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곧 전쟁과 기아가 없는 세계평화 담보하며, 인류 희망의 닻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한 형제인 남북한 민족 갈라져서 살 이유가 전혀 없다민족의 화해와 평화에 봉사하자2019년 기해년이 시작됐다. 본지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향한 2019년 ‘평화’로 던진다. 그것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한반도의 평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곧
대한민국 올해 키워드는 ‘저항’, ‘미투’, ‘남북정상회담’, ‘혐오’, ‘평창동계올림픽’ 등 사회, 정치, 예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말 그대로 사회부조리에 저항하고, 갑질의 문화를 철폐하자는 을들의 외침도 많았다. 여기에 분단의 상처를 싸매지 못한 남과 북의 정상회담의 만남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울렸고, 평창동계올림픽의 열기는 대한민국의 저력
세계적인 명절 성탄절성탄의 계절이 시작됐다. 세계적인 명절인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은 세계적인 명절인 동시에 인류 모두에게 희망의 축제의 날이다. 그만큼 그리스도교가 세계로 번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기독교가 세계인의 종교가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평화와 사랑, 그리고 정의, 이웃을 향해 있는 그리스도교가 세계 속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의미
이해관계에 얽혀 하나의 단체 묘연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연합단체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목회자와 교인들은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러 개의 연합단체 중 어느 단체에 소속돼야 자신과 교단에 이익을 가져다가 줄 것인가에 대해 저울질을 한다. 또한 일부 작은 교단에 소속한 목회자들은 신학대학 중심의 특정 연합단체에 소속되기 위해서 눈치를 보며, 줄서기에 들어갔다
기적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요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기적을 기다리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요즘 상업자본주의가 뿌리내린 세계는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긴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종교와 정치가 야합해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혀 왔고, 괴롭히고 있다. 오히려 종교가 타락해 맘몬을 더 섬기며,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과 종교
초기선교사 영혼구원 매몰미국장로교회 해외 선교부 총무였던 아서 브라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에서 “한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신앙 형태는 1세기 전 (1700년대 말) 미국에서 극복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신앙형태는 100년 전에 미국교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매우 보수적인 신앙 형태였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따라서
업적주의와 승리주의에 도취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각 단체 및 교단에서는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다짐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삶의 변화는 그 어디에서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실컷 우려먹는 결과만 낳았다. 그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5
개방성과 공공성서 이탈오늘 한국 기독교는 물질만능주의, 샤머니즘적인 축복주의의 온상에 갇혀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개신교는 19세기 중엽 이래 식민지 지배체제 아래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내세워 경건운동과 각성운동을 세계 곳곳 벌였다. 그것은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는 선교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영혼구원만 고집함으로써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계성에 있는
결혼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적 선물수 년 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차별금지법, 인권법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여왔고, 지금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동인천역 광정에서 경찰이 동성애 집회 반대목회자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동성애는 분명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결혼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반도덕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
성직자는 양에 대하여 늑대(?)성직자에 의해 촉발된 대부분의 교회분쟁과 파탄은, 성직자 자신은 물론 교회와 교인에게 상처만을 주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교회분쟁으로 교인 다수는 가나안 교인이 되거나, 이웃교회로 이적해 간다. 한국교회는 중대형교회의 분쟁에서 이를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성직자는 교회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교인
하나님의 영광을 독차지한 한국교회유럽의 교파주의가 한국에 그대로 이식됐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 350여개의 교파가 존재하며, 선교운동을 경쟁적으로 벌이는 이유도, 상업주의의 ‘교회성장론’에 길들여져 신의 자리에 맘몬으로 대치시킨 결과이다. 오늘 한국장로교만 해도 3백여개가 넘는다. 보수적인 연합단체도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분열돼, 끊임없는 다툼을
세계화 시대의 종교적 책임 윤리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세계화 시대, 글로벌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의 책임과 윤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종교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역할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문제제기는 강대국들이 금융자본을 제3세계 국가에 빌려줘, 이들 나라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나
예수님의 세계선교 명령(?)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 18-20절)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세
성서의 법정신서 이탈한 교회 올해도 어김없이 7월, 법의 달은 찾아왔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법이 몇 사람의 기득권자와 권력자를 위해서 악용된다면, 그것은 법의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했다. 그렇다 법은 사람을 위해 있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법이 일부 권력자와 기득권자를 위한 법이 되었다. 우리는 해
한반도의 평화 예언자 전통서 출발남북한 민족 모두는 전쟁을 거부한다. 전쟁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남북한 민족 모두가 공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한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한민족의 화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내용의 ‘판문점선언문’을 발표했다고 본다. 그러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
고락을 같이 나눌 수 있어 '사람'지난 5일은 세계가 정한 환경의 날이었다. 곳곳에서 환경의 날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깨끗한 환경, 건강한 지구는 평화가 정착되지 않고서는 말 할 수 없다. 세계는 건강한 지구와 깨끗한 환경을 위해서 모든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 세계가 건강한 지구와 깨끗한 환경을 말하는 데는 그만
분단의 현장서 할 말을 하자 오늘 세계의 문제는 한반도의 문제로 집약된다. 한국교회는 분단된 한반도, 민족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신탁) 민족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하고, 이를 하나님의 말로 남북한 민족, 아니 세계민족에게 증언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가 관념에 사로잡혀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북한과 대화하고, 한반도의
가정은 선하고, 창조적인 것인간은 누구나 생명 속에 성적인 욕망 있다. 성적인 욕망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려는 갈망이다. 이 갈망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실현되고, 자녀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결합된다. 남녀가 서로 하나 되려는 갈망을 주고, 결혼을 통해서 함께 살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며, 섭리이다. 그런 가정이 분노와 갈등, 배신감 등으
상실되고 있는 효의 사상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지만 이 성서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 세상 사람들은 묻고 있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라고 해서 부모를 공경하며, 아름다운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급속하게 변하고,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서 어르신들에
평등한 새 나라위한 연대성 교육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과 교회교육의 중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성경은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 민족을 위한 교육과 훈련과정을 광야 40년의 생활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집트의 파라오 밑에서 고난을 당한 떠돌이 히브리민족에게 더 이상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에서 고난을 당한 부모와 여성들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