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홍화수’(홍수전. 洪秀全, 1814년 1월 1일 ~ 1864년 6월 1일)는 식구들에게 이상한 얘기를 했다.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둘째 아들이며 예수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중국은 악마들에게 빼앗겼으며 지상으로 돌아가 그 악ㅂㅁ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홍화수’가 아니었다. ‘홍수전’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홍수전’은 마을과 마을로 다니면서 하늘로부터 받은 복음을 전도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 특히 만주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해적, 산적, 반정부 비밀 집단의 구성원들을 개종시켰다. 권력자들은 ‘홍수전’의 추종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 ‘홍수전’은 그에 맞서 교회를 군대처럼 조직했다. 병장이 4명의 남자와 그의 가족들을 지휘하고, 하사가 4명의 병장을 지휘했다. 장군들은 13,155명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지휘했다. 왕으로 알려진 최고 장군들은 ‘홍수전’의 절친한 동료들이었다. ‘홍수전’은 천왕으로 불렀다.

‘홍수전’의 교회는 군대처럼 조직된 것이 아니라 군대 자체였다. 그들은 박해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웠다. 태평천국(太平天國) 군대는 잘 싸웠다. 그들은 옛 왕조의 수도 남경을 점령했다. ‘홍수전’은 중국에서 악마들을 쫒아내기 위해 각 지방으로 군대를 보냈다. 그 때쯤 제2차 아편전쟁이 시작 되었다. 중국 군대는 국내 문제만 전념할 수 없었다. 얼마 안 있어서 태평천국 군대가 중국 전체를 집어삼킬 듯했다.

한편으로는 ‘홍수전’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태평천국이 세워질 때까지 태평천국 교도들은 술을 마시거나, 아편을 흡입하거나, 성 관계를 갖는 것이 금지되었다. 결혼한 부부조차도 잠자리를 같이 하면 목이 잘렸다. 모든 교도들에게 이 규율이 적용 되었으나 태평천국의 왕만은 예외였다. ‘홍수전’의 궁전은 첩들로 넘쳤고 그는 대개 마약과 술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태평천국 운동은 더 이상 ‘홍수전’의 지도력에 기대지 않았다. 운동이 발전하면서 ‘이수성’ 같은 재능 있는 장군들이 나왔다. ‘이수성’은 군대를 이끌고 상하이로 쳐들어갔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서양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전투가 허풍과 허세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전투는 추악한 측면이 있었다. 승리 뒤에는 학살이 뒤따랐다. 태평천국 운동은 특히 추악했다. 반란군은 반란이 끝날 때까지 2천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출처 : 세상을 바꾼 전쟁)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가 창시한 구세군(救世軍)보다 앞서는, 중국 청나라 말기 기독교를 모방한 홍수전(洪秀全)의 신정(神政) 국가인 태평천국(太平天國)은 사이비, 이단, 유사종교 등을 방치하면 국가적 재앙이 올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지금 우리의 아픔도 이미 37년 전에 예고되었으며, ‘최태민’은 “봉사단 간부들을 모아 놓고 ‘나는 영적 계시를 받아 움직인다고 하였다’고 이야기 한다는 부분도 뭔가 이상한 냄새를 풍긴다.”(김진 저. 청와대비서실. 1992. 중앙일보) 등의 이야기는 25년 전에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 뿐인가, 신천지 등의 사교 집단들이 기독교를 모방, 자신들의 실체를 감추고 봉사단체 등을 가장하여 사람들을 자신들 집단으로 유혹하고, 그들의 교주는 황제와 같이 부를 축적하며 국가권력에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들의 집단적 표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침묵하며 그들의 사회적 문제점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면 ‘홍수전’과 같이 대한민국을 삼키려 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 하겠는가? 염려와 함께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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