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오늘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사는 이 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것은 모두가 인간성을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간화 실현이 좌절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개혁에 대한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는 가습기 살균제 파동은, 인간화 상실이 불러온 살해사건이라는데 문제가 없다. 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함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11년 서울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임산부 다섯 명이 연쇄적으로 사망하면서, 국민들에게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사인은 폐질환이었다. 원인과 치료법도 찾지를 못했다. 산모들 사이에서는 괴담까지 나돌았다. 한번 증상이 오면, 한 달 만에 죽음에 이르는 괴이한 병이었다. 그때서야 질병관리본부는 심각성을 깨달았으며, 부각됐다. 국민들은 5년 동안 정부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있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들의 ‘한의 소리와 절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이들의 피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금까지 가습기 피해자는 정부집계 530명, 환경보건시민센터 1528명이다. 여기에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지적이다. 오늘도 가습기 피해자들은 절규한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었다. 이들의 ‘한의 소리’, 아니 ‘피의 절규’는 국내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아우성치고 있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를 허가해준 관청도, 제조한 업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독성을 가진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마트를 통해 전국에 유통될 수 있었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환경부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 레킷벤키저 가습기살균제의 원료 PHMG는 카펫 제조시 첨가할 향균제 용도로 허가를 내준 것뿐이다. 가습기살균제로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될 줄 몰랐다”는 궁색한 답변만을 내 놓았다. 분명한 것은 PHMG는 농약을 만드는데 첨가되는 살충제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했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살해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연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모든 사람의 아픔이며, 한의 소리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둘째 태아의 죽음, 쌍둥이 조카가 태어났다고 선물로 사다가 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쌍둥이 자매, 새로 태어난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구입한 가습기살균제 등등 이 모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그리고 조카, 손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책임감에서, 전국방방곡곡은 물론, 세계 곳곳을 돌며, 죽임을 당한 자의 ‘한의 소리’, ‘피의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피해자들의 절규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가 죽임을 당한 자들의 한의 소리이며, 이 한의 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것은 오늘 우리사회가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웃을 생각지 않고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가 빚어낸 것이다.

이제야 정부를 비롯한 국민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첨가된 PHMG가 인체에 얼마만큼 해를 주는가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인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를 생산해 판매한 기업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은 가습기살균제 파동을 통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비윤리적인 기업들에 대해서 철퇴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것은 죽임당한 자의 ‘한의 소리’이며, 남은 자의 절규이다.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로 죽임을 당한 이 땅의 모든 사람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이들의 요구인 진실규명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굿-패밀리 대표 /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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