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원 목사

장애인들이 꿈꾸는 편견 없는 사회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여전히 이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불평등으로 인해 상처 받는 영혼들이 많다. 안타까운 것은 장애인들의 편견을 없애보자는 취지로 만든 장애인의 날마저 그저 이벤트성 행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여기저기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지만, 어디까지나 보여주기와 생색내기가 강하다.

솔직히 우리사회는 대부분 장애인들을 구제하고 보살펴야할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금전적 지원을 하며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구제가 아니다. 그들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써 함께 걷는 것을 원한다.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닌 서로 하나됨이다. 따라서 장애인을 돕는 물질적 지원은 느는데, 사회전반에 인식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편견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 다행스럽게 사회전반에 조금씩 인식전환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갈 길은 멀다. 여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또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데 주력해야할 교회의 역할이 미흡하다. 작금의 한국교회에서 장애인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다. 한국교회에서 장애인을 향한 노력은 거의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장애인 주일을 제정했지만 지키는 교회가 별로 없다는 점마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교회마저 장애인들을 그저 물질적 후원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장애인들에게 한국교회의 문턱은 너무 높다. 오죽하면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가 특별하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또 장애를 안고 있는 목회자가 설교를 하면 측은한 생각부터 한다. 크리스천들은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불쌍하다’, ‘지켜줘야 한다’ 등 구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이는 곧 한국교회 안에서 장애인들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생각의 전환은 교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도움을 줄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이기에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장애인들을 대함에 있어 사랑과 인격으로 대했듯이 한국교회도 나와 다르다고, 조금 느리다고,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그들을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 교회 울타리 안에서 그치지 말고, 사회 전반에 이러한 기류가 흐를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한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더 이상 그들이 사회적 편견 속에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손을 내밀어 주 안에서 온전히 서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다름이 틀림이 아닌, 편견 없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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