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탄핵정국이 가져온 대통령 선거도 끝났다.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 앞에는 나라의 운명을 가를 중차대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경제, 교육, 복지, 안보, 노동, 환경, 인구, 빈부격차 해소 등 어느 한 가지도 화급하지 않은 게 없지만, 이 한 가지만큼은 꼭 기대하고 싶다. 안보관이 분명하면서도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후보들 간의 주적 논쟁에서 표출된 것처럼, 안보 포퓰리즘에 편승하거나, 맹신에 가까운 미국 추종은 경계해야 한다.

싸드 배치의 충격은 오늘의 한미관계를 근본적으로 뒤돌아보게 한다. 도둑고양이처럼 싸드를 배치해놓고 돌아서자마자 한국에 10억 달러 비용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트럼프이다.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건 한국의 보수집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상치 못한 비용 청구에 조선일보는 “충격과 함께 배신감, 분노를 느낀 국민이 많을 것”이라는 논설을 싣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보수의 아이콘 조선일보가 이처럼 미국에 대해서 과격한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사드 배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주한미군과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항만 등 전략 시설을 보호해야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방어가 곧 대한민국 방어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부차적으로 사드 방어 범위에 드는 국토까지 보호된다는 전술적 이익이 있었다.”(2017. 4. 29., 조선) 사드 배치가 한국방어가 주목적이 아니었음을 조선일보가 실토한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싸드 배치로 인한 국론 분열, 중국으로부터의 경제보복은 약과일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정착과 통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력 못지않게 중국의 협력 역시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싸드를 기습 배치함으로써 자기 발등을 찍고 안보는 더욱 위태롭게 했다.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짓도 없을 것이다. 적은 단호하게 막아야 하지만, 적을 악마가 아닌 친구로 만드는 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적을 악마화하면 할수록, 악마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운명을 직시해야 한다. 한반도는 지금 세계 최악의 화약고이다. 촛불의 여망을 업고 새로 된 대통령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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