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여 갈대바다 광야 길로 나올 때 ① ‘대열을 지어’ 나왔는지, ② ‘무장하고’ 나왔는지 애매하다. 을 비롯한 번역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아래 표에서 보듯 후자를 택한 경우가 많다. 히브리어는 ‘םישׁמהו’(와하무심)으로 구약에서 그 의미와 용례가 명확하지 않다. ‘무장한’(armed)으로 읽는 방식은 타르굼 옹켈로스에서 확인되고 이후 유대교가 따르고 있다. 그러나 바로 앞 17절에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언급되었고, 아말렉 전쟁은 나중에 나오기 때문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한반도에서 펼쳐진 130년간의 역사를 믿음의 안목에서 평가하고, 건전한 신앙운동을 계승하고자 다짐하려는 마음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하여야 한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 선교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한국기독교 교회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 깨우쳐야할 교훈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30년간에 걸친 시행착오들과 실추된 오늘의 기독교 교회의 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지난 130년간의 한국현대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일진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성경에서는 몇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세상의 빛’입니다. 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는 길을 보게 하고 삶의 목표를 알게 합니다. 자신의 현 주소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흑암 가운데 사는 것은 참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셨습니다. 여기서의 빛은 태양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빛이 없으면 자신이 가는 길과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산책을 하다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본다. 그런데 개들은 아무데서나 나무만 있으면 한쪽 다리를 들고 ‘쉬’를 해대서 주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본다.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현상이다. 개의 그런 행동은 “여기는 내 땅이야”라는 일종의 시위이자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습관을 가진 동물이 어디 강아지뿐인가? 늑대들은 강아지처럼 나무에다 오줌이나 똥을 누어서 자신의 영토를 만방에 선언한다. 하마는 자신의 똥을 물속에 흩어놓음으로써 냄새로 자신의 영토를 주장하고, 곰은 두 발로
2002년 5월 31일에서 6월 30일까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열렸던 월드컵과 함께 ‘대 ~ 한민국’하는 함성이 온 세계사람들의 함성이 되었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의 허리는 두 동강으로 갈라져 있고,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아직 지속되고 있기에 호국보훈의 달에 북녘에까지 ‘자유’의 함성으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기도 했었다.일제의 침탈 시기에는 먹을 끼니가 없어 짐승들이나 먹는 음식 등으로 허기를 메우며, 거지 나사로 같은 인생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 하고 걸핏하면 얻어맞고 짓밟히고, 나아가 자식이 보는 앞
정권이 교체되어 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 선지 몇 개월이 되었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었다. 국민은 현명하여 지난 5년간의 정치를 청산하게 하고 새로운 정치적인 페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의 염원이 바라던 대로가 아니라 조금은 식상하려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구정치나 새로운 정치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정치나 새 정치가 대동소이하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시대에는 정권이 교체되면 밀월이라는 신구정권의 동거가 한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 협치를 한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 베들레헴은 떡이 마르지 않는 동네, 떡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의 동네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사랑하는 가족을 이끌고 이국땅 모압으로 이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게 되자 나오미와 며느리 룻은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된다. 고향을 벗어나 도망갔던 나오미를 보고 이웃들이 조롱할 수도 있지만, 나오미는 자기체면은 생각하지 않고 다시 고향 땅에 며느리와 함께 돌아왔다. 나오미가 베들레헴 떡집 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김진선 목사가 성령강림절에 맞춰 한국 오순절 여성리더십 연구 『오순절의 불꽃이 된 여인들』(쿰란출판사·327페이지·값 14.000원)이란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성서에 나타난 여성들의 리더십과 한국교회 130년의 역사속의 여성의 리더십, 한국기독교 오순절 여성의 리더십을, 시대와 역사적 상황에서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교회성장의 중심에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빛도, 이름도 없이 하나님나라운동의 전위대로서 활동하며, 한국교회 성장의 기반이 된 기독여성들을 발굴, 오순
예수님께서 공생애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다니는 영혼을 보면 원해서 따라다니는 자들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잡아 죽일꼬. 어떻게든 흠을 잡아서 고소할 조건을 찾고자했던 서기관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예수님이 당시에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복된 소식을 주고 회개케 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모습을 보고 죄인들하고 같이 손을 넣고 밥을 먹는다고 흠을 잡자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3가지 잃은 양, 잃은 돈,
“하나님께서 유업으로 주신 기업,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하나님나라운동에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참여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떼어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선교사와 목회자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전도에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믿음의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 아닌가”믿음과 정직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기업, 믿음기업 태웅식품(대표=장현주)을 창업한
요즘 ‘변화’라는 단어처럼 회자되는 말도 없다. 모두가 어지러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교회 안에서의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오늘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없다는 말로 새석된다. 그렇다 교회가 새로운 교회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새사람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교회의 미래를 장담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입에서는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변화와 개혁을 말하면서, 자신은 변화되지 않고 옛사람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도산 안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는 「7대 죄악」이라는 그림을 남겼다. 1480년경 완성된 유화로 크기는 120×150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가는 동그란 탁자에 일곱 가지 죄악을 묘사하고 한 가운데 ‘하나님의 눈’을 그렸다. 눈동자는 십자가를 배경으로 창에 찔린 예수가 상처를 만지며 서 있다. 빗살무늬 경계에 네 마디 라틴어를 새겼다. Cave Cave Deus Videt. 곧 “조심하라 조심하라 하나님이 지켜보신다.” 하나님은 일곱 개의 그림으로 표상된 인간의 모든 영역을 한 눈에 보신다. 결코
평양대부흥 운동의 현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설교를 했단 당사자, 윌리엄 블레어 선교사는 처음 한국인들을 만나고 난 후에 “찢어진 가슴” (broken heart)을 가지고 살아가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고 여러 차례 술회한 바 있다. 당시 한국 백성들은 부패하고 무능력한 정부를 사랑하고 지지해야만 했는데, 너무나 허약하고 무기력하여 국민들을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져 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런 극도로 참담한 조건들로 인해서 구원의 복음을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행들이 우리를 화나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행악자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고 안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우리의 길을 여호와 앞에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신뢰하고 그의 성실하심으로 식물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모든 짐과 불평,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그가 이루시고 의와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실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오래 전에 국내 한 방송국에서 공항 세관원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카메라가 24시간 밀착해서 따라다니면서, 세관원들이 어떤 일들을 하는지 낱낱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몰래 밀반입한 물건들을 찾기 위해서 공항에서부터 시작해 때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사를 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입수한 물건들은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르게 처리 된다. 그런데 밀수 하다 발각된 물건들은 대부분 파기시켰다. 마침 방송 중에 명품 시계를 밀수 하던 상인이 잡혀 세관원이 망치로 비싼 시
차량을 운행하다 보면 신호를 받기 위해 기다라고 있노라면 뒤의 차량이 경적을 울려 대는 일을 심심찮게 경험하게 된다. 그 이유는 보행신호 등에 눈치것 가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는 뜻이리라, 그러나 안전운행을 위해 신호체계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창밖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추월하는 사람들로 인해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순간 빠른 속도로 추월하는 차량과 하마터면 추돌할 뻔한 경험들은 많다. 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지고 있으며 욕설, 위협 등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코로나19를 가리켜 종말 추수 때에 심판하는 도구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은 비대면이 해제된 이후에 과감히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혹 감염이 우려되어 관망하는 신자가 70%나 된다고 한다. 혹 자들은 이런 현상을 이야기하기를 이 시대는 기독교 신앙으로 바라볼 때 알곡과 쭉정이로 구별하는 시대이며 코로나19가 바로 도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현황은 전체 교우 중에 약 30%(?) 정도가 출석하고 나머지는 관망하고 있다고 한다.그 관망은 매 주일 교회에 직접 출석하여 예배 참석을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실 때 흙을 가지고 덩어리를 뭉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이 속에 들어가기 전 이 흙은 흙덩어리, 육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의 콧구멍에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고 숨을 쉬게 되었다. 이 호흡은 우리 인간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요한복음 6장 2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보호하기 위해 외형을 만드셨다. 그래서 영이 떠나버리면 우리는 그때부터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으로 죽음의 심판을 받았던 고라일당의 잔존세력으로 인한 원망과 불평의 여파가 계속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 족장들의 각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모으시고 아론의 지팡이에만 꽃이 피고 살구열매가 맺히게 하여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택하신 자임을 입증하셨다. 그리고 증거궤에 간직하게 하시므로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서 반역의 시작인 원망과 불평을 그치게 하시고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의 지팡이를 통해 일하실 것을 나타내셨다.하나님의 택한 자의 지팡이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일하심
6월5일은 환경주일이다. 우리 국민, 아니 세계민족은 신종바이러스감염증을 겪으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면서, 강력한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나타나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러스도 요술을 부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인간의 지혜로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돼 확산이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생명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