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믿는 자는 성령이 그 안에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있다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부르지만 그 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고 했습니다. 이 말은 첫째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두고 떠나실 때 보혜사 성령을 보내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이고, 또 하나의 의미는 너희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걱정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바울의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사도바울이 그에게 전해준 진리를 잘 지켜야할 임무가 있었으며 그것을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부탁할 의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진리가 대대로 보전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충성된 사람들과 가르칠 수 있는 사
야고보서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단지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온전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약속을 믿는 마음을 원하시고,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하십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우리 몸에는 각기 다른 지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지체들은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서로 협력해서 일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손으로는 수저로 밥을 뜨며, 치아와 혀, 위도 각각 일을 합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정상적으로 일을 하려면 몇 사람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함께 협력해서 일해야 합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을 한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먼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배워야합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성숙돼서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자리에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나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에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디에 많은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투자하느냐는 순서들이 올바로 정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서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지체가 있다면 아마도 언어를 전달하는 우리의 입일 것입니다. 사람의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말에는 독이 있기도 하고 사랑이 담기기도 하며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무척 중요합니다.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딤후2:
선한목자와 삯군은 여러 모양으로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이 분명 다르며 결과 또한 정 반대로 나타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것을 내어주지만 삯군은 자기를 위하여 양들의 것을 탈취합니다.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움직여 섬기는 일을 하지만 삯군은 자기를 위하여 양들을 움직여 섬기게 합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이 굶어도 양들을 먹이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의 끝부분에 이르러 기록한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에게 전하는 유언장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먼저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우리는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영혼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끄는 이단들과 싸워야 하고,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할 수 있는 대로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에 데려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장님이요 흑암 가운데 거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며, 자신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전에 그와 같이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하는 것입니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순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로 여기고 믿음으로 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범사가 잘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시편 23편을 통하여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행하는 것이라 증거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2)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 표적을 보고 살아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보이는 소망을 누가 바라리요(롬 8:24)” 구약의 성도들을 향하여 성경은 말하기를 보이지 않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모든 문제를 푸는 만능열쇠는 언제나 믿음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었지만 믿음이 어떻게 역사하는 가를 모르면 그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항아리에 담겨진 씨앗과 같은 상태로 그대로 있습니다. 믿음이 어떻게 역사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의 핵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고 멸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그 때부터 사람들의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구원하시는 길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 길로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한 심판으로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현실이자 운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벼락을 맞아 쓰러지고 나서
육상 경기에서 릴레이 경주를 보면 열심히 달려온 사람이 앞에 있는 달려갈 사람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자신은 쉬게 되됩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은 자신의 경주를 모두 마치고 디모데에게 바톤을 넘겨주면서 자신의 경주가 끝났음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사도바울은 최선을 다해서 달렸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섬기는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또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섬겼고 결국 목숨까지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모두 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늘 자신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셨습니다. 여기서의 빛은 영적인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빛이 없으면 자신이 가는 길과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시는 주님은 우리를 생명나무 숲으로 인도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풀과 물을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영육 간에 양식을 공급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을 목자로 믿고 따를 때 주님은 우리 영혼을 만족시키십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설령 환란과 고초를 당하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에도 세심한 배려와 적절한 은혜를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천년만년 살 줄 알고 육신의 정욕대로 방탕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인생은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일시적으로 살다 떠나야 하는 “나그네” 인데 소돔성 그 죄악의 도성의 풍요로움과 쾌락에 취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재물도 많이 모았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로 멸망할 때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