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되지 않던 질병을 고침 받고 주의 종으로 부름 받아 전도자로 돌아다니며 주님을 외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마치고 교회를 개척하여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전도하며 5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어느 날 혀가 힘이 없어지고 발음이 잘되지 않았다. 그것도 하나님, 제사장, 대제사장, 이스라엘 등등 목회자가 설교 할 때마다 쓰는 중요한 단어가 발음이 잘 되지
목회현장은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여름 날씨와 같을 때가 많이 있다. 특히 성도들 간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꼭 먼저 찾아와서 울고불고 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이야기 할 때가 있다. 개척목회 초창기에 그런 상황을 여러번 겪었는데 처음에는 먼저 와서 우는 사람의 말이 틀림없는 진실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반대였다.먼저 찾아와서
신학교 때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 모임에서 목회의 근황을 이야기 하다가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교회건물 오층이 사택인데 사택 문 앞에는 매일 육해공군이 선물로 와서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고하니 성도들이 마음을 담아서 육지에서 나는 것과 바다에서 나는 것과 공중에서 나는 것을 목회자 집에 갖다 두고 간다는 뜻인데 개척해서 삼십년 세월을 성도들과 함께 동
미국 하버드대학교는 1636년 지금으로부터 약 380년 전에 청교도 신앙을 가졌던 미국의 목회자들이 목회자들을 양성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세워진 학교로서 세계 최고의 대학이고 청교도 신앙의 뿌리요 자존심이자 미국의 자존심이기도하다. 이런 신학교에서 현직 교수의 입을 통하여 하버드 대학교에서 기독교의 뿌리를 제거하겠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만 참 종
몇 년 전에 어느 목사님의 아들을 교육전도사로 임명해서 봉사하게 했는데 중고등부 토요집회 때마다 반바지를 입고 다리에 민망할 정도로 많이 자라있는 시커먼 털을 내놓고 자랑삼아 활개를 치고 다녔다. 어느날 한번 점잖게 타일렀는데도 말을 듣지 않길래 야단을 쳐서 긴바지를 입고 다니게 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기도 하지만 개척했던 상가건물에서 통닭집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대동강, 한강줄기 천년을 흐르며8.15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고이 안고6.25의 총성과 아우성을 가슴에 새기고하수처럼 쏟은 피 쓸어 담아 고요히 흐르네낙동강, 두만강 천리 길 돌고 돌아 민족의 방패 되고 든든한 경계되어반만년 조국강산 기꺼이 보존했네한라산, 백두산 하늘 높이 치솟아 민족정기 민족기상 높이고 더 높이어남북한 하나되어 기
철이 들면서부터 종종 들었던 말 중에 “무섭다 무섭다 해도 사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개척 멤버 없이 돈 없이 개척교회를 해본 목회자들에겐 이보다 더 실감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개척 후 반년이 지날 때쯤 수십 명의 성도들이 출석을 했는데, 그때부터 교회를 힘들게 하고 목회자와 사모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첫째가
교회 개척을 위해서 상가 건물을 얻어 놓고 돈은 없지만 그래도 꼭 있어야 될 것은 말씀을 전할 강대상과 성찬 상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어느 성구사에 가서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개척 예배를 드린 후 헌금이 들어오면 꼭 갚겠다고 했더니 고맙게도 거지꼴을 하고 있는 나를 믿고 강대상과 성찬 상을 배달해주었다. 개척예배를 드린 후 어느 기독교 백화점에 가
교회 개척을 위해서 장소를 찾느라 한 달을 헤매다가 겨우 20평 남짓한 상가 2층을 계약했는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 부터였다.신학생이었던 내가 살고 있던 집이 사글세 보증금 사백만원이라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었다.사백만원이 우리 부부의 재산 전부였기 때문이다. 춥고 배고픔을 겪는 중에 어쩔 수 없이 또 금식기도를 해야만 했다. 돈도
신학교 시절 가장 힘들었던 연단 중 배고픔과 추위는 시골 부잣집에서 자란 나에겐 좀처럼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오는 고통 때문에 혼자서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길은 금식과 기도였다.일 년 동안 삼일 금식하고 삼일 죽 먹기를 반복하는데, 허기진 배는 배꼽을 누를 때마다 손가락이 등뼈에 닿았다. 돈이 없고, 양식이 없어 솔잎을 뜯어서 씹
내 신앙의 출발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마산 문창교회였다. 고 1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첫발을 디딘 후 어느 날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돌아보니 4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후였다.20대 초반에 주님을 떠나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죄악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릴 때 영혼의 방황은 물론이고 주님의 징계로 인한 심한 채찍은 육체의 고통으로 심히도 아프게
어려서자랐던 시골집 사랑박 벽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 있는 달력 한 장이 오랫동안 붙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는데 바뀔 때마다 자신과 성향이 비슷하거나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찾느라 꽤나 고심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 몇몇 정부는 코드정부라고 할 만큼 고드가 맞는 사람을 찾았는데 이처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는 이유는 통수권자
천일작정기도회가 11차를 완료했다. 전국목회자세미나도 76차를 개최했다. 1만여 교회가 동참했다. 11차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다 같이 박수로 영광을 돌리자. 우리 동아교회는 천일작정기도회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진행해 오고 있는데 1차 기도 후 기적적으로 교회를 개척했고, 2차 기도 후 교회가 자립되었고, 3차 기도 후 교회가
강원도 산골 시냇가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떼를 지어서 수억만 리나 되는 태평양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다 큰 어미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강원도 산골 시냇가에 다시 돌아와서 알은 낳고 생을 마감한다. 신기하게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 냇가로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명절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늘 추억에 사로잡히곤 한다. 은혜 받고 밤낮으로 기도하고 금식하고 전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개인적인 종말의 차원을 넘어서 온 우주의 종말을 고하는 우주적인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는 때이다. 그래서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이 지구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사람마다 불안과 초조와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쓰나미 때문에 수십만 명이 죽고, 불어 닥친 태풍으로 거대가 도시가 폐허가 되고 수만 명이 죽는
어떤 부자가 꿈속에서 천국을 가게 되었다. 천국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한 곳에 이르렀더니 천사들이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수많은 집들 가운데 너무나 크고 잘 지은 집이 있기에 다가가서 보았더니 뜻밖에도 자기 집에 종살이를 하고 있는 종의 이름이 문패에 적혀 있었다.부자가 천사에게 반문하기를 “아니, 어떻게 우리 집에 종살이 하는 자가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출판가, 발명가이기도 한 벤자민 프랭클린이 청년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도시로 나가려고 할 때 자기가 다니던 담임목사님에게 가서 물었다. “앞으로 제가 도시로 나가서 성공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침묵으로 일관했다.질문했던 프랭클린이 미안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일어나
일전에 모 신문에 소개된 내용인데 한 번 더 소개할까 한다. 재미동포인 박세록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내면서 그의 삶은 여러 면에서 풍족하기 짝이 없었다. 문제는 최고의 학벌과 유명한 의사, 부자였지만 인생이 만족이 없고 허무해서 방황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부흥회 때 참석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