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를 지친 얼굴로 찾아왔다. 남편은 아내에게 죄인이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이었는데, 사업자금으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가져다 써버렸다. 아내 몰래 집문서를 저당 잡혀 빚을 얻기도 했다. 그 사업이 잘되지 않아 빚더미에 앉았다. 아내가 한 푼, 두 푼 모아 장만한 집이 사라졌고, 형제와 친척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친구들도 그를 멀리했고 한때 둘도 없이 지내던 사업 동료들도 그를 피했다.그는 도저히 아내에게 돌아갈 면목이 없어서 여러 곳을 방황하다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러나 그 여자와도 헤어졌다. 아내는 남편에게 다른
성탄의 계절이 돌아왔다. 거리에는 성탄노래가 울려 퍼진다. 성탄카드도 주고 받는다. 거리는 화려하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정화된 마음으로 하나님이 오시기를 기다린다. 성탄절을 맞아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인 가정 모두에 좋은 향기가 나는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래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며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진행자는 청년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좋은 향기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습니다.”청년의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사람들의 발걸음은 제각기 다르다. 짙은 땅거미 속에 자기 그림자를 파묻고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걷는 사람, 하루 동안의 미진한 결과를 털어버리려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잊고 싶은 것이 많은지 때 이른 음주로 비틀거리는 사람…….“마치 새들이 둥지를 찾아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며/날아가는 모습처럼, 저녁이면 우리는/저마다의 걸음새로 집을 찾아 꾸역꾸역 걸어간다”그렇게 노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귀갓길을 매우 잘 그려낸 사진 한 장이 있다. 하루 일을 끝내고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한 여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김영감 갤러리 ‘두모악’이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은 사진 작업을 하려고 제주도를 오르내리다가 제주도에 매혹되어 제주도에 정착했다. 버러진 학교를 작업장 삼아 그곳에서 사진작업을 하던 중에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온몸이 무너지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김영갑 선생은 사진기에서 떼지를 않고, 제주도의 오름, 바람과 돌, 바다와 들판을 담아냈다. 김영갑 선생의 저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으면, ‘무성한 이파리들을 모두 벗어버린 겨울나무처럼 내 몸도 앙상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느 젊
좀 된 경험이기는 하지만 호랑이가 돼지새끼에게 온유하고 넉넉한 엄마 돼지가 되어 젖을 먹이고, 돼지가 새끼 겁도 없이 호랑이 젖을 빨며, 새끼 호랑이가 돼지를 엄마인줄 알고 얼굴을 비비며 놀고 호랑이는 응대한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한 동물원에 갔다가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한 관경을 보고, 분노했던 경험을 회상한다. 이사야 11:6~8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진 것인가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
지인의 딸 지영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아들을 잃고 나서 매일매일 아들이 묻힌 묘지를 찾았다. 갈 때마다 남편을 끌고 갔다. 아들 지형이에게 가바고… 애가 보고 싶다고… 아내를 따라 아들을 만나러 가다가 지친 남편이 말했다.“우리 인제 그만 가자. 살 사람은 살아야지. 지형이 그만 보내주자”아내는 그럴 때마다 남편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어떻게 아들을 먼저 보내놓고 더 살기를 바라냐고… 식사를 잘하는 남편을 보고 밥상을 엎어버리기도 했다. 아들 먼저 보내놓고 밥이 넘어가냐고…. 회사에 나가는 남편에게 울부짖기도 했다. 아들 먼저
어느 날 친구와 만나서 일을 보고, 가까운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멀리가서 식사하기도 그렇고, 비싼 값을 내고 밥 한끼를 먹기도 그렇고 해서 가까운 구내식당을 찾았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려면 식판을 들고 긴 줄을 서야만 한다. 차례차례 밥과 국과 반찬들을 떠서 식판에 담은 다음 자리를 찾아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식당 입구에 놓은 메뉴판에 내가 좋아하는 ‘성게 미역국’이 적혀 있어서 입에 군침이 돌았다.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와 나는 식판을 들고 긴
땅속에 묻힌 상태로 완전히 썩고 나서야 아름답게 승화되는 잘츠부르크의 암염……. 소금이 되려면 천둥과 번개, 거친 폭풍우를 견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랜 인내를 거쳐 아름다운 결정체로 태어나는 잘츠부르크의 암염은 사랑의 과외선생이다. 어느 분이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 위층에 떡을 드리려 올라갔다. 윗집에는 90대 노부부가 살고 있다고 들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백발이 성성한 90대 할아버지가 나왔다.“할머니 계세요?”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안쪽을 향해 다정하게
오늘 아르바이트노동자,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인권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서 편의점에 갔다가 아르바이트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다. 노인이 계산을 하려는데,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찾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물건을 찾느라고 바쁘니 조금만 기다리세요”종업원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할아버지에게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화를 벌컥 내더니 급기야 물건을 던지듯 내려놓고 그냥 편의점을 나가버렸다. 오히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순이 씨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여기저기 소박한 소품들이 놓여 있다. 오래된 자전거도 세워져 있고 오래된 책들도 꽂혀져 있고 꽃밭에 물주는 물뿌리개도 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꽃들이 사방에 피어 있다. 신기한 물건도 있어서 “이게 뭔가?”라고 물을 때마다 순이 씨가 대답한다.“우리 오빠가 쓰던 물건들이에요”“우리 오빠가 쓰던 모자예요”“우리 오빠가 영화감독이었거든요. 오빠가 촬영할 때 쓰던 거예요”순이 씨의 카페 공간 구석구석에는 그렇게 오빠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순이 씨의 오빠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은 순
흔히 농부는 정직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밭에 씨를 뿌리고, 일한만큼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수고한 만큼 보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불로소득만을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교인들을 향해, 이웃을 위해 선한 씨앗을 뿌리라고 말하고 싶다. 말 그대로 선한 씨앗은 선한 열매를 맺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세상 사람들은 물질만을 쫓는다. 그렇다보니 이웃과 나눌 줄도 모르고, 혼자만 살겠다고 몸부림친다. 성서는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선한 씨앗을 뿌리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의 오병이
미혼모로 어렵게 살아가는 영희의 이야기이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이의 아빠 되는 남자 친구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사랑했다고 믿었는데……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달아나버린 아빠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영희는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들으면 쓰러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머니한테는 직장을 먼 곳에 구해서 자취한다고 말해놓고 지하 단칸방을 얻어 집에서 나와 지냈다.배 속의 아이는 점점 커갔고, 영희는 그 아이를 배에
사람은 익숙한 속아 귀한 것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돈이 좋아 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에 위해 진정한 이웃을 잃어버린다. 편한 것을 좋아하다가 친구를 잃어버리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린다. 이것이 오늘 인간의 삶이며, 인간의 욕망이다. 사실 인간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려,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안믿는 사람보다 더 하다는 말을 듣는다. 어느 마을에 양수라는 친구가 있었다. 양수는 친구에게서 결별 통지를 받았다. 친구는 계속 주기만 하다가 지쳐서 말했다. 더 못
인간은 살아가면서, 지인들에게 충고 할 때가 있다. 충고는 항상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것은 충고가 남에게 상처도 주고,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에게 충고할 경우, 먼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한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말해 주고, 그 다음에 단점을 고치도록 해야 한다.그리하면 충고를 받아드리는 자가 상처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되도록 부더러운 말씨를 써야 하고, 지겹게 말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다. 물론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정당한 충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방법
이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재물과 건강, 그리고 자식이다. 그중에서도 자식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모의 소망이다. 하지만 많은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세상에 마음대로 안 되는 그 세 가지 중에서, 재물이나 건강은 절망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어느날 백화점에 와이셔츠를 사러 갔다. 특판 진열대에 와이셔츠를 내놓고 반값 할인판매를 하고 있었다. 두 개를 골랐는데 맞는 크기가 없다고 했더니, 직원은 창고에 가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5분 안에 올게요.”직원은 이렇게 말하고 뛰어갔는데,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창고에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끔 생각한다. 나에게는 참 좋은 이웃이 있는가. 아니 나는 이웃에게 참 좋은 이웃인가. 정말 나의 마음을 주고, 너의 마음을 받아드릴 수 있는 참 이웃인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의 마음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회가 오늘 발을 딛고 사는 사회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참 좋은 이웃은 공동체를 위해서 작은 일에 희생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지인인 정순 씨가 집 실내장식 공사를 했다. 그런데 공사를 하다가 인부 한 사람이 그만 장식대를 파손하고 말았다. 그 장식대는 정순 씨가 애지중지하며 늘 보물 1호라고 자랑하던 것이었다. 인부는 어떻게 배상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정순 씨에게 말했다.“제가 일을 하다가 부주의하여 그만 이 가구를 파손했습니다. 배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그런데 정순
학교 선생인 지인이 있었다. 이 선생은 어느 날 학교 학교수업을 끝내고 운동장을 걷다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팔을 다친 적이 있다. 깁스를 한 채로 수업해야만 했다. 그런데 한 손에는 마이크가 든 가방을, 또 한 손에는 몇 권의 책을 끼고 일곱 개의 반을 돌아가며 수업을 해야만 했다.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그런데 한 학생이 자기 반 수업 시간이
영수는 군대 시절만 떠올리면 몸서리를 칩니다. 선임이 너무나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일로도 허구한 날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 그런데 얼마 전 거리에서 그 선임과 딱 마주쳤다. 제대하던 날 다시는 그 선임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 원수를 외나무다리가 아닌 거리에서 마주친 것입니다. 그 순간, 군대시설이 파노라마처럼 영수의 머릿속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