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아준다”는 것은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내가 행하는 대로, 내가 심은 대로 말이다. “갚아주리라”의 헬라어는 “미스도스”로 원뜻은 품삯, 대가, 보상의 뜻이 있다. 다시 말하면 선한 자를 위한 상급뿐만 아니라 불의한 자에 대한 형벌까지 포함한 두 가지 상으로 갚아준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심지 않고, 육체를 위해서 심은 것은 반드시 썩어버린다. 썩는다는 것은 사망을 의미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내 육신의 생각으로 일을 하면 썩어버리는 것이다. 반면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을 하면 영생과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이 하늘의
사단법인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설립자이자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인 박조준 목사가 89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인 말씀선포로 후배 목회자들이 가야할 길의 이정표를 제시해주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박조준 목사는 12일 부산장신대 설교 실천 아카데미에서 주님이 주시는 비전의 탁월한 메시지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 청년들을 압도했다. 무려 3시간 동안 메시지를 전한 박조준 목사는 △목회자로서의 설교자 △파수꾼으로서의 설교자 △전달자로서의 설교자에 대해서 노하우를 공개했다.‘설교자의 기초’에 대해서 강의한 첫 번째 시간에는 “약속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생을 논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실존주의 사상가인 사르트르(Sartre, 1905~1980)는 "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Choice;선택)이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며 살아간다. 이 고뇌 속에는 보람도 있고, 슬픔도 있다. 아픔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지난날의 과오를 잊고 산다. 그리고 모두가 잘난 맛에 산다.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적당히 살아간다. 이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는 자들이 적지
예배를 위한 제단은 장소에 상관없이 토단이면 충분하였다(24절). 나중에 돌단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제단 규정은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5)와 신명기 27장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언급된다.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야웨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야웨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5-6).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을 때(수 8:31), 특히 솔로몬의 성전 건축 과정
4. 최초 새벽기도와 백만명 구령운동한국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데 힘쓰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교회마다 중요한 절기를 맞이하여 기도에 힘쓰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신앙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새벽기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흥회와 함께 거의 모든 한국교회가 중요하게 실천하는 생활의 경건한 모습은 새벽기도이다. 초기 선조들의 신앙 유산 가운데서 가장 일상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바로 새벽기도 모임이다. 필자는 한국교회 최초의 새벽기도회가 정착된 프로그램으로 영향을 끼친 소
성경에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게 되는데 우리가 만약 악을 악으로 갚는다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주님에게 가까이 간 사람일수록 의롭고 선하고 정직합니다. 반대로 주님에게선 먼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에게 가까이 간 사람일수록 사단을 닮아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우리도 그와 같이 온전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친히 원수를 갚지
변화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원시시대에 만들어진 본능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러나 원시본능을 탈피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은 늘 많은 에너지의 소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흔히 의식적인 노력은 이성으로 대표도기도 한다, 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본능을 넘어서 이성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는 이성과 사고라는 것도 실제로는 본능의 원격조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데이비드 흄과 같은 경제철학자는 이성도 본능적 감정반응의 노예일 뿐이라고 했다.
오래전 사촌 형님들의 권유도 있고 하여, 자손들이 주위의 친지 등에게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 형제들이 아버님 묘지에 비석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거론되었었으나,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지내고들 있으니 아직 시기가 아닌 것 같다.’라고 하여 무산된 일이 있었다. 그 이후 두 달여 남짓, 갑자기 윤달을 말하며, 합장을 거론 하기에 깜짝 놀랐으나 '그리하려면 아버님의 산소가 있는 선영으로 합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니 이제는 그곳에는 대나무가 많고, 당시와는 달리 전망도 좋지 않아져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선교 200여년 이제 그동안 걸어 온 한국교회 길을 뒤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한국교회가 걸어 온 길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길이었는지도 살피고 또한 지나온 길을 경험 삼아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바로 정해야 한다. 선교 초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하게 살던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게 하고 선진문화를 전수해 주어 나라가 서서히 깨어나게 되었다. 나아가 기독교를 받아 드릴 때 오는 결과를 이미 선교사들이 입고 온 의상과 음식,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을 받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담대히 나가 복음을 외쳤다. 이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예루사살렘에는 복음을 불신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열심있는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죽이는 증인으로 서고 핍박하는 자였다. 당시 복음주의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비춰 그를 둘러싸자 말에서 떨어져 땅에 엎드렸다.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
마태복음 28장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분부한 모든 것은 신약의 말씀뿐만 아니라 구약의 말씀도 당연하게 포함한다. 예수님도 항상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셨고, 성령받은 베드로도 바울도 구약을 인용하여 신약의 말씀을 펼쳐놓았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도가 예수님 십자가 성취 사건으로 짐승의 제사가 사라졌다. 단번에 주님이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기는 우리 몸과 마음, 진심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
“웨슬리안 복음주의적 사중복음의 전통을 분명히 하고, 사중복음 신앙으로 재무장해 성결성 회복을 일궈내겠다. 과거 장감성의 역사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교회에서 가장 앞선 성결교단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성결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자, 한국교회 제2의 부흥을 이루는 주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취임 한 달째를 맞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김주헌 목사가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위드 예수, 다시 성결복음으로!’란 교단 표어처럼,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보다 먼 미래를 향한 성결교회의 성결교회다움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바울은 성경 로마서 6장 15-23절에서 “너희는 누구의 종으로 살 것인가”를 묻고 있다. 바울은 세상을 섬기는 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됐다. 바울은 세상을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종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종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완성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성화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다. 인간 모두는 죽기 전에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모두의 마음에 욕망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AI,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각까지도 대신한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여 갈대바다 광야 길로 나올 때 ① ‘대열을 지어’ 나왔는지, ② ‘무장하고’ 나왔는지 애매하다. 을 비롯한 번역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아래 표에서 보듯 후자를 택한 경우가 많다. 히브리어는 ‘םישׁמהו’(와하무심)으로 구약에서 그 의미와 용례가 명확하지 않다. ‘무장한’(armed)으로 읽는 방식은 타르굼 옹켈로스에서 확인되고 이후 유대교가 따르고 있다. 그러나 바로 앞 17절에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언급되었고, 아말렉 전쟁은 나중에 나오기 때문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한반도에서 펼쳐진 130년간의 역사를 믿음의 안목에서 평가하고, 건전한 신앙운동을 계승하고자 다짐하려는 마음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하여야 한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 선교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한국기독교 교회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 깨우쳐야할 교훈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30년간에 걸친 시행착오들과 실추된 오늘의 기독교 교회의 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과연 지난 130년간의 한국현대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일진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성경에서는 몇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세상의 빛’입니다. 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는 길을 보게 하고 삶의 목표를 알게 합니다. 자신의 현 주소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흑암 가운데 사는 것은 참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셨습니다. 여기서의 빛은 태양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빛이 없으면 자신이 가는 길과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산책을 하다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본다. 그런데 개들은 아무데서나 나무만 있으면 한쪽 다리를 들고 ‘쉬’를 해대서 주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을 본다.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현상이다. 개의 그런 행동은 “여기는 내 땅이야”라는 일종의 시위이자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습관을 가진 동물이 어디 강아지뿐인가? 늑대들은 강아지처럼 나무에다 오줌이나 똥을 누어서 자신의 영토를 만방에 선언한다. 하마는 자신의 똥을 물속에 흩어놓음으로써 냄새로 자신의 영토를 주장하고, 곰은 두 발로
2002년 5월 31일에서 6월 30일까지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열렸던 월드컵과 함께 ‘대 ~ 한민국’하는 함성이 온 세계사람들의 함성이 되었었다. 그러나 우리 한반도의 허리는 두 동강으로 갈라져 있고,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아직 지속되고 있기에 호국보훈의 달에 북녘에까지 ‘자유’의 함성으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기도 했었다.일제의 침탈 시기에는 먹을 끼니가 없어 짐승들이나 먹는 음식 등으로 허기를 메우며, 거지 나사로 같은 인생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 하고 걸핏하면 얻어맞고 짓밟히고, 나아가 자식이 보는 앞
정권이 교체되어 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 선지 몇 개월이 되었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었다. 국민은 현명하여 지난 5년간의 정치를 청산하게 하고 새로운 정치적인 페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의 염원이 바라던 대로가 아니라 조금은 식상하려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구정치나 새로운 정치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정치나 새 정치가 대동소이하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시대에는 정권이 교체되면 밀월이라는 신구정권의 동거가 한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 협치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