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기쁜소식이다. 따라서 복음은 지친 삶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희망이며, 소망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고,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데 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가져다가 주어야 한다. 헌데 오히려 그리
우리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시대에 살고 있다. 인감의 탐욕이 계속되는 한 변종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재생산돼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인간사회의 혼란과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코로나19’정국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인간세상은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되고 있다. 사람들의
악함을 선함으로 용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성인(聖人)의 바보 같은 흉내 내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를 주었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역시 이러한 용서를 몸소 실천하셨던 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간디는 어느 날 폭력배들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폭력배들은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고, 간디도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즘 인간들 사이에서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크게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변종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이로인해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위대한 선물이다. 또한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인 인간의 생명은 누구도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생명을 위한 혁명을 가열차게 벌여야 한다. 신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18세기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빅토르 마리 위고는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렇다 인간 모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오늘의 사회는 사랑이 실종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모두가 내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리고 사랑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개인주의
어느 목사는 “종로5가의 목사와 장로들은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말했다. 하나님나라에서 이탈한 목사와 장로, 그리고 교인들은 이 목사의 말대로 생명력을 잃어버려 걸어 다니는 시체는 아닌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진 성직자와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보다 자기자랑과 성공주의의 우상에 빠져서 종교의 본질을 상실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0년이 됐다. 참혹했던 그날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 땅에서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청드리며,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노래한다. 이 믿음을 통하여 기아와 전쟁이 종식되는 세계평화도 소망해 본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한민족의 하나님이며, 세계민족의 하나님이기
오늘 ‘코로나19’바이러스 집단감염의 지원지로 작은 교회들이 언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믿음’을 내세워 질병본부가 실시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주먹을 내밀어 ‘주먹악수’를 청하면, “믿음이 없다”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또한 “답답한 마스크를 왜 쓰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마스
흔히 사람들은,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보혜사 성령에 의해서 변화 될 수 있고, 변화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성령 안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준 땅을 탈취 당하고도, 회개하지를 않았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고국으로
주기도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했다. 천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지상의 삶도 중요하다는 애기다. 인간은 땅에서 성취된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늘의 심판을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믿음을 통해 천상의 하나님나라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의 삶을 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
오늘 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절망적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겸손하고 준비된 대통령과 의료진, 성숙한 백성이 있어 ‘코로나19’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다. 확진자 1만명을 넘긴 대한민국은 이제 10명 이하 한자리수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자가 240만명을 넘었다. 미국은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사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와 함께 살아야 한다. 중국 우환발 ‘코로나19’바이러스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나라마다 국경을 걸어 잠그며,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것은 틀림없다. 오늘 세계는 글로벌시대이다. 혼자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글로벌시대 세계 모든 나라 함께 살아야 할 이웃나라이다. 혼자
어제(22일)은 사순절 셋째 주일이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선택 할 것인가(?) 아니면 바나바를 선택 할 것인가(?) 빌라도의 법정에 서 있다. 예수님과 빌라도는, 방법은 다르지만 똑같이 이스라엘민족의 해방운동에 참여했다. 예수님은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했고, 바나바는 선동적인 힘에 의한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법정 앞에 선 바나바를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간 아무리 어려운 국난이 와도 우리는 잘 이겨냈고, 극복했습니다. 코로나19 우리 극복합시다.”‘코로라19’로 인해 국민 모두가 불안한 가운데 곤궁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매일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언제인가는 ‘코로라19’ 확진자도 줄어들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는 이웃
사람은 누구나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모두가 성공하기를 원하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기 일쑤다. 그것은 실패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적인 실패의 원인을 보지 못한다. 외적인 실패만을 생각한다. 성경 에레미아 4장 1-4절은 ‘내안에서의 문제를 찾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하루를 휴식하셨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노동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나무꾼 친구가 산에 올라갔다. 두 친구는 각자 산속에서 움막을 지어 놓고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었다.한 사람은 유달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1)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1)앉았더니/(중략)/너희는 가서 ㄱ)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