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교체되어 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 선지 몇 개월이 되었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었다. 국민은 현명하여 지난 5년간의 정치를 청산하게 하고 새로운 정치적인 페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의 염원이 바라던 대로가 아니라 조금은 식상하려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구정치나 새로운 정치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정치나 새 정치가 대동소이하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시대에는 정권이 교체되면 밀월이라는 신구정권의 동거가 한동안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 협치를 한
코로나19를 가리켜 종말 추수 때에 심판하는 도구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은 비대면이 해제된 이후에 과감히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혹 감염이 우려되어 관망하는 신자가 70%나 된다고 한다. 혹 자들은 이런 현상을 이야기하기를 이 시대는 기독교 신앙으로 바라볼 때 알곡과 쭉정이로 구별하는 시대이며 코로나19가 바로 도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현황은 전체 교우 중에 약 30%(?) 정도가 출석하고 나머지는 관망하고 있다고 한다.그 관망은 매 주일 교회에 직접 출석하여 예배 참석을
내년부터 대한민국의 총인구가 줄어 5천 만명 선이 무너진다는 내용이 얼마 전 보도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출산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라고도 한다. 약 2,3 백여 년 후에는 지도상에 대한민국은 사라지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연구발표 되기도 했다. 인구가 줄어들게 되니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자연 전도 대상자도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교회의 수도 줄어든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와있는 현실이다. 사회는 지금 혼밥, 혼술이라는 용어가 신조어로 등장했으며 자연스럽
위 제목과 일부 내용은 메타버스 1권(김상균 플랜비디자인 2022 p270~274) 메타버스의 미래 또는 그림자#5:기억거래소, 헤븐 서버는 등장할까?에서 참고했다. 기독교 신앙의 가상 세계에 대한 접목이자 2천년 동안 다루어 온 기독교 신앙에 대한 현실 세계에서의 믿음을 그대로 옮겨 메타버스 가상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내용인 것 같다. 실제 현실 세계의 회사에서 병으로 사망한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메타버스 속의 헤븐 서버와 하데스 구역에 대한 설명 중 자신이 생존 시에 다니던 회사를 설립한 분이 사후 하데스 구역에 있으면서 끝없
한국교회나 세계 교회 역시 청소년들이 교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약화 되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미래 세대인 유년 청소년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유년 청소년들이 빈 자리는 한국교회의 미래뿐 아니라 기독교 미래에 암울한 전망인 것 같다.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는 교회에 속한 유년 청소년들이 이탈에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한 교회의 새로운 대책이 늦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교회는 유년, 청소년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사를 파악하여 세속적인 관심을 신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먼저 있은 후에 일어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부활은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신 진실함을 부활을 통해 나타나 내보이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독생자를 죄인 대신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신 하나님 사랑의 증표다. 부활절에 기독교 신자들이 보여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 우선이다. 거룩하게 드리는 예배 행사로 끝이 난다면 부활절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이 먼저임을 교회와 신자들의 깨달음이 중요하다
매년 순서에 따라 사순절(40일)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주일이 쳇바퀴 돌 듯이 순서에 따라오며 웬만한 기독교 계통은 왁자지껄 행사를 치르느라 분주하다. 사실 성경에는 부활절기를 중심으로 오는 여러 행사에 대한 연월일시에 대한 기록이 없다. 어떻게 보면 신앙과는 무관하게 날자가 다가오니 그날 들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 같은 모양새다. 사실 교회력이란? 종교개혁 전 천주교에서 제정하여 교회 운영을 위한 제도를 개신교에서 몇몇 교단들이 차용해 사용한 후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의 모든 교파와 교단에서 사용하면서 마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
항간에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 구약과 신약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난무하여 아예 경전 자체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앙의 정체성도 함께 도마 위에 올려 진위에 대한 논쟁을 유도하는 저서들이 등장하는 중이다. 성경의 진리에 대한 진위의 논쟁은 기독교의 뿌리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므로 누구나 함부로 재단하거나 결론을 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닌데도 염려스럽다. 아브라함의 갈대아 우르에서의 이주, 바벨론 유수 이후의 강제 이주와 서기 70년의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의 멸망과 강제 추방등등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운동이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다. 경제는 선진국에 진입하여 국민의 생활은 이전보다 확연히 달라졌는데 사람들의 심성은 오히려 예전 만 못한 것 같다.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정당의 정치 행위도 구태의연하게 서로 물고 뜯고 비하하고 끌어내리는 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저질스러워 자라나는 세대들이 무엇을 배울까 하는 염려가 앞선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무엇인가 달라져야 하는데 눈으로 보이는 현실은 과거의 정치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국민은 나라의
선교 이백여 년이 된 현재 교회의 겉은 일반 대중 종교와 같은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으나, 문제는 교회의 내면도 세속 종교처럼 변질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스러운 점이다. 겉은 기독교의 허울을 쓰고 있지만 속이 세상의 기복 신앙을 선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래 교회의 탄생은 인류의 생명과 영혼을 자신들의 죄악에서 건져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현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영원히 죽은 죄인들을 십자가의 은총으로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훼손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
한국교회가 단연 세계 제일의 모습 중 하나는 교파의 분열과 연합회의 분열이다. 성경은 하나 되기를 힘써 지키라고 하였지만, 지도자들은 본인의 정치 자본과 영예와 권위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기간 중 당시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된 종교 집단의 지도자들에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신 경우를 보게 한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형식적인 신앙에 대해 단호하게 저주하신 모습에서 볼 수 있었으며, 특히 종교를 빙자해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취한 종교 권력가들을 비난하셨다. 오늘날에도 교단과 연합회의 영향력을 행사할
기독교 이천년이래 기독교가 사회에 냉대와 조소, 비아냥거림을 듣는 일은 코로나19 창궐 이후에 일어난 신풍속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기독교회 건물과 높이 달린 십자가, 그리고 그곳을 출입하는 신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했었다. 그리고 주일이면 성경책을 손에 들고 교회로 향하는 기독교도들에게 본인들은 같은 종교가 아니거나 무종교라고 하더라도 기독교도들에게 존경을 보내는 것을 느낌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천역으로 인해 신 불신 간에 넓은 간격이 생겼다. 물론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당국의 방역 계획에 순응해
지난번에 이어 다시 세계보고서 2022,(박영숙,제롬 글랜, 비즈니스북 2021,11) 책의 내용 중 일부 특히 222~227페이지 내용을 기독교 신앙에 비교하여 교회 미래에 닥칠 현상들을 생각해보고자 한다.메타버스 플렛폼, 가상현실, 초현실, 아바타라는 신종 언어가 첨단 과학 세계의 전문 언어이자 현재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 내는 새로운 초현실 세계의 용어다. 내가 받아들이건 아니건 간에 세상 사람의 삶의 형태가 초현실적으로 변화됨을 의미한다. 미래에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이처럼 가상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
미래 세대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마도 흐르는 시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변한다. 세계미래보고서2022년(박영숙,제롬 글렌 비즈니스북스2021,)에 보면 지구와 우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우주 공간에 신도시 건설을 가까운 미래에 구축하여 주민들을 이주시킨다고도 한다. 또한 지상 인터넷이 아니라 우주 인터넷을 위한 스타링크로 연결하기 위한 저궤도 위성을 수만 개를 쏘아 올린다고 한다.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현상은 과거에
한국교회의 성장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초고속 성장을 했다. 물론 성장의 내용을 보면 수많은 영혼을 예수의 이름으로 거듭나게 하였으며, 많은 신자가 모여 예배드리는 처소를 걸맞게 건축함을 당연히 여겼다. 교회가 세워진 나라마다 그 나라의 정치 동향에 따라 종교 활동의 제재로 인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다행히 한국교회는 역사의 부침 속에서 갖가지 정치 형태를 겪으면서 교회가 체질에 맞는 신앙의 정신을 간직해 왔다. 한국인 특유의 급한 성격과 인내하는 정신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려 나라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백절불굴하는
기독교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아 생명과 영혼을 구원받게 한다. 죄인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는 사실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체험을 세례(침례)를 통해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표현하였다. 세속적인 모든 생각과 물욕을 버리고 신령한 성품을 소유하도록 했다. 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자들을 거듭났다고 표현한다. 거듭남이란 예수님을 믿기 전 세속적인 생각과 욕심 탐심들을 모두 버린 자들이란 의미다. 그런데 교회를 이룬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헌금을
백 년 동안 기독교의 닉네임으로 사용된 명칭은 대략 장로교 또는 장로교단, 감리교 또는 감리교단, 성결교 또는 성결교단, 침례교 또는 침례교단, 하나님의 성회 또는 순복음교회 등등으로 기독교를 나타내는 이름들로 인해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인지 아니면 교단의 이름들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헷갈리는 예가 있었다. 이렇게 수백 년이 흐르다 보니 기독교라는 명칭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교파의 크기 즉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그 교파와 교단의 위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는 거의 대다수 교파나 교단들이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침례교,
지금 한국교회를 운영하는 주체세력은 지금 교회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알게 모르게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무형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믿음의 조상들은 서구의 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선교 받을 시기에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최빈국의 형편이었다. 선교사들은 구제품이라는 옷가지와 먹을 것들을 가져다가 배고픔과 추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을 도와주었다. 부지런하고 신앙적으로 열정이 가득했던 당시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기도하고 일한 덕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교회를 이루는데 기반이 되었다. 세계적인
본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초로 세워진 구원의 방주다. 구약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심판 내용 중에 인류와 삼라만상의 생명을 멸하실 때 창조의 근원인 생명과 종족의 보존을 위해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노아의 여덟 식구와 짐승의 생명 유전을 위한 홍수 기간 내내 견딜 만한 방주를 짓게 했다. 문제는 방주는 하나만 짓게 하셨음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하나만 만들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방주가 하나인 것에 대한 의미를 신약의 교회에 대한 개념과 병치하여 생각해야 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신약에서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회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유래를 찾기 어려운 정체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위험한 감염병을 정부나 교회도 어떻게 속 시원하게 해결할 대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마냥 방역! 또 방역만 외치며 각자도생할 수 있기 위해선 거리두기, 손 소독, 마스크 착용 등등 지침에만 매달리는 중이다. 너무 오랫동안 강조하다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둔해져 설마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지배하여 방역 지침에 둔감한 실정이기도 하다.그러다 보니 교회도 재적인원에 비례하여 겨우 최대 20% 정도 만 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