새벽기도이다. 초기 선조들의 신앙 유산 가운데서 가장 일상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바로 새벽기도 모임이다. 필자는 한국교회 최초의 새벽기도회가 정착된 프로그램으로 영향을 끼친 소
성경에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게 되는데 우리가 만약 악을 악으로 갚는다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주님에게 가까이 간 사람일수록 의롭고 선하고 정직합니다. 반대로 주님에게선 먼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에게 가까이 간 사람일수록 사단을 닮아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우리도 그와 같이 온전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친히 원수를 갚지
변화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원시시대에 만들어진 본능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러나 원시본능을 탈피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은 늘 많은 에너지의 소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흔히 의식적인 노력은 이성으로 대표도기도 한다, 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본능을 넘어서 이성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는 이성과 사고라는 것도 실제로는 본능의 원격조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데이비드 흄과 같은 경제철학자는 이성도 본능적 감정반응의 노예일 뿐이라고 했다.
오래전 사촌 형님들의 권유도 있고 하여, 자손들이 주위의 친지 등에게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형제들이 아버님 묘지에 비석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거론되었었으나,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내고들 있으니 아직 시기가 아닌 것 같다.’라고 하여 무산된 일이 있었다. 그 이후 두 달여 남짓, 갑자기 윤달을 말하며, 합장을 거론 하기에 깜짝 놀랐으나 '그리하려면 아버님의 산소가 있는 선영으로 합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 이제는 그곳에는 대나무가 많고, 당시와는 달리 전망도 좋지 않아져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선교 200여년 이제 그동안 걸어 온 한국교회 길을 뒤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한국교회가 걸어 온 길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길이었는지도 살피고 또한 지나온 길을 경험 삼아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로 정해야 한다. 선교 초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하게 살던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게 하고 선진문화를 전수해 주어 나라가 서서히 깨어나게 되었다. 나아가 기독교를 받아 드릴 때 오는 결과를 이미 선교사들이 입고 온 의상과 음식,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을 받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담대히 나가 복음을 외쳤다. 이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예루사살렘에는 복음을 불신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열심있는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죽이는 증인으로 서고 핍박하는 자였다. 당시 복음주의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비춰 그를 둘러싸자 말에서 떨어져 땅에 엎드렸다.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
마태복음 28장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분부한 모든 것은 신약의 말씀뿐만 아니라 구약의 말씀도 당연하게 포함한다. 예수님도 항상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셨고, 성령받은 베드로도 바울도 구약을 인용하여 신약의 말씀을 펼쳐놓았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도가 예수님 십자가 성취 사건으로 짐승의 제사가 사라졌다. 단번에 주님이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기는 우리 몸과 마음, 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
“웨슬리안 복음주의적 사중복음의 전통을 분명히 하고, 사중복음 신앙으로 재무장해 성결성 회복을 일궈내겠다. 과거 장감성의 역사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교회에서 가장 앞선 성결교단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성결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자, 한국교회 제2의 부흥을 이루는 주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취임 한 달째를 맞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김주헌 목사가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위드 예수, 다시 성결복음으로!’란 교단 표어처럼,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보다 먼 미래를 향한 성결교회의 성결교회다움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바울은 성경 로마서 6장 15-23절에서 “너희는 누구의 종으로 살 것인가”를 묻고 있다. 바울은 세상을 섬기는 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됐다. 바울은 세상을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종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종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완성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성화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다. 인간 모두는 죽기 전에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모두의 마음에 욕망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AI,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각까지도 대신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