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은 외부의 침략을 받아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어 방황 할 때마다 예언자들이 나타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언자들의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과거 하나님의 축복을 회상했다. 그리고 성실함과 진실함을 통하여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인간은 말 할 때마다 불성실하다는 말과 진실하지 못하다는 말이 수식어처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기준을 누구의 기준에 맞춰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분명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계 동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판단에 몰입된 나머지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삶의 기준으로 삼은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성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4~25)4월은 부활의 계절인 동시에 생명의 계절이다. 그래서 소망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마다 희망이 넘친다. 또한 4월은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교회는 4월달을
할렐루야! 예수 부활하셨네! 부활주일이다. 그러나 죽임 당한 자들의 한의 소리는 곳곳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전쟁과 기아를 피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임을 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의한 자, 가진 자에 의해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죽임’이라는데 그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잠시 접어두고 주변의 것을 더 살핀다는 의미를 지닌다. 겸손하지 못하다면, 자신의 고집과 방식이 계속적으로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더이상 다른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에 실린 겸손에 대한 교훈의 글이다. 잠언 11장 2절에도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사순절은 초기 교회시대부터 부활절을 40일 앞두고 지켜오고 있다. 그 기간에는 특별히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금식하고 절제하면서 성찬식을 시행해 왔다. 이것이 사순절의 유래이다. 제도적으로는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사순절이 기독교의 절기로 제정된 후, 오늘날 까지 교회력의 중요한 절기중 하나로 지켜오고 있다. 금년도에 사순절은 회개의 수요일인 지난
오늘 우리사회는 외모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보니 오늘 우리사회는 속보다도, 겉을 포장하는데 모든 것을 투자한다. 성형도 서슴없이 한다. 성형한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비슷하다. 겉은 번 지른 한데, 속은 엉망진창이다.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 노부부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어 긴 여생을 조금 쓸쓸하게 보냈다. 그래
우리는 왜 죄인인가(?)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고, 용서 할 줄을 몰라서 죄인이다.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이 어찌 되었건, 윤리와 도덕이 어찌되었건, 먼저 먹고 보자는 주장이 바로 악마의 모습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40일 동안 금식을
우리말에 십리 땅속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의 변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하이예나’라고 부른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알기 어렵고, 가장 답답해하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도움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누구나 처음 보는 사
나는 프란시스코의 기도를 매우 좋아 한다. 가끔 이 기도문을 보면서, 나도 프란시스코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다. 프란시스코는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프란시스코는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지금까지의 묵은 때는 깨끗이 쓸어버리고, 새해 아침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꾸어 보자. 그리고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시키는 꿈을 대망해 보자. 성서에는 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스라엘 민족은 꿈을 꾸며 사는 민족이었다. 그들의 꿈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세상이었다. 흑인해방운동가이며, 민권운동가인 마틴
미어캣(meerkat)이라는 퐁유동물이 있다. 미어캣은 식육목 몽구스과에 속하는 무리생활을 하는 포유동물이며, 주로 아프리카 남부의 건조하고 돌이 많은 지역에서 서식한다. 무리의 개체들이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는 습성이 있다. 이로 인해 ‘사막의 파수꾼’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에 등장하는 캐릭터 ‘티몬’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부부란 슬픔과 고통,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촌수가 없다. 한 몸이다. 부부 중 한사람이 아프면, 그 아픔은 부부가 함께 느낀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들짐승과 가축을 만들고 아담에게 이름을 지어주도록 했다. 그런데 동물과 짐승에게서 아담의 짝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는 포도주가 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교인들은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교회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교회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성서는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이며,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오늘 교회는, 특히 한국개신교회는 개별교회주의, 개인주의, 집단주의에 만연되어 있다. 이로 인해 교회는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특수집단으로 게토화 되고 있다. 또한 교회는 성직자나, 특정인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 담임목사 세습을 강행하는 교회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담임목사와 교인 간에 갈등과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대형교회와 다툼이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장24절)”고 재물(맘몬)이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맘몬보다 더 섬기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승리자
1999년 4월 20일 화요일 오전 11시 미국 콜로라도 덴버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이 학교에 다니는 '에릭 해리스'(18세)와 '딜런 클리볼드'(17세)라는 이름의 두 학생이 학교에 총을 소지하고 들어와 900여 발의 실탄을 난사하면서,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의 학생들에게 부상입혔다. 살해당한 13명 중 12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명분 없는 이벤트성 기념사업을 곳곳에서 벌이며, 행동 없는 종교개혁을 외쳤다.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그리스도인이라면 섬기는 자유와 사랑하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교회가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예언자적인 종교개혁 정통과 목회자의 의식개혁이 한국교회 미래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교권주의와
요즘 공원과 거리마다 애완동물들로 넘쳐난다. 이것은 진정한 인간관계가 틀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인간은 이웃과의 관계가 상실되고 파괴되었기 때문에, 참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없다. 때문에 병적으로 애완동물에 집착하는 풍조가 우리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하면서, 애완동물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 되어도
선교는 인간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지구상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은 한 신(하나님)을 믿는다. 그것은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들도, 잘난 교단의 교인들도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래서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같은 주기도문을 외우며, 같은 성경과 찬송가를 부르면서 한국교회가 분열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