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국정농단의 핵심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의 주된 범죄 혐의인 ‘직권남용’ 입증을 위해 전·현직 검찰 간부 등이 포함된 약 50명을 참고인으로 소환됐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민정수석'의 권한 한계가 불명확하고, '직권남용'은 처벌 사례가 많지 않고 법리상 범죄 성립도 어려우며 형량도 낮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 여부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의 구속여부와 법적 유죄는 법원이 할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약이 오르는 것은 공직자, 그것도 민정수석이라는 막강한 위치에서 오늘의 국정혼란에 대한 일말의 양심적 고백조차도 없는 우병우라는 인간을 향한 분노이다. 이명박 정부시절 친구가 민정수석에 임명된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친구들은 “친구가 민정수석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그 근처에도 가지 말자”라며 그 자리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과 중대한 책임의 자리임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눈과 귀이며, 모든 국정 신경세포의 집합소이다.

그런 자리의 수장이었던 자가 최순실도 모른다는 망언에, 모든 국정농단 현장의 여러 혐의에 대하여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가 결국은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초유의 불상사를 초래하고, 한 때 동료들에게 수의를 입혔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두 번이나 법망을 빠져나가는 요사한 술수를 부렸다. 적어도 장관과 수석의 처신은 법적 대응이전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더 무겁게 스스로에게 지워야 함이 바른 처신이다. 나라가 이 정도가 됐으면 정무수석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스스로 법정에 나가 사실을 진실하게 밝히고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씻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높으신 분들에게서 전혀 들을 수 없었던 단 한마디, “이것은 나의 책임입니다.”하는 소리다.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는데도 대통령부터 관련자들 모두 한결같이 자기책임이 아니란다. 사익을 취한 바 없으며, 위에서 시켜서 한 것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한결같이 결백을 주장한다. 나라 팔아먹고서도 자기 집 안방에서 이수시게 질을 하고 낮잠을 편히 잘 이 괘씸하고 교활한 이 인간들을 어떻게 처분할까?

고위공직자의 윤리의식은 하위 공직자들과 달라야 한다. 하위 공직자는 법과 규정에 따라 상사의 지시를 받아 적고 그대로 실행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복지부동의 보신주의가 되겠지만 그렇다한들 책임만큼 권한이 없는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며, 그들은 정년까지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특히 정무직 성격의 공무원은 다르다. 권한보다 책임이 크다는 의식하에 정확한 판단과 정직한 직언,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정치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별정직이며, 그들의 고용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우병우 같은 삐뚤어진 천재적 법꾸라지가 이 중차대한 위기의 시기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아찔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아류들이 대선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도 아랑곳없이 버젓이 큼직한 명패 앞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자신과 동류들을 위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우병우 같은 인간을 정무수석에 앉힌 이를 원망하기에는 늦었지만, 소망하기는 감히 청백리를 원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책임에 대한 현실감 있는 공직자다운 윤리적 인사를 찾을 뿐이다.

이번 대선이 그 기점이다. 대통령다운 대통령, 국민의 수준보다는 높은 윤리의식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대통령, 적폐를 청산하고, 패권을 무너뜨릴 대통령, 새로운 동북아 위기와 북핵 위협 앞에서 민족을 지켜낼 대통령, 국익과 국격을 지켜내며 우리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고양시켜줄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세워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국난 앞에서 우리 민족은 더 현명해지고 강해졌다. 국난과 대선은 현명하고 강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 우병우 류의 패륜적 공직자들이 다시는 발 붙힐 수 없는 건강한 나라로 새롭게 일어설 것을 간곡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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