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예레미야는 목숨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이다. 어떻게 보면 모세 못지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성서는 그가 자신의 의지로 예언자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가 “태중에 있을 때” “알았고” “세웠다”고 말한다. 예레미야 자신도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았을 때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찌하여 그 같은 일을 제가 감당하겠습니까?” “저는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저는 말도 우둔합니다.” 라고 하였다(렘 1:4-10). 하지만 그가 어리다는 것, 아직은 미숙하다는 것, 말이 둔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직접 도우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탁월한 인물이라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능력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일 뿐이다. 모세가 그랬고, 예레미야가 그랬고, 솔로몬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능력 있는 자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은 사람들이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하였다.

한때 서구신학은 세속 사회가 성숙하면 교회는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간 사람들은 세속 사회의 성숙을 복음의 완성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세속 사회가 성숙한 적이 있었는가? 기술은 또 얼마나 발전했고? 저들의 언설대로라면 사람들은 영적으로 갈급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사람들은 영적으로 더욱 공허하다. 정서적으로는 더욱 불안정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옛날처럼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불안은 감소됐지만, 개개인의 삶에 드리운 공허, 무의미, 무기력, 관계의 균열로 인한 상처는 깊어만 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예수의 말씀대로 세상은, 아니 한국은 지금 목자 없는 양떼처럼 유리방황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절망에서 구원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교회는 속된 것들을 버려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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