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지상사역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막9:14- 29,마8:28-34,마12:22-30).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활동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종말론적인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즉 귀신축출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곳에서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영(靈), 즉 예수님의 영(靈)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싸움이 한창이다. 국민들까지 니편 내편으로 나뉘어 광화문 광장을 뒤덮고 있다. ‘검찰개혁’과 ‘조국 사퇴’의 외침이 엇갈려 하늘을 찌른다. 서로의 집회 참가인원을 두고서 한쪽에서 200만명이라고 하자, 다른 한쪽에선 300만이라고 응수한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치기어린 행동 같다. 가뜩이나 불안한 남북관계, 한일관계,
주전 486년경 유대민족이 바사강국의 속국으로 있었을 때 하만대장의 모함으로 유대민족이 말살당할 위기에서 이 계략을 무너뜨려야 유대민족을 구원해 낼 수 있었다.그런데 이 일은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인 에스더가 나서야 한다. 그 당시 바사제국의 법으로는 아무리 왕후라도 사전 허락 없이는 왕 앞에 나갈 수 없다. 만일 왕의 허락 없이 나감으로 왕의 노여움을
9월 장로교 총회가 끝이 나고, 각 교단은 새로운 회기를 이끌어갈 임원진을 꾸리는 등 교단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편으로는 우려와 걱정도 되지만, 기대와 설렘이 더 앞선다. 이 기세를 그대로 몰아 각 교단마다 새로운 임원들로 인해 부흥성장하고, 한국교회가 바로 서길 소망해 본다.다만 새로운 임원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선교초기 영미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주창하면서 한민족의 독립운동과 민족의식교육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사인 구약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오히려 항일운동을 벌이며, 민족의식을 교육하는 지식인들을 교회에서 추방한 것이 한국교회이다. 3.1만세운동 이후 지식인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1920년 조선공산당이 창당되면서
9월 장로교 정기총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의 잡음이 들린다. 모두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뜻 깊은 순간인데, 하나 된 마음이 아닌 둘로, 셋으로 쪼개진 모양새다. 몇몇 교단은 이번 총회를 기점으로 둘로 갈릴 위기에 처했으며, 몇몇 교단은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아메바식 분열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숱한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해 되찾은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는 광복절마저,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인파들은 서로 갈려 ‘문재인 탄핵’과 ‘NO 아베’를 외치며,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기를 바랐다. 74년 전 모두가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념 논쟁의 굴레에 빠져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 남았다.올해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74주년을 맞았다. 숱한 억압과 침탈 속에서도 총칼에 맞서 대한독립 만세를 울부짖은 선열들의 외침이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그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하나로 뭉친 단결력이 어둠에 잠긴 한반도에 빛을 밝혔고, 작금의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 다시 한 번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하지
일본의 ‘한국 때리기’가 갈수록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들고 나온 ‘수출규제’, 일명 ‘경제보복 조치’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기업인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한국기업이 피해를 볼 때에는 필요한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을 만큼, 시급한 사안이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 기념관에는 눈시울이 자연스럽게 적셔지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한 ‘형제의 상’이다.군복을 입은 두 형제가 부둥켜안고 있는 동상으로, 실제 6.25 전쟁 당시 국군 소위였던 형 박규철과 북한 인민군 이등병이었던 동생 박용철 형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형 박규철은 국군과 북한군이 치열한
한 청년이 갑작스럽게 ‘이명’(외부로부터의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소리를 느끼는 현상)이 생겨 생활이 불편해졌다. 아무도 없는데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수면에도 방해가 됐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가짜소리로 인해 진짜 소리까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가짜가 진짜를 덮어버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벌써 69주년을 맞았다. 한민족끼리 총칼을 겨누었던 시리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 여전히 가슴을 후빈다. 시대는 2000년대를 훌쩍 넘어 2019년인데, 1950년에서 시계가 멈춰버린 우리 민족의 상처가 덧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온전한 안전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다시 한
따사로운 햇볕은 내리쬐는데,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인 듯하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기념일이 즐비하고, 여기에 각종 결혼식도 많이 열리는 사랑과 행복이 넘쳐야 할 5월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정의 달이 무색하리만큼, 가족 간 끔찍한 사건이 많은 5월이었다.의정부 한 아파트
세계적인 자동차 왕이 미국의 헨리포드이다. 헨리포드가 자동차 산업에 성공한 뒤에 자기 집을 한 채 짓기로 하였다.많은 주위에 사람들이 기대하기는 아마도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을 것이라고 예상하였고 그 저택 안엔 최고의 고가품가가를 들여놓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포드는 자기가 어릴 때 살았던 땅에 아주 작은 집을 짓고 바로 이 집이 자기가 살 집이라고 발
부활의 아침, 한국교회는 죽임 당한자의 ‘한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죽임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며, 죽임당한자의 ‘한의 소리’를 듣고 행동해야 할 교회는, 힘의 의한 평화(팍스)를 말하기에 바쁘다. 남북한 적대적인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번에 원자폭탄으로 100만명이 죽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오늘 보수적인
부활의 아침, 한국교회는 죽임 당한자의 ‘한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죽임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며, 죽임당한자의 ‘한의 소리’를 듣고 행동해야 할 교회는, 힘의 의한 평화(팍스)를 말하기에 바쁘다. 남북한 적대적인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번에 100만명이 죽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오늘 보수적인
(1921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나타난 이토의 선교사들을 향한 발언은 3.1만세운동 직후, 악화된 국제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회유정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상 일체의 사건은 제가 담당하지만, 금후 조선에서 정신적 방면의 계몽과 교회에 관하여는 바라 건데 당신들이 담당해 주시오. 그리하여야만 조선의 인민을 유도하는 사업을 비로소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어느 때보다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 기간 우리 기독교인들은 회개와 묵상, 절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사순절은 40일간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복음의 핵심으로, ‘나보다’ ‘예수님’을 위한 절기이자, ‘예수님’을 위해 내가 변화되어야 하
한국교회의 하나 됨의 여정이 멀고도 험하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갈기갈기 찢겨 서로 입장만 내세우고 있다. 저마다 “우리가 원조다”고 외치는 식당들처럼, 한국교회도 하나 되려는 노력보다 “우리가 정통성이 있다”며 지겨운 정통성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신물이 날 정도다. 더욱이 보수적인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단체마저 본질을 잃어버리니 채 한국
6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이 기간 그리스도인 모두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예수님의 시간과 공간인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각 교회에서는 각양각색의 모양새로 사순절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만큼은 절제적인 생활을 한다.하지만 바람과 달리 작금의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