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외교적,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 어디하나 국민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곳이 없다. 그렇다보니 국민들은 현실적인 일들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 간에는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져 반목과 갈등의 연속이다. 이를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부추긴다는데 한마디로 참담하다. 해방과 함께 남북한이 분단된 이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민자가 있다. 이런저런 고생을 하다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30대에 미국의 갔는데 50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고국을 떠나 이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고국을 떠나 외국생활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떠돌이 생활이다. 오늘 대한민국도 이민자들이 많다. 이들의 생활이 곤궁하다는 기사가 매일 언론을 통해 보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구원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한다. 빌리 그레함 목사는 "은 값없이 얻는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일은 우리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빌리 그레함 목사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 할 때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이 진리를 교육하고 있다. 성경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목회자를 섬긴다는 지적을 받는다. 목회자를 보고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다. 이는 목회자가 교주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 교인은 다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목회자의 권한이 권력이 되면서, 교회는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예수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원수 왜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유관순 열사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나라사랑 기도문이다. 유
SNS에 투병 중인 어느 사모님으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장문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이 글을 읽으면서, 죽음과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칼뱅은 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한 것이며, 이미 신에 의해서 예정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선’과 ‘악’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예정된 것이다고 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광주일고 정권’이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차별하면서 더 힘들게 하는 정권에 대해 부울경 주민이 뭉쳐서 심판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서울에 구청장 25명 중 24명이 민주당인데 그중에서 20명이 광주, 전남, 전북이다.”라고도 했다. 명백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손정도 목사는 1882년 7월 26일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오흥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2년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한 가정에 투숙하게 되었다. 바로 그 집이 조씨 성을 가진 목사가 사는 집이었다. 손 목사는 조 목사의 전도로 기독교를 접했다. 손 목사는 평양서 집으로 돌아와 집안 대대로 유교를 믿으며 방에 모셔
인터넷에 올라온 한 여고생의 글이 감동을 준다.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 감동의 글이라 목요단상에 소개하기로 마음을 먹고, 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방과 후에 아이들과 호떡을 먹으려고 가는데, 호떡 파는 포장마차에서 허름한 아저씨가 호떡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이 "저 아저씨 불쌍하다"고 하며 수근 거렸다. 초라
우리는 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우면 어머니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던 일들을 기억한다.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잠에 들었다. 너는 어느날 어머님의 자장가 소리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려는데, 자장가 소리가 점점 멎더니 노래 대신 어머니의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리기 시작했다. 자장가를 듣던 저보다 자장가를 부르던 어머니가 먼저 잠이
누구나 어릴 적 추억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영수의 추억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영수는 할머니의 손에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영수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사랑이 아닌 마음의 상처이다. 신혼시절 영수의 아내는 설거지하면서 무심코 흥얼거렸다."어젯밤에 우리 아
영미의 교파주의가 이 땅에 그대로 뿌리내린 한국개신교는 해방이후 연쇄적인 분열이 일어났다. 한국개신교는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남북한 민족의 분열, 이념간의 분열, 동서의 분열, 계층 간의 분열, 세대 간 분열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해방을 앞두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갈라져 싸움을 벌일 때, 민족주의 편에서 활동하며, 사회
봉사처럼 좋은 일은 없다. 봉사를 한다는 것은 너와 내가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열어 상대방을 받아드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이웃과 함께 살아갈 마음자세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를 않다. 그래서 봉사하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그의 길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내 생명을 위탁해야 한다. 로마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에 불과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양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까지 내 놓았다. 땅의 백성들을 위해서 생명을 내 준 것이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가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도 크다고 했다. 산술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남이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에서 사회법의 지위가 하늘을 찌르는듯하다. 각종 송사가 유행처럼 번져 버렸고, 사소한 다툼까지도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법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말로는 세상법정으로 가지 말고, 은혜롭게 해결하자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죽하면 교회의 분쟁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법무법인이 존재할 정도다. 물론 첨단을
진아가 대학다니던 시절에 언니와 자취생활을 했다. 어느 날 언니가 회사동료에게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이제 겨우 젖을 뗀 몰티즈였다. 강아지는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비실비실했다. 우유를 줘도 맛있게 먹는 법이 없었고, 콧물도 자주 흘렸다. 여느 강아지들이 해보일 법한 애교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더욱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강아지가 축
두 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그 중에 둘째 딸은 자폐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둘째가 어릴 적 자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일을 그만두고, 둘째를 돌보며 지냈다. 그러느라 첫째 딸은 거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혼자 컸다. 첫째가 1등 성적표를 가지고 와도 둘째에게 신경 쓰느라 칭찬 한번 못 했고, 첫째가 실연을 당하고 온 줄도 모르고 둘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