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필자가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거의 끝날 무렵 평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은 내 생애에서 가장 특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이었다. 호불호를 떠나 전혀 생소한 분위기와 문화는 서로 언어가 통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도대체 여기 왜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정도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었다. 필자 곁을 떠나지 않던 민화협 소속 참사는 상당한 충성심과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그에게 투덜거렸다. “아니 서울에서 내 차에 시동걸면 여기 평양까지 2시간이면 충분히 오는 데, 왜 내가 심양을 거쳐 1박2일에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다음에는 임진강을 건너 올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라고 통하지도 않을 이야기지만 짜증나는 현실에 대해 푸념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참으로 예상으로 짧고 간단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어보시라요!” 순간 뭐 이런 대답이 다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의아해하는 필자를 바라보면서 “그게 우리 의지로 돼요? 다 남조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그들의 땅에 남쪽 사람이 차를 몰고 오겠다는 데, 그 가능 여부를 우리 대통령에게 물어보라? 이게 무슨 뜻인지를 한참을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참 좋았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으면 최고존엄 모독에 해당하는 말을 평양 한복판에서 겁없이 해댔어도 별일 없이 귀국했다. 그 전 같았으면 당장 안기부의 추적을 받았을 북한판 붉은 서적을 들여와도 별일 없었다. 내가 북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남한정부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송민순 회고록에서 출발한 북한 인권결의안 찬반 여부를 관한 첨예한 등을 보면서 문득 그 당시 평양에서 경험한 일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북한인권결의안 찬반에 관한 북한 의견 자체가 고려될 여지가 전혀 없고 해서도 안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그 당시라면 충분히 남북이 묻고 의논할 수 있는 분위기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핵실험에 ICBM이 날아다니고 미국 핵잠수함과 해군 전단이 한반도로 집결하는 위기상화에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역질이지만, 그 당시의 남북 분위기는 물어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협의를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지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송민순 전 장관 VS 문재인 후보 간의 고소고발전까지 발전한 이 논쟁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생각에는 물어본 것은 사실일 것이고, 그 당시의 남북관계를 무시한 지금 형편에서의 과거 추궁은 문제가 있다. 진보정권 10년이 북한 핵개발을 도왔다는 보수정당의 공격을 굳이 탓할 생각도 없다. 틀린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만금 남북의 간격을 좁히고 전쟁 가능성을 멀리한 정권도 없었으니 말이다. 역으로 돈을 주고 평화를 구걸했다는 반박 역시 탓할 생각이 없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을 꼭 그렇게만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당시의 상황과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공격은 북풍공작으로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크고, 당시의 상황과 형편을 주도했던 이들의 어설픈 변명이 오히려 더 의혹을 키우고 있다할 것이다. 지금 문재인 후보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햇빛정책의 성과이다. 그럼 그성과의 정점은 무엇인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인 갈등없이 평화적으로 남북이 공존하도록 했다는 것이 아니가? 그렇다면 유엔인권결의안 문제도 북한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닌 남북간의 진솔한 대화가 있었다고 하면 안되는 것일까? 북한에 물어보았다고 공격하는 이들 역시 이것을 선거에 북풍공작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면 당시의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한 이해는 안되는 것인가? 결국 표를 위한 모사요 모략이요 변명이요 면피용이라면 필자는 정말 실망할 것 같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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