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이사야에 의하면 세상이 두려운 자들의 생존방식이 있다. 거짓을 일삼고, 위세를 떨고, 농간을 부린다. 강자에게는 비겁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 갖가지 우상숭배와 점술, 복술, 인신제사와 같은 해괴한 미신 행위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사야 당시 백성들이 그랬다. 이사야는 그런 자들을 향해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사 44:2)고 한다. ‘야곱’은 ‘속이는 자’라는 은유로,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 ‘정직한 자’라는 은유로 쓴 말이다. 이사야는 동일인이지만, 존재론적으로 다른 야곱과 여수룬을 대조시킴으로써 저들이 패악한 삶에서 돌이키라고 독려한 것이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 “당신은 누구이신가?”라고 물어보게 한 일이 있다. 과연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세월 기다렸던 메시아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예수의 대답이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b-5). 사람들은 이 예수의 대답에서 메시아 증표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말씀의 요지는 누가 메시아인가에 있지 않고, 메시아 성취를 믿고 사는 삶에 있다. 그렇게 믿고 사는 삶에서 세상 두려움이 만들어낸 온갖 질병들과 억압의 기제들이 풀리는 증거들을 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아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사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세상이 두렵고, 장래가 불안하고, 조바심이 난다면 내 속에서 믿음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동시에 기회주의적인 위선과 거짓이 내 안을 들락거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할 때 공통적인 말투가 있다. “떳떳하게 살고 싶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 “반드시 해 보이겠다.” 무의식중에 남과 비교하는 표현들이다. 남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경쟁자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야곱으로 살지 말고 여수룬으로 살아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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