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유학생과 밀항조선인 규합해 비밀지하항일운동 전개아들 고 박용 목사 부부와 손자의 노력으로 독립운동 공적 입증일본식민지 아래서 광주지역 ‘독신전도단’를 이끌며,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을 벌인 고 박중학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 증경총회장 고 박용 목사 부친)가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특히 고 박중학 목사는 ‘삼촌운동’, ‘야학활동’ 등을 통해 신사참배거부와 민족주의 정신 배양 등 독립운동을 수행했다. 이런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으로 고 박 목사는 수원경찰서 경찰에 체포돼 1년 동안 온갖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이로 인해 고 박 목사
사데는 현재 터키 이즈미르에서 조금 떨어진 옛 도시이다. 또한 기원전 1200년경에 세워져 상업적으로 굉장히 번창한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다. 특히 산 북쪽에 있는 요새로 계곡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천혜의 요새였으며 최대 금 생산지, 섬유산업, 의류산업이 발달해 상업의 중심인 부유한 도시였다. 그런 이유로 부유한 삶을 살았다. 사도요한이 설립한 사데교회가 사도요한이 살던 주후 40년경에 몰락하고 만다. 본문 말씀을 보면 살았다는 예수 이름을 가지고 사데교회가 세워졌지만 성도들의 삶을 보면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질적으로 행위,
평생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위해 봉사한 황덕순 권사(충남 예산군 원포교회)의 백수(白壽)감사예배가 오는 27일 금천구 파티엘하우스에서 열려, 그가 걸어온 100년 조명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한다. 이 자리는 3명의 아들과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 의해 마련됐다. 1923년 11월 13일 공주시 유구면 신영리에서 태어난 황 권사는 오직 믿음만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100년의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 왔다. 황 권사의 믿음은 ‘오직 예수’, ‘오직 기도’, ‘오직 가족’, ‘오직 교회’만을 위한 삶이었다. 그의 이 같은 믿음은
맥추절은 봄에 1년에 처음으로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절기며, 추수감사절은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추수한 곡물을 가지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구약의 출애굽기 23장, 레위기 23장, 민수기 29장, 스가랴 14장에 말씀한 이스라엘의 중요 7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 장막절이 추수감사절이다. 이 추수라는 것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주어지는 추수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성경적인 추수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간 이후 교회시대가 되면서 우리의 영혼과 생명이 알곡으로 추수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재림예수로 오
한국교회의 성장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초고속 성장을 했다. 물론 성장의 내용을 보면 수많은 영혼을 예수의 이름으로 거듭나게 하였으며, 많은 신자가 모여 예배드리는 처소를 걸맞게 건축함을 당연히 여겼다. 교회가 세워진 나라마다 그 나라의 정치 동향에 따라 종교 활동의 제재로 인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다행히 한국교회는 역사의 부침 속에서 갖가지 정치 형태를 겪으면서 교회가 체질에 맞는 신앙의 정신을 간직해 왔다. 한국인 특유의 급한 성격과 인내하는 정신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려 나라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백절불굴하는
정확한 통계를 산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떠도는 풍문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가 아직도 점쟁이 집을 찾는가 하면 또한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에게 예언을 듣기 위하여 찾아다니는가 하면, 그러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권위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자들, 그러한 행위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받은 것 인양 포장하는 사람들 그러다 보니 점쟁이들에게 찾아다니면서도 기독교인이라 하는 사람들, 그들을 아무렇지 않다고 박수하는 기독교인 등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더욱이나 작금에 수능시험을 앞두
초기 선교사들은 일제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자 배교하는 것으로 거부하고 “평양신학교”가 1938년에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카나다 장로교회 선교사들은 일본과 마찰을 하지 않고 학교를 계속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과 신학을 공유하면서 일본 유학파들은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수용하였는데, 서울에 김재준, 송창근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순교정신과 철저한 성경중심의 신학과는 거리가 먼 자유주의 노선이 전수되어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을 가져온 첫 번째 근본원인이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속성을 사람 안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가 나타나는데 ‘사랑’과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특별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소유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상속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자녀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재산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옷은 부끄러운 곳을 가리는 정도였다. 지금 의복은 본래 목적과 달라져 계절마다 옷의 재질과 색깔, 모양과 디자인 등이 다양하다. 특히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옷매무새가 화려하며 고급진 옷으로 치장한다. 겨우 치부를 가리던 옷이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야곱은 노년에 얻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혀 특별한 아들로 양육했다. 이로 인한 형들의 질투는 자연스럽게 유발된다(창 37:3-4). 요셉의 ‘채색 옷’은 튜닉(tunic)으로 번역되는데 화려한 장식이 붙어있는 긴 소매의 관복
사귐, 친교는 그리스도인들의 약속된 기쁨이다. 주님과 친교의 기쁨, 하나님과 사귀는 기쁨, 그리스도인의 너와 나의 만남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막혔던 장벽을 무너트린 사건이다. 이는 과거형인 동시에 현재 진행형이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 분단된 대한민국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귐과 친교를 통해 분열강, 분단의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되어야 한다.예수님은 분열의 현장에서, 분단의 현장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되라고 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을 몰각한 나머지 분열
가나안을 점령하는 것은 육신의 힘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 오직 마음의 싸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순종하고 따라가야만 이기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를 걸어갈 때 모세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만 따라가면 될 텐데 내 앞에 있는 현실, 육신의 떡, 육적인 안목, 이생의 자랑 때문에 자꾸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7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결국 40년이나 걸려 광야를 건너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할례를 받았던 백성들은 다 죽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후손들만 남
기독교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아 생명과 영혼을 구원받게 한다. 죄인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는 사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체험을 세례(침례)를 통해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하였다. 세속적인 모든 생각과 물욕을 버리고 신령한 성품을 소유하도록 했다. 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자들을 거듭났다고 표현한다. 거듭남이란 예수님을 믿기 전 세속적인 생각과 욕심 탐심들을 모두 버린 자들이란 의미다. 그런데 교회를 이룬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헌금을
평양에는 이미 북간도에 가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들어온 성도들이 있었다. 모펫이 이미 하나님을 받아들인 백홍준을 만나게 되면서 평양에서 교회설립이 급진전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참으로 놀라운 만남이 연속되었는데, 백홍준은 평양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젊은이들을 차례로 모펫에게 소개하였다. 그들은 바로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평양에 들어와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사건들과 연관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서경조, 김성집, 최치량 등이 십대 소년들이었을 때에,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였던 것이다. 이미 27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
“지고 가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벗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 배낭을 열어 보면, 먹을 것이 가득해 기쁨이 차고 넘친다” 어느 등산객의 말이다. 만약 배낭이 무겁다고, 배낭에 있는 것을 버렸다고 생각해 보라. 힘들게 올라온 정상에서 먹는 기쁨, 감사함이 없을 것이다. 힘들어도 가지고 올 것이라며, 후회 할 것이다. 인생은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수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하는 수고 때문에 보람차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 세상에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다. 그의 이름에는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창 41:52)는 풀이가 뒤따른다. 나중에 할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첫째의 복과 형 므낫세보다 크고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덕담을 듣게 된다(창 48:14). 나중에 이스라엘 12지파의 하나가 되고(민 1:10),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는 팔레스틴 중부의 비옥한 지역에 자리를 잡아 북 이스라엘에서 중심 지파가 된다.어원적으로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① 명사 ‘과일,’ ‘열매’를 가리키는 ‘페리’(ירפ)는 동사 ‘기름지다, 풍성하
교회가 한번 세워지고 나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살아있는 유동체이기 때문에 위험 가운데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임할 때 건강한 교회가 유지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서를 기록한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위험과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딤전3:15)” 주님은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었을 때 “나의 생애에는 단 한 주간도 행복해 본 일이 없다. 오대양에 흐르는 물은 나의 눈물이요, 육대주에 부는 바람은 나의 한숨이로다.”라고 탄식의 기록을 남겼다 한다. 그러나 현세의 사람들도 “나폴레옹 같은 인생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과연 그 인생은 행복할까? 그러나 인간의 삶에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되는 것임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인데. 행복을 재물과 명예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일까? 2009년 11월 모 기업의 총수를 지내신 분의 자살 사건이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김영감 갤러리 ‘두모악’이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은 사진 작업을 하려고 제주도를 오르내리다가 제주도에 매혹되어 제주도에 정착했다. 버러진 학교를 작업장 삼아 그곳에서 사진작업을 하던 중에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온몸이 무너지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김영갑 선생은 사진기에서 떼지를 않고, 제주도의 오름, 바람과 돌, 바다와 들판을 담아냈다. 김영갑 선생의 저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으면, ‘무성한 이파리들을 모두 벗어버린 겨울나무처럼 내 몸도 앙상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느 젊
성경에서 우리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런데 이 불가능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부러 가능성 있는 것을 불가능으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이 일부러 막아 놓은 것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응답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근심과 고통을 주시는 것도 있다. 본문에 나오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가문이다. 그러니까 이 가문은 아주 경건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복을 받은 가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가문에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자식이 없는 연고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성경에는 자식이 없는 것
결실의 계절 10월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금년도 식물들은 신의 창조의 원리에 순종해서 절기에 따라 한 치의 변함없이 자기의 역할을 다해 열매를 맺어 우리 인간을 돕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복된 가정과 복된 사회, 복된 국가를 이루라는 사명을 맡은 우리 인간 사회는 오히려 점점 더 악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되고 있는 가운데 5년마다 치러지는 국가적 큰 행사가 되는 대통령 선거가 몇 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결정되었고, 야당으로서 제1당이 되는 국민의 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