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어린이를 꽃에 비유해 어린이 주일을 ‘꽃주일’이라고 했다. 이 꽃이 아름답게 성장하고 피어나 예수님의 향기를 전 세계에 퍼뜨려야 하는데 악한 영계들은 이 새싹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천국의 언어가 아닌 더러운 욕설과 언어들로 습관화되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세상의 문화 속에 판치고 있는 마귀의 성분이 우리 아이들에게 심기어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민족으로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의 교육 방식을 보면 사회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종교 교육을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신앙의 삶’,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책으로 남긴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그것도 장애인의 몸으로 성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서, 책으로 펴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열방을품은교회 담임 조용모 목사는 10년 전 원불교 법호를 받기 전, 열정과 성공을 인정받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와 신대원, 학술원을 졸업하고 역동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다시 세움을 받았다. 조 목사는 전국 6000기업을 다니면서, 조직관리 강의로 유명세를 탔다.
오늘을 살아가는 각 사람에게서 겸손한 마음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곳에 오셨다.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헌데 오늘 국내와 세계는 로마 팍스, 자이나 팍스, 소련 팍스, 아메리카 팍스를 추구한다. 누구도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말하지 않는다.여기에다 가진 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영역을 넓혀간다. 이것이 오늘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야당의 대표가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자신들의 이동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장애인을 비참하게 하는 말을 쏟아
24장은 가나안 진입과 열두 지파의 정착을 갈무리하는 세겜 회의를 다룬다.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내 집은 야웨를 섬기겠다’며 선언하며 다그치자 백성들은 ‘우리도 야웨를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화답한다. 그는 선조들이 ‘강 저편’에 거주하는 동안 이방신을 섬긴 사실을 떠올리며 과거 불신앙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마침내 야웨 신앙을 유언으로 남기고 여호수아는 역사적 소임을 마친다(수 24:29). 이 장면에서 ‘강 저편’(רהנה רבע)이 눈에 들어온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편에 거주하였다(2절), 아
#하나님의 내려오심 하나님의 위로와 고난당하는 자들에 대한 치유와 구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출애굽 전과정에서 전개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의 핍박 속에서 절규하며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직접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을 위해서 고통의 현장 속으로 낮아져서 찾아 오셨다. 유대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던 시대에 하나님은 구원의 손길을 펴셨다. 나일 강의 하류 지방은 풍부한 물자를 생산해 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그들의 풍요와 번영을 누리며 살던 요셉의 후손들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야곱의 후손들은 엄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해서 그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또 어떤 지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고 오래 머물면서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성도들이 얼마나 사도 바울을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하나님 말씀처럼 받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떠난 후에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순수하고 주님을 사랑하던 교회가 사도 바울이 떠난 이후에는 성적 범죄와
리차드 범브란트(Nicolai Ionescu) 목사님은 공산혁명이 일어난 루마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지하 감옥에서 14년 동안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복음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분이다. 목사님은 출소된 뒤에 한국에 오신 적이 있는데 하루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옆에 앉은 외국인 남자와 동석을 하게 됐다. 목사님은 자신의 직업을 밝히며 혹시 교회를 다니시냐고 물었다.“저는 범브란트 목사입니다. 혹시 교회를 다니시나요?”“제 아내는 영국 성공회 교인이고, 역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요란하게 울어 동이 트는 것을 알려주는 장닭이 있었다. 주인은 그 장닭이 기특해서 매일 아침 들에 나갈 때마다 콩 한 줌을 상으로 뿌려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여느 때처럼 콩 한 줌을 뿌려 주었는데 웬일인지 장닭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주인이 이상하게 여겨 왜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장닭이 말했다. “늘 이 따위 콩만 주니까 그렇죠, 새벽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건 바로 나란 말예요, 내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나요? 농사를 못 지으면 가을걷이도 못 하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생명
한국교회나 세계 교회 역시 청소년들이 교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약화 되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미래 세대인 유년 청소년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유년 청소년들이 빈 자리는 한국교회의 미래뿐 아니라 기독교 미래에 암울한 전망인 것 같다.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는 교회에 속한 유년 청소년들이 이탈에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한 교회의 새로운 대책이 늦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교회는 유년, 청소년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사를 파악하여 세속적인 관심을 신
학교에서 학문을 오랫동안 갈고닦아 지식을 쌓은 사람일지라도 꼭 지혜로운 사람일 거란 법은 없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갈 때 지식만큼 중요한 것이 삶의 지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는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와는 다르다. 지혜가 곧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본문 1절에 지혜가 그 집을 지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심을 뜻한다. 이 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피로 사신 교회이다. 모든 교회가 다 예수님의 집이 아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 성경 66권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교회가 지혜자의 집이다. 예수님께서 거
그네 인생길인 이 땅에 살면서 어떤 동행자를 만나야 할 것인가는 중요한 영적 과제이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나는 어느 곳을 향하여 누구와 함께 동행 하고 있는가? 자신의 영적 방향 설정을 점검 해봐야 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와 자기 소유의 무덤에 장사지냈을 때 예수님의 제자였던 여인들이 그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목격했다. 안식일을 지낸 후 첫날 이 여인들은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지만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빈 무덤에 세마포 옷만 있었다. 큰 충격에 빠진 여인들에게 두
성서는 온갖 잡신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영미의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드린 한국교회는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다. 타종교인들은 개신교 목회자들의 눈치 보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한국 개신교 무당은 정치무당, 사회무당과 함께 하나가 되어 작두 위에서 칼춤을 춘다. 그리고 개신교 무당은 현 정부는 악하고, 차기정부는 선하다고 말한다. 한국교회가 권력에 붙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권력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왕실을 등에 업었으며, 일본제국주
출애굽기 19-24장은 십계명을 비롯한 계약법을 포함하고 있다. 앞 단원 1-18장의 이집트 탈출과 뒤따르는 단락 26-40장의 성막 건축을 통한 규칙적인 예배의식의 제정을 앞뒤로 연결하는 고리 형식을 취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 가운데 놓인 이 문단의 신학적 의미가 궁금해진다. 출 19-24장의 주제는 시내산 현현과 계시이다. 대부분 출애굽기 전체의 구성과 신학적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이 단락의 1-2절을 단순히 도입부로만 여기고 여기에 포함된 요점을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저자가 1절에서 ‘이 날’을 강조하여 계시의 현재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사건과 광야 사십년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그들의 삶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지만,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점점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들이 사라져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염려하셨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신
아담은 사랑을 위해 갈비뼈를 하나 상실(양도)했다. 야곱은 애인 라헬을 위해 14년을 노동했다(창 29:20), 룻은 남편 없는 시모를 위해 “내가 죽는 일 외에… 떠나가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소서.”라고 했다. 삼손은 기생을 사랑하다가 머리카락이 잘렸다. 다윗은 사울 왕의 딸 미갈을 사랑함으로 원수 불레셋 남자의 양피(陽皮, Foreskins) 200개를 끊어 바쳤다(삼상 18장), 솔로몬은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의 그 어떤 에로스의 사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랑이 있다. 그것은 곧 아가페의 사랑이
해묵은 책들이 쌓여 있는 가운데 노랗게 변색 되어 있는 책(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이란 1987년 1월호 신동아 별책부록)을 꺼내 보았다. 이 책은 과거의 인물들에게서 작금의 필자의 모습을 비쳐보게 하였다.‘칼 발트(Karl Barth)’에서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등 현대 신학자들은 “신학의 사명은 변하지 않는 복음이 각각 새로운 현실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흑인들이 노예 화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몰트만’이 누구인가 ‘희망의 신학(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먼저 있은 후에 일어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부활은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신 진실함을 부활을 통해 나타나 내보이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독생자를 죄인 대신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신 하나님 사랑의 증표다. 부활절에 기독교 신자들이 보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우선이다. 거룩하게 드리는 예배 행사로 끝이 난다면 부활절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 먼저임을 교회와 신자들의 깨달음이 중요하다
성경을 자세히 볼수록 더 은혜가 되고 감격스러운 것은 원형 되시는 예수님이 신약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구약에 기록된 날짜, 시간, 분, 초까지 정확하게 그 의미하는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서 취했다. 어린 양을 잡기 전에 제물로 드릴 짐승을 가져와서 흠이 있는지, 상처는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4일동안 간직했다. 그 날짜가 1월 10일에 제물인 어린양을 가져왔고 4일동안 관찰한 후, 1월 14일에 어린양을 잡는다. 예수님도 1월 14일에 죽으셨는데 그 날짜를 우리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켜온 신화석 목사(안디옥성결교회 원로)는 한국교회 해외선교 사역의 산증인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잠식하기 전 러시아 남서부에 위치한 체첸공화국까지 무려 186개 나라에서 선교 사역을 전개했을 정도로 선교를 향한 열정은 남다르다. 그런 그가 한국교회 정치 일번지인 종로5가에 입성했다. 지난 1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선교 외에 모든 단체의 직함도 내려놓았던 신 목사였기에 의아한 행보다. 그러나 우려도 잠시, 신 목사는 이번에도 오직 선교를 향한 의지
가수 겸 배우 김희재가 자신이 모델로 활동중인 CJ웰케어의 대표 흑삼 브랜드 ‘CJ한뿌리’와 함께 독거노인 등에게 아름다운 선행으로 화제다. 이들은 최근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에 2천만원 상당에 ‘CJ한뿌리 흑삼과 흑마늘 선물세트’를 기부했다. 전달된 물품은 재단이 운영하는 하고 있는 도봉재가노인지원센터를 통해 지역 독거노인 500명에게 전달된다. 이번 기부는 지난 1월 진행한 CJ한뿌리 라이브 커머스 방송에 출연한 김희재가 완판 시 CJ한뿌리와 함께 기부를 약속한 데 마련됐다. 당시 김희재의 선한 영향력에 움직인 팬들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