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한반도의 평화가 간절한 때가 없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소련 등 주변국들의 적대적 발언과 경제보복, 전쟁을 위한 긴장고조 등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유럽,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또한 평화를 말해야 할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무기
2017년 12월 25일 성탄절이 코 앞으로 다가 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탄절이 기다려진다.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남북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하나님께 간청하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주변 강대국들의 적대적인 관계를 넘어 남북한 민족이 주체가 된 분단의 현장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간구하며, 아울러 세계평화를 위해서
북한 김정은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전쟁위협,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 등으로 인해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무대로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한반도에서 제3차 대전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필자를 비롯한 이 땅의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로마에 의해 평정되고 전쟁이 없는 평화(팍스)가 이루어졌다. 이 로마의 평화는 창과 칼에 의한 평화, 팍스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얻은 평화이며, 압제와 수탈을 강요하는 평화였다. 하지만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거짓된 평화를 깨고, 진정한 평화(샬롬),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참 평화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나라가 혼란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좌파대통령이라며 거부하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거리로 나와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가 마치 대한민국 대통령인 냥 환호한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에 처한 극한상황이다. 여기이다 북한 김정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의 적대적인 발언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나라가 시끄럽다. 지금이야 말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온 저자로서는 더욱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주변국들이 전쟁을 부추기는 오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분단극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대한민국을 보면, 구한말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을 보는 듯 하다. 기도해야
요즘 우리사회를 일컬어 언니들의 전성시대라고 말한다. 정당 대표들이 언니들이고, 기업의 대표들도 언니들이 많이 등장했다. 공무원 사회와 학교의 교원도, 그리고 판검사들도 남성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언니들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성서에서도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데 여성들의 활약이 매우 컸다. 인류의 역사를 시작한 이브, 이스라
돈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세상은 온통 돈에 대한 소리만 들린다. 오늘 우리사회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다. 군대가 강한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강한 것도 아니다. 장군이나, 대통령은 사라지지만 영원한 것은 돈이다. 돈이 있어야만 물질적인 것을 소유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나라도 운영하고, 가난한 사람도 도와 줄 수 있다. 또 교회당도 짓고 선교도 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그리스도인의 수가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건물들이 아무리 높이 솟아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밤낮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한국교회가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도대체 예수님은 우리와 무슨관게가 있을까.예수님의 공적생애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천박하고 이름도 없고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아
예수님은 권위주의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셨다. 힘의 철학이 바벨탑의 뿌리로 보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권위주의의 화신인 다윗왕 전통을 배격하셨다.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밝히셨다.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안 된다고 매달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고구려의 후신 발해의 급작스런 멸망에 관해 여러 학설 중에 필자의 관심을 끈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발해가 거란 침입 일주일 만에 특별한 내분없이 갑자기 멸망한 것은 거란 침입 전에 이미 백두산 화산으로 인해 외적 침입에 저항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는 추론이다. 아마 이 학설이 정통 사학자들에게는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의 각종 연구들
예수님은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여 시기와 질투, 원한과 자포자기에 빠졌던 사람들을 거룩한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참여케 하셨다. 이들이
요즘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선교와 동떨어진 선교를 하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온 필자는 그냥 골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이다. 한국교회여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갈라진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서 기도한다. 빼놓
모래와 돌로 깔린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세레자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처형을 당한 갈릴리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시어 그의 선교 제1성을 외치셨다.“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목전에 도달했다”‘회개하라’는 말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가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이웃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주검이 냉동고와 차디찬 물속,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신학대학 교수가 자신의 딸의 주검을 방안에 1년 동안 방치했다. 엄마가 동거남과 함께 3살된 아이를 폭행했다. 이웃의 언니가 아이를 살해 했다. 이러한 뉴스들이 매일매일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에 그대
예수님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예수님의 이 선언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로마의 식민지와 예루살렘의 가진 자들에 의해서 빼앗기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상황에서,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교회와 단체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이벤트적인 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과연 종교개혁을 말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각했다는 사실이다. 목사인 나 자신이 부
신명기 기록에 따르면 하느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계시하여 2개의 돌 판에 새겨서 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요약하면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 부모를 공경할 것, 살인하지 말 것, 간음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 것, 남의
한국교회는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데 앞장서 왔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건강한 민주사회를 위해 기도하며 행동했다. 특히 이 땅의 기독여성들은 갈라진 민족과 통일을 위해서 남모르게 기도하며, 민족을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의 재단을 쌓았다. 그것은 일본 식민지 아래서도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기도하며, 증언
필자는 6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 기도는 필자가 기도원을 개원한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합에 맞추어져 있었으며,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리고 참평화가 무엇인지를 골방에 앉아 묵상했다.과거에는 전쟁만 없으면, 총을 쏘지 않으면, 그래서 사람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이것을 평화라고 했다. 그것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