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예수님을 괴롭힌 유대 종교 지도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릇됨을 지적하는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바로 서려하지 않고, 책망하는 예수님께 사회적인 권세와 조직력으로 도전하여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려 상처 입은(?) 그들의 체면을 다시 찾고,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구실을 얻어 내려고, 집요하게 예수님을 공격했다. 그러나 예수님께 도전했다가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가 고난주간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주 중 3일째 되는 화요일에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부활에 관하여 논쟁을 벌인다.

사두개파는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에서 파생된 말로, 사독의 후손들은 마카비 시대까지 사제직을 수행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기득권을 누린 친로마세력이었다. 이들은 사상적, 신학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가졌고, 모세오경으로만 국한된 모세법에 배타적으로 집착하여, 글로 쓴 토라만이 계시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가르친 반면, 바리새파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율법의 발전을 인정하면서 토라를 해석하고, 현실 문제에 적용할 때, 인간의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바리새파는 율법을 율법 안에 담긴 정신에 따라 해석하려했다. 사두개파는 특히 천사나 악마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활과 내세에서의 보상(마 22:22-33)도 받아들이지 않았다(행 23:8-9).
 
사구개인들은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니라."(요 11:25)고, 부활을 가르치시는 예수님과 대립하여 부활의 부당함을 나름의 논리로 공박하고,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시도한다.

마태복음 22장에 등장하는 일곱 형제 이야기는 신명기 25: 5-10에 나오는 수혼법(嫂婚法, Levirate Law)에서 끌어 낸 가상적인 이야기로 부활을 반박하기 위해 당시 지식층인 그들이 그들의 논리로 만들어 낸 참으로 유치하고도 괴상한 논법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어 예수의 주장과 가르침을 꺾을 심산으로 논쟁을 벌였지만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 앞에 다시는 도전할 수 없도록 진리의 방망이로 일격을 맞고 만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이유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두개인들은 철저히 세속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두개파는 당시의 로마 정부와 협력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 실용주의적 종교 정파이다.

당시 종교와 세속을 두루 장악하여 최고의 권좌인 대제사장들도 모두 사두개파에서 나왔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귀족계급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영적으로, 의롭게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집착하는 무리들이었다. 사실 이런 유의 사람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경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탁월한 감각을 소유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부활을 오해했다. 그들은 영원한 것을 일시적인 세상의 것으로 판단하려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부활은 이 세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관한 문제요, 영원에 속한 문제이다.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 그들의 결론이 크게 빗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께서 모세 오경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입증하시고, 부활의 필연성을 확증하셨다. 하나님은 탄생도 죽음도 없는 영원히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출 3:14).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부활은 예수님 자신의 부활로 확증해 주셨다. 그리고 이 부활의 사실성과 필연적 사실임을 성경과 2000년 기독교 역사가 증명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이다. 이것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은 현실을 살면서 항상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신비스런 기쁨을 누린다(행 2:25-28). 사두개인들처럼 현실에 깊이 빠지지 않고, 영원을 바라보며(히 11:25-26)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된다(고전 15:58).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에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일반의 사람들과 다르다.

내가 죽고 다시 산다는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참으로 처량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을 이룬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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