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몬(독일어: mammon) 또는 매먼(영어: mammon)은 ‘마몬’의 다른 이름으로 국어사전에서는 “부(富), 돈, 재물, 소유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대립되는 우상 가운데 하나를 이르는 말. 혹은 악마를 이르는 말”로 불리며, 신약성경에서 맘몬(mammon = mammwna'")은 누가복음 16장 13절(mamwna'/ 명여남단 재물을 mammon
국민일보. 2018. 8. 3. 28면의 전면광고를 보고 느낀 점에 대한 의견입니다.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경제에 대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자살하고 있다.”라는 것에는 고개가 저어집니다. 그 이유는 편향적인 사고에서 비판하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박정희 전 대통령 때에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기반이 조성되었습니다.
국민일보. 2018. 8. 3. 28면의 기도회 전면광고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요즘 ‘공작’이라는 영화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회자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암호명 ‘흑금성’이라는 주인공은 실존 인물(박채서)이며, 그 인물을 모티브(motive)로 한 실화로 전해진다. 그런데 ‘공작’이라는 영화에서는 국민적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 축
국민일보. 2018. 8. 3. 28면의 기도회 전면광고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성경말씀에 의한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이루시고자 하시는 진실과 정의 등에는 눈을 감고 편견에 사로 잡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우리는 8. 15 해방을 광복절이라는 기념일로 삼고 있지만,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자, 우리의 분단은 그 원인이 일제에 있으니 평화와 번영 통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 장병들이 지난달 25일 강원도 홍천 풍천리 778고지에서 6·25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기독교계가 만든 대체복무제 초안엔 유해 발굴 업무가 포함됐다. 기독 변호사들과 바른 군인권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병역의무와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초안을 내놨다. 이 기준에 따라 법안이 제출된다면 군부대 내 합숙을 원칙으로
“거듭 강조하건대 이는 경(卿)과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만약 내가 죽더라도 경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이제부터 나와 함께 있어서는 아니 된다. 가거라.” 하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명하였다. ‘프란체스’의 근심 어린 눈빛을 외면하며 나는 성벽 아래로 걸어 내려와 말에 올랐다. ‘프란체스’ 그와 나는 이렇게 헤어졌다.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아무리
필자는 2017년 10월에 ‘한국기독교신문’에 “군(軍) 복무자들을 악마(惡魔)로 만들지 말라!”는 제하(題下)의 글로 모병제(募兵制)가 시행되기 전 까지는 절대로 대체복무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바 있다. 그런데 헌제에서의‘대체복무’운운하는데서 편협(偏狹)한 편심(偏心)을 양심(良心)으로 포장하는데 가증스러움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들은
“따옴표” 언론보도라는 문제는 많이 회자되어 왔다. 이는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따와서 자기언어로 보도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는 그 보도태도가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크다고들 한다. 이는 언론인(journalist)들의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 에 의한 것이라면 오보차원이 아니라 이는 엄연한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우리는
이스라엘의 ‘팔’ 민간인 무차별 살상에 분노한다.미국이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14일(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최소 60명이 죽고 3000명 가까이 다쳤다.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중 폭격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났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도 8명이나 포함됐다. 대다수 비무장 상태인 팔레스타인 민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기일(忌日. 해마다 돌아오는 제사)은 물론, 추석명절, 구정명절 등에 제사(祭祀)를 한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모(조상. 가족 등) 제사도 안 지낸다.” 등의 비난을 쏟아내며, 심하게는 형제, 집안 간에 폭력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까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추도식[追悼式. 추모식(追慕式
유교철학에서는 인간 구성을 혼(魂)⋅백(魄)으로 설명한다. ‘비어 있는 관’은 그냥 ‘관’(棺)이라고 부르고, ‘시신’ 곧, 정령체인 백(魄)을 넣은 관은 ‘구’(柩)라고 별도로 부른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하관’이라는 말도, 전통의례의 용어로 말하자면, ‘하구’(下柩)라고 해야 맞는다. 기독교에서도 아직도 ‘운구’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은가?
보편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예식에 있어서 임종(臨終). 입관(入棺) 후에 비로소 상례식[喪禮式. 장례식(葬禮式)]. 영결식(永訣式). 발인식(發靷式).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예식이 진행되는데, 상례식[喪禮式. 장례식(葬禮式)]은 장사(葬事) 곧 ‘죽은 사람의 시체(屍體)를 땅에 묻거나 화장(火葬)하는 예절(禮節)’이라 해서 장례식이라 한다. 그리고 영결식
필자의 아버님이 성안(성안)에 들어가신 후 입관하기 전 염습과정에서 삼베[염포(殮布)]로 꽁꽁 묵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질 않아서 물었다. “ 꼭 이렇게 꽁꽁 묶어야만 하느냐?‘고, 이 때 돌아오는 답은 ” 꽁꽁 묶지 않으면 나중에 시신이 틀어지게 된다.“ 고 하였다. 그 때는 순간 ”그러면 안 되지“ 겁이 덜컥 났다. 그런데 그 말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 잘 믿고 이 땅(세상)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자녀)의 복을 누리다가 종국에는 “죽었다~”는 등의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남지 않겠는가? 그러함에도 별 관심 없이 전통문화의 장례식[葬禮式. 상례식(喪禮式)] 틀 속에 생명[生命. 생동하는 신앙(生動하는 信仰)]의 기독교를 죽음[사망(死亡)]에 가두어 놓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상례식[喪禮式 = 장례식(葬禮式)]이라 해야 할까? 성안예식(聖安禮式) 이라 하는 것이 좋을까? 지난 호에서 “임종식(臨終式)을 이제 부터는 성천입식(聖天入式)이라 하자!”고 하였습니다.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해오던 상례식(喪禮式) 또는 장례식(장례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이러합니다. 상례식의 상(喪)은 “잃을 상, 복 입을 상
임종식(臨終式)은 기독교적(基督敎的)일까? 이에 대한 물음에는 고개가 갸우뚱해 질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그 용어 사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임종식(臨終式) 이라 할 것인가? 성천입식(聖天入式) 이라 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앞서 거론한바와 같이 기독교인들 역시 유교(儒敎)의 장례문화의 전통적 용어를 그대로 빌려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죽으셨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시고, 영혼이 떠나셨다(마27:50. 요19:30)라고 증거 함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바위 속에 판 새 무덤에 모셔두었다[마27:60. 安放在(안방재)]라고
사람들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에 관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일까 유행가 가사 중에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하고 “지금 어디로 가야하지?” 하며, 그 방향과 목적지에 대한 방황 속에 삶의 고민을 노래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디로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靈魂)이 떠나시다(마태복음 27장 50절)(59)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60)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安放在)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태복음 27장 59절 ~60절) 그럼 지금까지에 있어서 우리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상용화하고 있는 용어들을 대강이
또한 기독교에서도 상례식(喪禮式)에 있어서 입관식(入棺式), 장례식(葬禮式) 또는 발인식(發靷式), 하관식(下棺式)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에 임종식(臨終式) 등을 더하는 경우[교회(목회자)에 따라 다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례(喪禮) 용어들은 우리의 전통문화(傳統文化)를 지배(支配)하여온 유교의식(儒敎儀式)에서 빌려온 용어들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