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 있다

▲ 문 현 미 시인
우리는 살면서 길을 찾아 나선다. 스스로 길이 되기도 했고 길이 되고 길이 될 것이다. 언제나 길 위에 서 있는 삶이다. 지나온 길에 대하여 회상하다 보면 후회할 때가 많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살다 보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내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선택의 길이 놓여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시간만 흘려보내기도 한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을 가면서도 가지 못한 길, 가지 않은 길에 대하여 궁금해 한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꽃 피는 봄길일 수도 있고, 녹음이 우거진 숲길일 수도 있으며, 칼바람 몰아치는 얼음길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는 지금 사순절의 길 위에 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예수님은 어떤 길을 걸어가셨는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기시고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시인은 시의 시작 부분에서 선언적으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라고 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자들은 그분께서 영원히 돌아가셨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은 그들에게 이미 끝이 난 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부활하심으로써 오늘도 내일도 영원무궁토록 우리와 동행하실 것이다. 이어서 시인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믿음의 시각으로 보면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심을 시인은 믿고 있다. 신앙시의 진수는 직접적인 고백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이 시처럼 비유적으로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문학성을 담보하는 것이 더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말하자면 서정시의 영역 안에서 창의적 상상력을 통하여 신앙의 순금을 아름답게 결합시키고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누군가를 상상해 보라.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잠시 꽃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끝없이 봄길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시의 말미에서 시인은 담대하게 “보라”라는 명령형을 선택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환기한다. 그리고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라는 미학적 수사를 통하여 사랑이신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은 한시적이고 유한한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이야말로 위대한 사랑 그 자체이시다. 더욱이 시인은 “스스로 사랑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단호한 어조로 시를 맺으면서 ‘스스로 사랑’이신 그분을 강조한다. 며칠 있으면 부활절이다. 라일락 향기 흩날리는 날, 빛이신 예수께서 봄길이 되어 맞아 주시리라. 내일부터 더 곡진하게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그분의 사랑 덕분에 한없이 봄길을 걸을 수 있는 축복을 소망하며...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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