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원 목사.

2005년 런던 폭탄 테러 이후 12년 만에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또다시 끔찍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지난 5월 22일 미국의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이 끝난 직후 공연장 바깥에서 폭탄이 터져, 22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이 끔찍한 사고 현장에는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사건의 배후에는 IS가 있었던 것으로 스스로 자처하고 나섰다. 누가 배후이든지 무고한 시민들이, 그것도 어린아이들까지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는 점에서 어떠한 변명이나,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그릇된 행동은 결코 용서될 수 없다.

테러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만큼 끔찍하고, 잔인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 사회가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목숨도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오히려 쓰러져 있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선 선한 영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현장에서도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것도 평소 사람들이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노숙자들이 폭탄 테러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도운 소식이 연일 뜨겁다. 언론에 따르면 스티븐 존스라고 알려진 이 노숙자는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현장에서 부상자들을 돕는데 구슬땀을 흘렸다.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보다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존스는 다른 노숙자들과 함께 부상자들의 피를 닦아주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한 여성의 다리를 지혈하기도 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었고, 오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 본능이라는 마음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이 노숙자의 선행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솔직히 작금의 시대는 철저한 개인이기주의로 무장되어 바로 몇 미터 앞의 이웃이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어도 도와주지 않는다. 괜히 도움을 주려다가 자신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애초에 도울 생각을 안한다. 오죽하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살리려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 그냥 모른 척 지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내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은 ‘내’가 아닌, ‘너’와 ‘나’, ‘우리’가 함께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은 존스의 말처럼 본능으로 여겨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먼 나라 영국 멘체스터에서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비록 보잘 것 없는 노숙자 신분인 존스가 선한 행동을 서슴없이 했듯이 이 사회에도 소외되고, 가난하고, 위기에 처한 이웃들을 돕는데 인색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특히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아낌없는 ‘사랑의 실천’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기독교국제선교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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