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박근혜 전대통령측이 30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에 직접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방어권 투쟁은 정당한 것이고 제한받아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전직 대통령의 입장을 전해 듣고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검찰은 A4용지 12만 쪽 분량의 방대한 양의 수사기록과 더불어 삼성그룹에서 298억 원의 뇌물을 포함한 13가지의 범죄들을 구속이유로 적시했다.

이에 맞선 박 전대통령 측은 국정농단 관련자들을 입단속하거나 증거 인면 혹은 조작의 힘을 상실했고, 또 사저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 없기에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다. 전대통령 측은 구속영장에 적시한 범죄행위가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많기에 충분한 방어권 보장을 위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호소한다. 이와 더불어 친박계 핵심 조원진 의원은 “관련자 대부분이 구속돼 증거조작과 인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사저에 사실상 감금돼 있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도 없다”는 요지의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를 촉구 청원서를 당 소속 의원들에게 돌렸다.

제1공화국 이승만은 하야를 촉구하는 전국민의 함성을 듣고서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단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뒤로하고, 국민의 저항 앞에서 국민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정당함을 밝히기 위한 법적 투쟁을 포기하고 깨끗이 물러났다. 박 전대통령이 이승만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것은 대통령다움의 처신에서 너무도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위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통치행위의 요체이다. 이런 통치행위에 수위에 참여하는 권력은 법적 처신보다도 정치적 처신을 우선해야 한다.

즉 통치행위의 실패로 말미암아 여론이 권력에 대한 사법적 처분을 요구할 때, 권력은 사법적 대응 이전에 정치적 처신을 선행함으로써 사법의 칼날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처신은 사법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위상도 상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민의에 대한 깨끗한 승복과 퇴진의 결과로 사법적 칼날이 자신을 향하여 온다고 할지라도 잡범 수주의 유치한 사법적 대응은 불가하다. 이런 대응은 잠시나마 그를 대통령으로 모셨던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이다. 비록 이번 영장 실질심사에서 변론에 성공하여 구속을 면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역으로 국민의 자존심이 구속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박전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구속적부심이 임박한 시점에서 초라한 법리의 법적 대응에 부산한 삼성동 자택을 쳐다보면서,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책임이 그 누구도 아닌 박전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왜 대통령다운 진정한 사과에 그렇게 인색했던가? 검찰과 특검의 수사 협조에 왜 그렇게 비협조적이었던가? 청와대를 나설 때, 사저로 돌아올 때,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섰을 때 그토록 대통령다운 말 한마디를 기대했던 국민들 앞에서, 줄줄이 검찰청으로 불려가는 잡범들과 똑 같은 소리 밖에 더 할 말이 없었는가? 그런 그가 다시 구속적부심 심사에 직접 참여하여 일일이 변론하겠다는 그 집요한 자기보호 의지를 드러냈다. 이제 박근혜는 전직 대통령이라기보다 그냥 비리에 연루된 단순한 범죄 혐의자에 불과할 뿐이다. 슬프다.

법은 모두를 보호하지만 약자보호 측면이 더 강하다. 한때 통치행위의 정점에 섰던 이는 비록 퇴직했다하더라도 결코 약자가 아니다. 현직을 떠났고 비록 파면되었다고 할지라도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가 대통령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직하게 사과하고, 수사에 협조하고, 탄핵 이전에 깨끗하게 “국민이 원한다면!”이라고 하면서 물렀다면, 적어도 이 국민은 청와대를 나서는 그를 향하여 미안함의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착한 국민들이 삼성동과 그곳을 출입하는 자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은 그가 대통령다움의 정반대 길을 걸었고 지금도 그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삼성동으로 출근하는 미용사들을 보면서, 아직도 스스로 머리 손질을 못하는 전직 대통령의 품격에 맞지 않는 이글이 그에게 전혀 미안하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슬프다. 정말 슬프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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