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시 33:5)

▲ 조성훈 목사

“그는 공의와”(공의 : 하체디쿠 : הצדיקי)
공의를 뜻하는 명사 ( 체데크 : צדק)에서 유래된 단어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공의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것으로 특별히 통치자나 재판장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성경에서는 윤리적, 법률적 측면에서 널리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늘 공의로 인간을 다스렸고 인간들도 공의에 근거해서 서로 다스려야 한다. 여기에서 공의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율법의 규범과 사랑의 규범을 모두 가리킨다.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나와 당신의 삶”
하나님의 인격의 속성은 천지창조의 방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가 불의 하시며 악인을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라면 우리의 의와 정직은 그가 만드신 세상 안에서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까지 인류를 위해 보내 주신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의를”(정의를 : 체데크 : צדק)
‘공의, 정의, 공정’ 이라는 의미의 명사 ( 체데크 : צדק)의 기본 어근은 ‘곧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의 판결은 평정이 되어야 하고 정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각과 사고에서 최대의 욕구를 끌어 올려 표현하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또한 정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편견이 없어야 한다.

“인간의 정의를 편견 속에서 지켜본 당신과 나”
당신이 공정치 못한 재판을 지켜보았고 체험했듯이 정의를 주장하고 가르치는 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동일하게 있어 왔으며 교육과 문명의 혜택 아래 더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며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땅의 정의와 공의가 향상되고 있지 않으며 불의와 죄가 더욱 관영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하심이여”(사랑하심 : 아하베티 : אהבתי)
‘사랑에 빠지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동사 ( 아헤브 : אהב)가 기본형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등 모두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들의 사랑을 의미하는데 이 사랑은 단지 감정적으로 좋아하고 만족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고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실천적인 삶까지도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주의 종과 성도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세상과 구별되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의 기도와 당신과 나의 기도”
오직 여호와만을 사랑하며 그 완전함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다윗은 이제 그 완전함을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행악 자의 집회를 미워하고 악한 자의 집회를 미워하고 악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은 것이다. 행악 자의 집회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성도들의 집회와 대조되는 말이다. 행악 자들의 집회에 가지 말고 그들이 주최하는 집회를 잘 분별하여 그들의 집회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들의 행악을 배우게 되며 악령이 들어와 올무에 빠지게 된다. 다윗은 그 모임과 그들 자체를 미워한다고 했다. 주의 종과 성도는 이 시대의 수많은 모임들을 잘 분별하여 행악 자의 집회에 앉아있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당신도 이제는 어떤 집회에 참석할 때는 영의 분별을 잘해야만 할 것이다.

“세상에는 여호와의”(여호와의 : 예호와 : יהוה)
‘스스로 있다. 되다’라는 동사 ( 하와 : הוה)에서 유래한 명사 ( 예호와 : יהוה)는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통상적으로 알맞은 히브리어 모음과 함께 쓰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바름을 알 수 없으며 그러나 히브리인들이 자주 쓰는 동사 ( 하와 : הוה)의 변화 형태와 후대의 헬라어 표현으로 볼 때 ‘야훼’란 발음이 비교적 정확할 것이다. 시인은 도움 받은 일에 대해 여호와의 이름 앞에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복이 임한 나와 당신”
사람이 무엇으로 그의 의뢰자를 삼느냐 하는 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의 요소가 될 수 있다. 허망한 것을 의뢰한 인생은 자신도 그 허망한 길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을 의뢰하는 사람은 그의 인생의 고비마다 그것의 도움을 받아 능력이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가 복이 있음은 그가 천지의 창조자가 되심이요. 인생을 지극히 사랑하실 뿐 아니라 지신이 하신 약속과 언약은 변화가 없으시며 그 안에 당신과 나의 소명이 그분은 인도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깨달음에 감사하고 당신은 고난과 역경의 삶에서도 감사하는 강건한 믿음이 있으시길 나는 기도한다. 내가 30여 년 전에 당신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갇힌 자는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당신에게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으로 이해를 구하고 용서를 구한다.

“인자하심이”(인자하심이 : 하싸레카 : הסריך)
‘친절, 자비, 인자, 충성’을 뜻하는 ( 헤쎄드 : הסר)는 ‘끊임없는 사랑, 한결같은 사랑’을 의미하는데 기본적으로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언 약적 의무에 대한 충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는 그의 백성과의 언약적 관계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영원불멸하신 언약을 염두에 두면서 자신이 원수들에 의해 겪는 환난과 괴로움으로부터 구원되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것이다.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을 잊지 않는 나와 당신의 삶”
다윗은 비록 자신이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 만한 공로가 없을지라도 한 가지 믿는 바는 주의 긍휼과 인자하심이라고 고백한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통해 나설 수 없는 미 자격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한하신 긍휼과 인자로 언약을 체결하시고 언약의 백성들에게 오늘도 충만한 은혜를 내려 주신다. 용기는 강건한 믿음을 갖게 하고 믿음은 희망을 이루게 하며 희망은 소망을 낳게 한다.

“충만하도다”(충만하도다 : 말레아 : מלאה)
‘가득 차다, 가득 채우다’라는 동사 ( 말라 : מלא)는 공간적으로 가득 참이나 시간 적으로 정해진 시간의 완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편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적으로 임재하시며 모든 땅을 영광으로 채우실 뿐 아니라 자신의 인자하심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본문을 통해 정직한 자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의해 보호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여호와를 사모하는 영혼과 당신 기도는 나의 삶”
하나님의 백성의 영혼이 하나가 되니 여호와를 바라보며 사모할 때 하나님의 자비로운 도우심은 방패와 같이 서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의 지시대로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회개하면서 기도 할 때 그들을 괴롭히는 블레셋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나 일심으로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는 큰 우레를 발하시며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사 이스라엘 앞에 패하게 만드셨다.(참조 삼상 7:1~11) 여호와를 사모하는 개인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그를 사모하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도우심은 사모할 때 하나가 될 때 나타난다. 아멘~

예장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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