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현재에 산다. 과거도 현재 위에서 과거를 보고 미래도 현재를 기초로 한다. 그러나 과거에 매달려 살지 않으며 과거를 청산해가면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신비함(?)을 가진다. 그것이 회개의 역사이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고 은총이다.

우리의 신앙을 보수적 신학의 틀로 정립시키고 보수주의 신학을 자랑한다. 우리교단은 스스로 보수성을 자랑한다.

모든 사람들이 진보적인 자세를, 진보적인 지식인을 흠모한다. 그 시대를 발전시키는 주체들은 현대적인 지식과 진보적 사고를 지닌 엘리트들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하여 그 시대가 이끌림을 당한다.

보편적으로 유독, 종교와 정치에서는 진보성이 보수성을 이기지 못한다. 신앙과 신학은 보수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진보 적인 신앙에 대하여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

진보적인 신학 사상과 신앙적 태도에 대하여“성경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보수성을 강조하는 일에 쓰이기도 한다.

한국교회는 보수 일변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진보적인 신학배경을 가진 교단, 목사라도 강단은 보수라는 말이 한국적인 특이성이다.

보수적인 교단, 교회, 목사는 그 삶도 성경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할 것이다. 진정 그러한가. 보수적 교회는 보수적인 삶이 있는가.

성경의 유기적 완전 축자영감설을 가진 보수교단, 교회, 목사, 신도는 성경의 완전영감설을 확보한다. 이는 성경은 완전무결하며 유오함이 없다는 것이다. 번역본마저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옳다. 진정 성경은 “일점일획도 변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수정할 수 없는 진리요,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의 지도를 받으며, 성경은 우리의 기준이 되고, 지침이며, 경계선이고, 삶의 내용이고, 삶의 그라운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이 요구하는 삶에 부응되어야 하고, 성경은 우리의 삶을 검증할 것이다.
목사들은 신도들의 귀범이 될 것이고, 또 귀범이 될 것을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요구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온당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현실은 어떠한가.

통칭 한국교회는 우리는 진정 무엇 때문에 다투고, 대립하고, 대결하며 분열을 조장하고, 그 현상을 당연시하며, 보편화 하는가.

진정 무엇 때문에 싸우고 무엇 때문에 원수를 만드는가. 전정 신앙과 신학의 보수성에 비추어 이제 목사들은 대답해야 한다.

세계 제일 교단이라고 자랑하며, 교계에서 세를 과시하고, 힘을 자랑하는 모 교단의 작태나 감리교의 교단장 문제를 3년여 끌며 세속 법정에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 형국이나, 찬송가 공회 등의 세속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한국교회의 모습에서 진정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를 말대로 믿고, 말씀에 순복하고, 따르는 우리들인지가 의문이 아닐 수가 없다.

고집스러움을 보수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를 헐고, 교회를 무기력하게 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성경적 성경주의 운운하고 있지는 않는가.

진리를 위한 수고와 선교를 위한 헌신과 작금의 우리나라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긴장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통일한국 시대에 민족 복음화와 한국교회의 장래를 멀리보고, 고민하는 교회가 교회됨의 거룩성은 무너지고, 무기력해짐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이익집단으로서의 종교화됨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되는 것인가.

이러한 기형적이고 교권적인 한국교회는 성경적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 책임이 이 시대를 말씀으로 이끌어야하는 우리 목사들에게 있지 않은가!

자각하고 회개하자. 그리고 교권주의자들과 교권의 유혹에게 미혹되고, 뇌화 부동하지 말자. 우리는 성경을 온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가르치며 살기를 진정 원하지 않는가.

누구를 탓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려 하지 말고, 무기력하다고 스스로를 면죄하지 말고, 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목사답게, 바로 새우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 알고, 믿는 복음의 사람들이지 않는가!

의왕중앙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