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18세기의 혜성 같은 전도자 죠지 윗필드(1714~1770)가 없었다면 미국의 대각성 부흥운동은 크게 지장을 받았을 것이고, 미국 교회가 우리나라에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들을 보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언더우드를 비롯한 복음의 사명자들이 이 땅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복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을 수가 있을까 싶다.

윗필드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30여 년 동안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초인적으로 주의 일을 했다. 그는 "녹이 슬어 없어지느니 달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복음을 위해 56년의 짧은 생을 불태웠다.

왜 그가 그토록 자기를 돌보지 않고, 달아 없어지는 생을 살기 원했을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12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예수를 부르는 자,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분과 함께 부요를 누리는 자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의 복음이 주는 복이 부요하다 해도 예수 이름을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지 않은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따라서 복음을 듣지 못해 믿지 못했다는 변명이 없게 하기 위해 달아 없어지는 생을 원했다. 혹 복음을 듣지 못해 믿지 못했다는 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적용될 수 없는 일이다(롬10:15). 이스라엘 사람만큼 듣고, 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누린 백성은 이 땅에 또 있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변명이 또 하나 있을 수 있다. 듣긴 들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못 믿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영적으로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이방인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는데 그들이 깨달을 수 없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롬10:19,20). 그럼에도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그들에게 들을 수 있는 기회, 알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고 계신다.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롬 10:21).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스라엘 사람처럼 ‘못 들었다.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면서 믿지 않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하나님은 아직 문을 닫지 않고 계신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기 때문이다(고후6:2). 어떻게 그 때를 아는가. 못 들어서 못 믿었다고 말하는 자가 없도록 복음을 전할 당신의 종들을 많이 일으켜 보내고 계심이 그 증거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면 전파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그들은 누구인가. 지상의 교회이다. 교회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교회가 된 모든 성도가 복음을 전할 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을 떠라. 당신도 보냄 받은 교회로서 소명자다. 보냄을 받은 소명자는 반드시 주신 사명을 따라 가야 한다. 보냄 받은 그곳으로 필연적으로 가야한다.

우리 이웃에게로 가야 한다.

직장, 학교 등 우리가 살고 있는 그 곳이 우리가 보냄을 받은 그 곳이다. 우리의 생활현장이 바로 우리가 보냄을 받은 선교지다. ‘가라’는 명령은 특별한 전도은사를 받은 5% 미만의 사람들에게만 주신 명령이 결코 아니다. 전도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95%의 신자에게도 주신 분명한 파송명령이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 시킬 수 없다. 그곳, 그들에게로 당신은 보냄을 받은 자다.

땅 끝까지 가야 한다.

복음의 땅 끝까지 가는 것은 특별소명을 받아야 하는 일일 것인데 우리는 소명 받은 많은 젊은이가 보냄에 응답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선교사만이 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옳지 못하다. 지금은 지구촌시대이다. 직업 따라 세계 어느 곳에나 갈 수 있다.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들이 세계를 향해 진군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중에는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자기의 모든 삶이 선교인데 굳이 입을 열고 전해야 하는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면 자연히 복음이 전해질 것 아니냐'는 주장을 듣는다. 이 생각이 전혀 그릇된 것은 아니나 반쪽진리에 지나지 않는다. 복음은 전하라고 주신 것이지 보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이웃이 당신에게 감동을 받기까지 기다리지 마라. 감동받기 전에 그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오해하지 마라. 그분은 '나만'이 아니라 나처럼 우리의 이웃들 모두가 그분의 거룩한 부요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그 분은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날을 기다리신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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