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노래다 벗어버리고빛만 남기리라도망가는 네 발목에까지금빛 눈웃음 매달아주리라어두운 수풀발에 채이는 돌멩이까지잘 비추며 사랑하는 사람아가거라미웠던 이에게는 손을 더운 손을이쁜 이에게는 평안을 더욱 평안을아아 그늘에 숨어 달라는 사람아 기억하여라네 얼굴에 비비며 비비며 닮아간 내 얼굴을그러다 또 차오를 내 얼굴을 그리하여 네 발자국마다 볼을 비비며 비비며늙음
해피 버스데이 시골 버스정류장에서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한참 후에 왔다-왔데이!할머니가 말했다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눈이 파란 아저씨가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먼데이!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버스데이!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서양 아저씨가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어떤 붓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저리 눈부신 참회의 시간을얼마나 숱한 눈물의 항아리가얼마나 간절한 기도의 메아리가쪽물이 뚝뚝 떨어질 둣맑은 가락이 파란 무음으로 흐른다멀리 있는 것은 다만 그리울 뿐이런 높푸른 날에는 누구라도 용서하고 싶다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시집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에서*문현미 시인 : 문학박사 『시와 시학』
작은 평화어항 앞에 있으면우리도 평화롭게 노니는금붕어가 된다.화려한 말보다는아주 작은 말로사랑하는 마음을 보면우리도 행복하게 된다.믿음이 있는 말을 주고 받는정직한 세상에서우리도 살고 싶다.금빛 지느러미처럼아름답고 밝은 마음으로미움 없이 입 맞추며우리도 살고 싶다. 오랜만에 평화라는 단어와 마주한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평화라는 단어를 몇
믿 음수술대 위에 누워 본 적이 있는가이름이 뭐예요벌거벗은 나신에 믿을 거란곤아무것도 없는,그야말로 표본실의 청개구리한테자꾸만 이름을 묻는다다행이도 여자 마취사 선생이진통제를 먼저 투여하고“마취제 들어갑니다”“편안하게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납니다”마취제가 혈관 속을 후끈 달구며 훅 들어온다찰나의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꺼져있는 둥근 수술대 조명을 따라
개미들의 행진개미들이 줄을 지어 바삐 움직인다몇 백 마리 혹은 몇 천 마리는 되는 것 같다비가 오려나, 이사를 하는가아니면 전쟁이 터졌나모두 무사했으면 좋겠다 누군가 지금 세상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이런 인류의 대재앙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어머니 내가 첫 울음 울던 날어머니도 따라 눈물 흘리셨다꽃대에 물이 올라유난스레 오는 나의 봄에 비해점점 여위어가는 어머니의 가슴은소리없이 저물었다새벽이슬에 지는 별이돌아가는 발자국 소리무심한 봄날 꽃그늘 걷히는 소리한점 꽃잎이 그러하듯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다만 가슴에 살아남아 오늘도 그리움 길러내는 어머니 내 어머니 조선문학』 20년 5월호에서
배꽃 동산달빛이 환한배꽃 동산거짓말도 비밀도 다 아름다운세상 너머 세상배꽃 동산 벚꽃이 만개한지 엊그제 같은데 하염없이 꽃잎은 떨어져 꽃가지 사이 머물렀던 마음 한 켠이 허전해진다. 그런데 마침 하얀 배꽃이 피어나니 다시 마음밭이 환해진다. 거짓 없는 자연의 변화를 묵상하는 때, 보이지 않는 손길의 큰 힘에 감탄을 하게 된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만 봄에는
불사춘(不似春)사기그릇 부딪는 소리찌그러진 세숫대야 구르는 소리 나다가도아침이면 된장국에 몇 가락김이 올랐다헤진 작업복으로 온탕 같은 여름과무릎 서걱대는 가을을 건넨 후물 바랜 한복을 입고설날 잠을 청했다널다리에 얼음 엉겨 붙는 혹한을 지나면논배미코끝으로 봄은 오리라 여겼는데개화를 상실한 부엌엔 냉기가 가득하다고무물통 낡아가는 수돗가기대(期待)라고 손톱만큼
포옹이 주는 위로 우리는 꼭 껴안았다껴안을 땐 서로 부드러운 스펀지가 되어서로의 염려와 슬픔을 빨아들인다우리가 껴안는다는 건나는 네 안에 있어언제 어디서든 외로워하지 말라는 뜻기쁨은 함께 나눌 때 배가 되니같이만 있어도행복이란 고래가 하늘로 날아오른다누군가 혼자 있을 때말해 보는 것"이리로 와 함께 얘기해요"사람은 그저 누군가가
산이 숨는다나는 산에 들고산은 내게 들어초여름 하룻밤을 달게 자는 줄 알았네. 장터에서 엿치기하다 개꿈 깨어 둘러보니 나는 객창 안에 있고산은 객창 밖에 있네. 엿 구멍 재다 산 놓치는 줄 몰랐네.산 들인 것부터가 개꿈이었네. 다시 산에 올라도 산을 들여도산 홀로 산에 들어 꿈적도 않네. 무슨 꿈을 더 깨어야 산을 들이나.*감태준 : 『시와함께』 편집인.
그 날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의 일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그날이 어떤 날일까. 모두에게 각인된 역사의 그날일 수도 있고 개인사와 얽힌 그날일 수도 있다. 시의 제목에서 비롯된 호기심이 시를 다 읽는 순간까지
옥탑방의 로자신성한 자는 꿈을 꾸어요.그 꿈은 별이고인간이고 나무랍니다.자, 지금 바로 떠나 볼까요.꿈속으로의 여행을 떠나요눈을 감고월광 소나타를 들어보세요.사랑의 슬픔을 노래해 보세요.지는 해를 보세요.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산책하는 연인들을 보세요.그들과 함께 초록 위를 걸어 보세요.세상이 달라 보이지요.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지 보이나요.오늘만은 모든 시
산벚꽃온통 적막한 산인가 했더니산벚꽃들, 솔숲 헤치고불쑥불쑥 나타나 저요, 저요! 흰 손을 쳐드니불현듯, 봄산의 수업시간이생기발랄하다까치 똥에서 태어났으니저 손들 차례로 이어보면까치의 길이 다 드러나겠다 똥 떨어진 자리가이렇게 환할 수 있다며또 한번 여기저기서 저요, 저요! 영하의 겨울이 가고 이제 봄의 생기가 느껴진다. 계절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을 볼 때
갸륵함 팔이 없는 사람이 성호를 긋는다?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바람 부는 일그의 기도였구나-시집 『간절함』에서신달자 시인: 『열애』 『종이』 『북촌』 등 15권 공초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상문학상. 서정시문학상. 은관문화훈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역) 문화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 갸륵함은 착하고 장하다는 뜻으로,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말
걸레를 위하여걸레와 함께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다 보면서서히 땀이 나며무릎을 꿇은 겸허가 만족스러워집니다.어느 누구와도 함께 하지 못했던 평화를누립니다.그런 친구와 잠시 헤어질 때의 예의는깨끗이 빨아놓는 것입니다.걸레가 바닥에 놓여 있을 때다른 식구가손이 아닌 발로 잡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그러니 전능하신 당신께서는저를 부디 걸레로 써주시되더러운 곳을 닦는
장미애써 감추려 해도 입가에 가득 번지는 미소그러나 어찌 눈에 보이는 것이 가슴에 담겨 있는모든 것일 수 있으랴마음 살짝 보여주고 돌아서며 먼 산에 눈 줄 때보일 듯 말 듯 문득 눈가에 글썽이는 이슬하늘은 멀어 다가서지 못하고낯 붉히고 돌아서 있는 오후아무 말 못하고 서 있어도눈에 잡히는 미소 - 『시와함께』 2019 창간호에서* 김순희 시인: 이화대학교
돌아오는 길… 춥지만, 우리이제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채소 파는 아줌마에게이렇게 물어보기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다가올 새 길을 묵상하는 12월이다. 또한 영혼 구원을 위해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 믿음의 눈으로 돌아보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기
돌 하나태초에 돌맹이 하나,하늘로부터 나타나침묵의 관성으로아래로 굴러 내리며,나무들과 들풀들을 꺾고다시 문화들을 짓밟는다,또 다른 돌들과 한 패를 이루며산을 뚫고 길을 내고물속으로 들어가 호수를 만들어하늘을 심는다.-사월회 시 동인 『바람칼의 칸타빌레』에서* 원응순 : 경희대 명예교수(영문학) 기독시문학상 등. 월간 『조선문학』 편집위원 제목과 첫 연 첫
꽃길 당신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함께 해온 시간들에 감사합니다당신을 만남으로서 탄생한 생명들에 감사합니다당신이 곁에 있어서 나의 눈이 트였고세상이 보였습니다밤길도 무섭지 않았습니다함께 걸어온 길은 꽃길가시밭길도 때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당신에 감사합니다앞으로 걸어갈 길도마지막 떠날 그 길도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나 꽃길멀리 있어도홀로 있어도당신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