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인간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로잡았다고 해서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구조가 인간의 소유욕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구조가 바로 잡히지 않고서는 죄악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타원형의 두 중심점처럼 인간의 혁신과 사회의 혁신이 성서의 죄론이 문제다.

자기중심적인 욕망은 이웃에 대한 지배와 수탈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간집단의 왜곡된 관계가 구조 악을 이룬다. 무게의 중심을 나에게 된 사람은 항상 이기적이며, 이웃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러한 사회는 인간과 인간,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단절돼 인정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보면, 구조 악이 얼마만큼 문제가 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관계를 문제 삼는다. 하나님을 말 할 때 인간 자신을 배제하고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은 인간의 새로운 중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중심성에 의해 파괴된 조화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중심을 얻음으로써 회복된다.

하나님 안에서 삶의 중심을 찾는 것은 생명에로의 돌이킴이다. 그것은 선과 악의 기준을 자기 중심에 두지 않고, 하나님 안에 두는 것이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 주기 시작했고, 이 사회에 구조악을 뿌리내리게 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높은 벽이 생기기 시작했고, 단절됐다. 이는 결국 이웃에 대한 지배와 수탈로 나타났다.

예수님의 삶은 죽음에서 진리가 나타났다. 그의 삶은 이 땅의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 벌인 하나님 나라운동이었다. 예수님의 삶에서는 자기중심성이란 것이 전혀 없다. 그것이 공관복음서 전체의 흐름이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나라와 과련되어 있었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움직였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아 주인 되는 하나님나라운동은 지배와 수탈을 극복하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갈망하게 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인간의 깊은 심성을 보았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노여움, 살인, 음욕, 감음, 맹세금지, 원수사랑”을 말함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요구나, 권리주장을 빼앗았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악마들과 싸워 이기셨다. 예수님은 늘 갈릴리에 계셨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를 따르라고 했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렸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신앙에서 형성됐다. 에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기독교 가르침의 중심에 있다. 사순절 기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통해 우리의 죄를 대신 속량해 주었다. 신학적인 ‘타자에 의한 구원의 교리’는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구원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구원을 위한 자기 중심적인 신앙은 비신앙의 원형이다. 구원은 나의 밖에 있다. 구원은 에수님의 십자가 안에, 다시말해 하나님(그리스도)안에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고통 안에 있다.

믿음만으로는 닫혀진 자기중심성의 개방을 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세상의 악과의 투쟁과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하나님나라가 온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예수님과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로마제국의 정체를 알고 그 이상의 힘을 믿으면서, 승리를 믿으면서, 폭력을 자기 몸에 받아들였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십자가를 통해, 자기희생의 길을 통해 하나님나라 반드시 이 땅에 온다는 신년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사후의 하나님나라를 고백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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