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 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는 지금 사순절의 길 위에 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예수님은 어떤 길을 걸어가셨는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기시고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시인은 시의 시작 부분에서 선언적으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있다”라고 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자들은 그분께서 영원히 돌아가셨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은 그들에게 이미 끝이 난 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부활하심으로써 오늘도 내일도 영원무궁토록 우리와 동행하실 것이다. 이어서 시인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믿음의 시각으로 보면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심을 시인은 믿고 있다. 신앙시의 진수는 직접적인 고백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이 시처럼 비유적으로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문학성을 담보하는 것이 더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말하자면 서정시의 영역 안에서 창의적 상상력을 통하여 신앙의 순금을 아름답게 결합시키고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끝없이 걸어가는“ 누군가를 상상해 보라.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잠시 꽃길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끝없이 봄길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시의 말미에서 시인은 담대하게 “보라”라는 명령형을 선택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환기한다. 그리고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라는 미학적 수사를 통하여 사랑이신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다. 인간은 한시적이고 유한한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이야말로 위대한 사랑 그 자체이시다. 더욱이 시인은 “스스로 사랑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단호한 어조로 시를 맺으면서 ‘스스로 사랑’이신 그분을 강조한다. 며칠 있으면 부활절이다. 라일락 향기 흩날리는 날, 빛이신 예수께서 봄길이 되어 맞아 주시리라. 내일부터 더 곡진하게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그분의 사랑 덕분에 한없이 봄길을 걸을 수 있는 축복을 소망하며...
백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